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과 불교 이야기|고대 자연철학자들의 사상 ④_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
만물은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불교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비롯한 물질적인 형상들이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사대(四大)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사실은 부처가 살던 당시의 인도에 이미 존재했으며, 부처도 이 사대 요소 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초기 불교는 인간은 물질로 이루어진 육신 이외에 수(느낌)·상(지각)·행(의지)·식(인식)이라는 정신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불교는 물질적인 요소들 외에 정신적인 요소들도 존재한다고 본다.
부처의 사대 요소 설에 가장 가까운 사상을 전개한 그리스 자연철학자는 엠페도클레스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엠페도클레스가 공기라고 부르는 것을 불교에서는 바람이라고 부를 뿐이다. 그러나 바람이라는 것이 공기의 움직임이니 바람과 공기는 결국은 서로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 사대 요소 설이 오랫동안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처럼,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 설도 2,000년이 넘게서양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로 흙, 물, 공기, 불을 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바다와 육지 그리고 대기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바다는 물로, 육지는 흙으로, 대기권은 공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태양과 같은 불이나 그것에서 비롯되는 온기가 없으면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다. 엠페도클레스 사상이 그 이전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과 다른 점은 첫째로 만물의 근원을 물이나 공기와 같은 하나의 요소로 생각하지 않고 네 가지로 생각했다는 것이며, 둘째로 단순히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사물들과 변화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탐구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는데, 이 경우 물과 상극인 불이 물에서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즉 어떤 하나의 원소만을 근원적인 것으로 볼 경우에는 다양한 사물들과 변화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해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흙, 공기, 물, 불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어떤 비율로 혼합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사물이 생긴다고 본다. 그리고 생명체 역시 이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생기며 이 네 가지가 요소가 다시 분리될 때 죽게 된다. 생명체가죽을 때 물과 흙은 아래로 가고 공기와 불은 위로 올라간다.
“네 가지 원소들이 섞여서 사람들, 또는 야생동물, 또는 나무들, 또는 새들의 모습으로 공기 가운데로 나아갈 때 그것을 생겨남이라고 말하고, 그것들이 분리될때 그것을 불운한 운명이라고 말한다.”
생명체도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함께 엠페도클레스는 그 후의 철학에서 인간의 인식을 설명할 때 전제로 삼게 되는 하나의 중요한 명제를 정립했다. 그것은 동일한 것만이 동일한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명제다.
우리의 눈이 흙이나 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눈에 흙과 물의 성분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에는 결합시키는 힘인 사랑과 분리시키는 힘인 미움이라는 서로 대립적인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사랑은 결합시키는 힘이며 미움은 분리시키는 힘이다. 그것들은 근대 과학에서 끌어당기는 힘인 인력과 배척하는 힘인 척력이라고 부르는 것에 상응한다. 사랑을 통해서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사물이 생기고, 미움을 통해서 네 가지 요소가 분리되어 사물이 해체된다.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미움을 자연현상들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현상들도 규정하는 힘으로 사유했다.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생각과 행위를 하게 하는 힘인 반면에, 미움은 악한 생각과 행위를 하게 한다.
엠페도클레스는 영혼의 윤회를 설파했던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은 듯 윤회설을 믿었다. 그는 동물은 우리의 부모나 형제자매였을 것이라는 이유로 동물을 죽이는 것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동물로 바뀐 줄도 모르고 아들을 도살하고 기도까지 올린다. 하인들은 애원하는 주인집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울부짖는 것을 들은 척도 않고 아들을 도살한 뒤 잔인한 식사를 준비한다.”
불교의 오온설과 엠페도클레스의 견해는 모든 개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이합집산에 따라서 생성되고 해체된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불교의 오온설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엠페도클레스의 견해와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한다. 우리는 흔히 오온을 자신의 소유로 갖는 ‘나’라는 독립적이고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신체나 느낌 그리고 생각이나 욕망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신체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면서 그것이 늙고 죽는 것에 대해서 애달파 한 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나의 신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지수화풍이라는 사대의 결합체로써 인연에 따라서 결합되고 인연이 다하면 해체되는 것이다. 나의 느낌이나 생각 혹은 욕망도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서 오고 간다. 이러한 사실은 조금만 명상을 하면서 마음의 움직임을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불교는 이렇게 오온이 오고 가는 인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설파한다. 이에 반해 엠페도클레스는 네 가지 요소나 원자들을 자신의 소유로 갖는 독자적인 실체가 존재한다는 우리의 통상적인 미망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같지는 않다. 그는 다만 선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 더 좋은 것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화산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설이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무척 열정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싶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철학 석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
서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불교』,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 연구』,
『인간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실존철학의 재조명을 통하여』, 『쇼펜하우어와 원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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