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 | 바위에 꽃이 피었습니다

바위에 꽃이 피었습니다 화암사(花巖寺)

문상원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건축사

 

완주군 화암사를 알기 전에 한 편의 시(詩)를 먼저 만났습니다.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중략)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 안도현의 「화암사 내 사랑」을 통해 ‘잘 늙은 절’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된 산속 꼭꼭 숨어 있는 작은 사찰이 화암사입니다. 늦가을 비 내리는 한적한 날에 당신과 함께 시인의 사랑을 만나러 갑니다. 개울과 나란하게 달리던 17번 국도를 빠져나와 약 3km 남짓 이어지는 진입로는 여느 절집의 그것과 다름이 느껴집니다. 사찰로 안내하는 그럴듯한 간판도 하나 없이 고불고불 외길이 절반이어서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숨바꼭질을 하듯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요동(堯洞)마을 500년 느티나무 보호수가 유일한 이정표가 되어 너른팔을 벌리며 우리를 맞아줄 때에는 반갑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불명산(佛明山)남서측 원시림 가득한 골짜기에 자리한 화암사는 마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속에 자생(自生)하는 야생화(野生花)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한 점방(店房)하나 없는 주차장에 이르면 사찰로 오르는 길이 두 가지로 놓여 있습니다.
오른편으론 계곡(溪谷)을 따라 올라가는 옛길과 왼편으론 새로 포장되어 차로 오를 수 있는 임도(林道)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비(雨)와 함께 낙엽(落葉)이 내리는 옛길로 들어섭니다. 입구는 완만한 흙길로 시작합니다. 계곡물과 함께 이름 모를 산꽃, 나무를 만나고 이내 다리를 건너면 조금씩 가팔라지면서 돌길로 바뀌고, 다시 다리를 건너면 이제는 아예 물길이 되어 길(道)과 계곡(水)의 구분이 없이 물과 함께 오릅니다.
하늘 위로는 아직 남아 있는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별처럼 빛나다가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며 깍아지른 절벽(絶壁)과 산등성이가 발걸음마다 다른 모습으로맞아줍니다. 산새 소리를 대신해 계곡물 소리와 빗소리로 가득 채워진 이곳에서 오로지 나(我)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암사에는 사찰의 진입 공간(進入空間)에 배치하는 일주문(一柱門)과 천왕문(天王門)이 없습니다.
‘청정(淸淨)한 세계로 들어오기 전 세속(世俗)의 번뇌(煩惱)를 말끔히 씻고 일심(一心)이 되도록 하는’ 일주문의 의미와 사천왕(四天王)을 모시는 천왕문임을 생각하면 계곡길을 오른 과정(過程)자체가 곧 일주문(一柱門)이었고 깍아지른 절벽과 산등성이가 바로 사천왕(四天王)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이보다 훌륭한 일주문과 천왕문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산속 깊숙이 자리한 지형적 특성 때문이라는 짧은 생각은 이내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고행(苦行)을 상징하듯 두 손 두 발로 기어가야 하는 암벽길을 두고 폭포수를 가로지르는 말 많은 21세기 철제 계단으로 오릅니다. 화암사로의 마지막 관문에서 ‘그 옛날 건축가’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오르신 많은 스님들께 면목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넉넉한 돌계단과 함께 조금씩 화암사 우화루(雨花樓)가 먼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늘에서 꽃비(雨花)가 내리는 아름다운 이름과 시인이 이야기한 ‘잘 늙은 절’이라는 말에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긴 자연석 위에 휘어진 채 올라앉은 나무 기둥은 능청스럽기까지 했지만 이들의 뒤로 정갈한 돌담이 배경이 되어주었기에 조화(調和)로운 한 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극락전(極樂殿)을 만나는 방법은 우화루를 관통하는 누하 진입(樓下進入)이 아닌 우화루 왼편 계단을 올라 문지방이 옴폭 파인 달문(月門) 속으로 들어가는 우각 진입(隅角進入) 방식입니다.
우화루와 적묵당(寂黙堂)의 처마 사이로 펼쳐지는 극락전과 네모난 하늘이 열리는 마당에서 절대(絶對) 고요를 떠올립니다. 또한 흙바닥 외곽으로 처마선을 따라 정성스럽게 두른 정갈한 경계석으로 완성된 안마당(中庭)은 우각 진입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적조차 없어 말그대로 고요한(寂黙) 적묵당 마루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비와 함께 동행(同行)한 덕분에 기와를 타고 일렬횡대(一列橫隊)로 줄을 맞춰 내려오는 빗방울을 한참을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보석 같은 빗방울들은 마당 끝으로 내려와 경내 곳곳의 작은 돌다리 밑으로 길을 내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길만이 아닌 빗물의 길도 함께 공존(共存)하며 배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조금 전 올라온 21세기 철제 계단이 생각났습니다. 서울에 두고 온 빗방울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카드섹션을 하는 듯 하나씩 떨어져 있는 極(극)·樂(락)·殿(전) 편액과 처마를 길게 뺀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가진 처마, 단청 또한 바래져 잘 늙으신 노스님 같은 극락전과 탑(塔)이나 석등(石燈) 하나 없이 비워진 안마당과 그 안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우화루 창 너머 풍경을 소중하게 한 장씩 마음에 담았습니다.
작은 절집을 한 바퀴 돌아 중창비(重創碑)가 있는 언덕으로 오른 후 내려가는 길을 고민했습니다. 올라온 길이 계곡길이었기에 내려가는 길은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는 임도(林道)로 마음먹었습니다.
산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불명산(佛明山)을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욕심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덤으로 생기리라는 나름의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산은 마음까지 뚫리는 너른 시야를 안겨주었고 당신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화암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바위(巖) 위에 핀 꽃(花)이라는 화암(花巖)의 이름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흙길, 돌길, 계곡물길, 벼랑길을 올라 바위에 핀 꽃 같은 화암사를 만났듯이 때론 가시밭길 같은 우리들 삶에서도 꽃이 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위 위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희망(希望)의 이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시인의 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저의 사랑이며 희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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