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5 |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믿음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믿음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간은 손을 꼭 움켜쥐고 태어난다. 신생아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반사적으로 붙잡고 움켜쥐는 행동을 한다. 이러한 잡기 반사(grasping reflex)는 위험을 피해 달아나는 어미를 꼭 붙잡고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진화의 흔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은 위험이 산재한 세상에서 홀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해 줄 강력한 존재를 찾아 꼭 붙잡고 의지하려는 집요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믿음은 심리적인 붙잡음이다. 의존할 대상을 심리적으로 붙잡고 그에 매달리는 행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고, 진리라고 여기는 지식을 붙잡으며, 돈과 재물을 붙잡고, 신(神)과 종교적 교리를 붙잡는다. 문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가 붙잡은 것이 가만히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배신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는다. 절대적 진리라고 여겼던 지식에 대한 믿음도 새로운 발견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진다. 역시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믿지만, 붙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 새나가는 것이 돈이다. 반석 같던 종교적 믿음도 부당한 비극적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신에 실망하고 종교 지도자의 위선에 좌절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조금씩 부식되어간다.

믿음에 대한 심리학자의 관심
우리는 여러 가지 믿음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이 세상이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지금의 나’와 같은 ‘나’로 깨어나 세상을 맞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 수 있다. 이처럼 믿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인지적 기반이다.
믿음(belief)은 세상에 대한 단순화된 인식이자 이해를 의미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인간의 뇌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단순한 형태로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려 한다. 그 결과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개인에게 세상의 구조와 변화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삶의 방향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통제감을 제공한다. 믿음은 심리적 뼈대와 같은 것으로서 개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적 요소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믿음의 다양한 측면(내용과 구조, 형성과 변화 과정, 순기능과 역기능 등)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삶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믿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부적응과 정신장애를 나타내는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역기능적 믿음, 즉 비현실적이며 당위적인 경직된 믿음을 지닌다. 이러한 믿음은 복잡하고 유동적인 현실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과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역기능적 믿음의 극단적 형태는 요즘 조현병이라고 불리는 정신분열증의 핵심 증상인 망상(delusion)이다. 망상은 현실을 왜곡한 잘못된 믿음으로서 반증하는 근거 앞에서도 개인이 강렬하게 집착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망상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과대망상, 거대한 세력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피해망상,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질투망상이 가장 흔하다. 이처럼 근거 없는 믿음들(미신, 망상, 편견, 고정관념, 종교적 맹신 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러한 믿음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에 반하는 무수한 증거 앞에서도 믿음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러한 믿음이 깨졌을 때 어떤 심리적 반응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사회심리학자들은 집단적 믿음이 사회적 갈등과 폭력을 유발하는 악(惡)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집단적 믿음의 심리적 근원과 기능
요즘 여러 사람이 모이는 동창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격렬한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우정에 금이 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사회심리학 이론이 공포관리이론(terrormanagement theory)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부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집단적인 사회문화적 믿음(종교, 사상, 예술, 가족, 민족, 국가 등에 대한 신념)을 형성하고 그러한 믿음을 신봉하며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개인적 자존감과 집단적 연결감을 고양하는 동시에 죽음을 부정하는 불멸감을 느낀다. 그러한 믿음에 대한 도전은 불멸감을 훼손해 죽음 불안을 촉발하기 때문에 강렬한 분노와 공격성을 유발하게 된다. 공포관리이론의 주장은 많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죽음 불안을 촉발하면 집단적 믿음에 대한 집착이 강화되었으며, 집단적 믿음에 대한 도전은 죽음 불안 수준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도전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공격성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적 편견과 고정관념, 물질주의, 위험 감수 행동, 테러리즘, 민족주의, 종교적 행동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입증되었다

믿음(belief)은 세상에 대한 단순화된 인식이자 이해를 의미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인간의 뇌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단순한 형태로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려 한다. 그 결과가 바로 믿음이다

공포관리이론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가 저술한 1973년도 퓰리처 수상작 『죽음의 부정(Denial of Death)』에 근거하고 있다. 베커에 따르면, 죽음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로서 인간은 죽음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부정하고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기울인다.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문화라는 상징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의 영웅적 존재가 됨으로써 상징적 불멸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사회 문화적 믿음과 가치(종교, 사상, 예술, 국가, 민족, 가족, 돈, 권력 등)는 인간이 상징적 불멸을 추구한 결과이자 상징적 불멸을 추구하는 수단이다. 사회 문화적 믿음은 죽음 공포를 회피하고 불멸을 추구하는 강력한 무의식적 동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에 도전하며 불멸의 노력을 방해하는 존재는 강렬한 분노의 대상이 되어 잔혹한 공격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에 그토록 흔한 거대한 악 (惡)이 발생하는 심리적 근원이다.

종교적 믿음의 위험성
종교적 믿음은 죽음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 문화적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이 죽음 공포에 대항하는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믿음이 절대적 진리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동일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더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은 신봉자의 수적 우세를 얻기 위해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독려하게 된다. 포교 활동은 다른 종교적 믿음에 대한 침범을 의미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 포교 과정에서 많은 종교인들이 순교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교자들은 종교적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인물로 추앙받고 기억됨으로써 상징적 불멸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게 된다. 종교적 믿음의 충돌 과정에서는 위협적인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서 폭력이 정당화된다. 인간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악마로 여기며 소멸시키려 한다. 악한 자를 영원히 제거해야만 죽음 공포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격성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사악한 존재로 여김으로써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무자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종교를 넘어서 깨달음의 종교로
믿음은 마음을 편안하고 든든하게 만든다. 신, 사람, 이념, 돈 등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믿음이 같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집단적 유대감과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종교인들에게는 믿음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신앙 공동체에서의 삶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에서도 세부적인 믿음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 비일비재할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접촉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의존할 대상을 붙잡으려는 집요한 욕구를 지닌 인간에게 붙잡을 거리를 제공해야만 대중의 인기를 얻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믿고 의지할 대상을 제공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희망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의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포관리이론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믿음의 종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대립 그리고 폭력을 수반하게 된다. 믿음의 종교는 수많은 전쟁과 살육의 주된 원인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국제적 갈등과 긴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자신의 믿음을 절대시하고 타인의 믿음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믿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믿음의 진정한 근거에 대해서 고민하고 믿음의 다양성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유연한 믿음을 추구하는 것이 성숙한 종교인의 자세일 것이다.
과연 종교의 본질이 믿음이어야만 할까? 2,500년 전 석가모니는 깊은 명상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믿음의 실체를 철저하게 관조해 모든 믿음의 근거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붙잡아 의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자기 자신마저도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믿음은 집착이자 욕망이며 갈등의 근원이다.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좌우 대립, 세대 갈등, 심지어 부부 싸움도 서로 다른 믿음의 투쟁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믿음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무애(無碍)의 삶을 위해서는 자신이 붙잡고 있는 믿음의 근거 없음, 즉 허공성(虛空性)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제는 종교도 믿음을 넘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말이다.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박사 학위(임상심리학 전공)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 『현대 이상심리학』, 『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 , 『인간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 『인간관계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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