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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깨달음을 얻다 봉암사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공학 박사

 

봉암사(鳳巖寺)는 조계종 직지사(直指寺)의 말사(末寺)로 희양산 남쪽에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8m의 거대한 바위이다. 서출동류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는 천하 길지이다.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 수 있는데 봉황 같은 바위산에 용 같은 계곡이 흘러 봉암용곡이라 불렀다.
봉암사도 여느 유서 깊은 사찰과 마찬가지로 계곡을 끼고 일주문(경북 문화재자료 제591호)으로 들어가는데 일주문은 18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다포양식의 맞배 지붕에 희양산봉암사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기둥의 좌우에 주련은 걸려 있지 않다. 또한 일주문 후면에 봉황문이란 편액이 있는데 봉암용곡의 사찰임을 알려주는 글로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봉암사 들어가는 길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속세의 때를 씻는다는 의미의 침류교가 있으며 이 다리를 건너면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겸 문루 역할을 하는 남훈루가 있다. 남훈루를 지나면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있는 공간으로들어선다.
봉암사 대웅보전은 정면 7칸의 매우 큰 불전으로 1992년 새로 건설되었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치미에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으며 전각 앞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수호하고 있다. 안에는 근래 제작된 매우 화려한 후불목각탱을 봉안했다. 원래 서쪽의 삼층석탑과 마주 보고 있는 금색전이 대웅
전이었는데 최근에 옮겼다.


봉암사 일주문

 


삼층석탑과 금색전. 삼층석탑은 봉암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례와 균형이 빼어나다


보물 제1574호 극락전. 전란으로 다른 건물은 모두 불탔으나 기적적으로 극락전만은 화마를 피했다. 불탑의 형태
를 띠고 있는데 건축 연대는 조선 후기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봉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보물 제1574호)이 있다. 외관상 2층 건물처럼 보이는데 정면 및 옆면 모두 3칸 건물이다. 중심 꼭대기에는 탑의 상륜부처럼 보이는 것이 얹혀 있는데 이를 ‘절병’이라고 한다. 평면이 정방형인 이런 전각은 대개 본래 목탑이 세워졌던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다. 신라경순왕이 피신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의 기단과 초석은 고려시대, 건물은 조선 중·후기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봉암사는 여느 사찰과는 성격이 다르다. 우선 건물들이 스님들의 선방 위주로 구성되어 일반인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하도록 했다. 사찰이 대중과 밀착을 유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새와 다람쥐 등은 자유로이 드나들 수있지만 속인은 물론 스님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문턱이 높다. 물론 4월 초파일 하루는 공개하는데 이는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모두 배제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파일이 되면 수많은 불자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몰려들고 봉암사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봉암사에서 일반 사찰과는 다른 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마디로 일반인과 멀리하면서도 가깝게 하는 한국 사찰의 유일한 예이다.
그러나 봉암사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무미건조하다. 들어선 건물들의 짜임새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하긴 스님들의 용맹정진에 근사하거나 우아한 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봉암사를 빛나게 하는 장면은 봉암용곡이다. 외부인의 방문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에 봉암용곡의 비경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절 입구 양쪽에 서 있는 석문, 절 뒤에 펼쳐지는 희양봉과 법왕봉, 반야봉은 부처님처럼 봉암사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 봉암사는 더욱 소박하게 건축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절을 지나 산을 오르면 계곡이 나오는데 그 끝에 있는 옥석대는 백 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그곳 선바위에 부처님이 조각되어 있으니 여기가 진정한 선방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스님들은 ‘골판장’이라고 부른다. 부처님께서 득도하신 곳도 보리수 아래 자연이었다. 건물은 소박하나 자연이 곧 가람인 곳, 그곳이 바로 봉암사이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와 과학 국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전 2권) 등 100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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