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절, 큰 믿음|암자 기행_추월산 보리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 파도 타듯 번뇌하기
추월산 보리암

추월산(秋月山, 731m). 시적 정취 그윽한 이름입니다. 청명한 가을밤, 산봉우리에 걸린 보름달의 아름다움에 반한 선인들의 작명입니다. 이 산은 다른 이름으로 와불산(臥佛山)으로도 불립니다. 담양읍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누워 계신부처님 같다 합니다.
추월산은 담양읍의 동북쪽에 솟은 담양의 진산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산을 “석벽이 깎아 세운 듯 사방을 둘렀는데 마치 성과 같다” 했습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정상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능선과 상봉 일대에 국한하자면 실제에 부합합니다. 특히 상봉 남쪽에서 동북쪽은 바위 벼랑이 성채처럼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 벼랑 위에 작은 절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습니다.
보리암입니다. 보리암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처음 터를 잡았다는 얘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조 스님이 지리산 상무주암에 머물 때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냈답니다. 매가 앉은 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백양사, 송광사 그리고 여기 보리암이었다는 것입니다. 보리암은 본사인 백양사나 승보종찰 송광사에 비할 바 못 되는 작은 암자입니다. ‘보리’를 구하는 일에 사찰의 크고 작음은 의미 없습니다.
인간 세계를 왜 사바(娑婆)라고 하는지 여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 앞에서 쩔쩔매는 인류라니요. 당분간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 말고 다른 방도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종식시기보다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건 또 새로운, 더 강한 바이러스가 나타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바는 얽히고설킨 업(業)의 파도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업연으로 돌아가는 사바에서 번뇌 없기란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겠지요. 범부의 입장에서 말인즉슨 그렇다는 것과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본 경지에서번뇌를 안은 채 보리를 요달하는 것은 천지현격이지만 말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

는 한 번뇌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번뇌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이겠지요.
보리암 아래 아득한 낭떠러지는 번뇌의 극한이 낳은 슬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덕령의 부인 흥양 이씨가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쫓기다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죽음을 순절이라고 칭송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모진 운명에만 눈길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시대의 번뇌가 개인을 어떻게 삼키는가를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홀연히 빛나는 그런 보리는 없습니다. 추월산 보리암이 아스라한 벼랑 위에 앉아 말해주는 바가 그것입니다.
파도와 바다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번뇌와 보리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번뇌가 파도라면 우리 삶은 바다이겠지요. 파도 없는 바다가 없듯 번뇌 없는 삶도 없습니다. 항해를 하려면 파도를 타야 합니다. 파도 타듯 번뇌할 일입니다. 번뇌가 나를 삼켜버리지 않도록.

글|윤제학, 사진|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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