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재가열전|내가 만난 붓다_무애 서돈각 거사 지성 불교 운동의 호법 신장

무애 서돈각 거사
지성 불교 운동의 호법 신장

연기영
동국대학교 법대 명예교수

 

무애(無碍) 서돈각(徐燉珏) 총장을 만나다
무애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필자가 동국대 법학과 2학년 때 모교 총장으로 부임하시어 1972년 6월 8일 취임식을 거행한 날의 시절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선생님은 서울 법대의 저명한 교수로서 사법고시 등 국가고시의 출제위원으로 활동해오셨기 때문에 법대생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물론 선생님은 서울 법대 교수로 부임하시기 전에 이미 1951년부터 5년간 동국대 전임강사로 재직하신 경력이 있다. 그런데 취임식에서 느닷없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감사패를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교가 모태신앙인 필자는 묘한 감명을 받았다. 그때의 첫인상이 원만 무애 무득하고 자비가 넘쳐흐르는 관세음보살을 만난 것처럼 흥분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60년대 초부터 서울법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 ‘학생 불교 단체 지도교수회의’ 부회장, 대불련 지도교수, 대불련 출신 모임인 ‘한국학사불교회’(대불련 동문회) 고문등으로 많은 지도 편달을 하시며 뚜렷한 족적을 남기셨다.
총장님은 가끔 고시반 학생들을 만나서 격려해주시곤 했는데 “공부가 잘 안 될 때에는 참선이나 염불을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은 다음에 법학 서적을 읽으면 효과적이다”라는 말씀을 아주 자상하게 들려주셨다.

무애 서돈각 거사

 

무애 선생님의 가르침
필자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1985년에 모교 동국대 법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법학교수회, 민사법학회 등 학계에 참여하면서 자주 무애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1987년 일본 고베에서 열린 ‘세계 법철학 및 사회철학 학술대회’에 선생님을 모시고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당시 선생님은 ‘법철학 및 사회철학 세계학회(Internationale Vereinigung für Rechts-und Sozialphilosophie,
IVR)’ 한국지부 회장으로 한국 학자들을 인솔해 참석하셨는데, 물심양면으로 헌신적인 보살행을 실천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3박 4일 동안 교토와 도쿄를 돌아보면서 들려주신 선생님의 귀중한 인생 체험담은 내 교직 생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교토에 머물때엔 선생님이 청운의 꿈을 품고 교토 대학에 다니던 유학 시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연 교수도 독일 유학을 하면서 학문적인 기초를 탄탄히 쌓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연구해 학문적인 업적을 많이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잘해서 올바른 인재를 길러야 하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 후에도 틈나는 대로 올바른 법학자의 길에 대해 진지하게 지도해주신 선생님 말씀을 되새기며 실천하려고 정년퇴임까지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필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1976년 5월 3일, 무애 서돈각 박사 77세 송수 기념 논집 『일제 잔재, 무엇이 문제인가』 봉정식과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법학교수회(당시 회장 韓相範, 동국대 법대교수)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서 필자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게 되어 기쁘고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편 1987년 한 해 동안 경기대 고준환 교수, 서강대 박광서 교수, 시립대 구상진 교수 등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한국교수불자연합회를 창립할 때에 선생님을 지도 고문으로 모시게 되었다. 창립준비위원장과 초대 회장을 맡았던 고준환 교수가 서울 법대 불교학생회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 고문으로 제안했고 만장일치로 추대하게 되었다. 그 후 교수 불자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참석해주셨으며 간간이 부처님과의 인연 이야기와 불교 수행법에 대해 지도해주셨다. 서돈각 거사는 우리의 존경하는 선생님이시고 총장님이시다. 필자는 아직도 선생님으로 부른다.

무애 선생님의 불교 수행과 실천
선생님의 부친은 유교를 신봉하는 분이었지만, 선생님은 할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다니다가 불교의 진수를 알게 되었고 특히 교토 대학 유학 시절 학교 근처에 있는 정토종 광명수도원(光明修道院) 예불에 참석해 염불을 독송하면서 불심을 키웠다고 한다.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전선으로 떠나가는 날 수도원에서 『법화경』을 빌려 등에 지고 다니면서 늘 염불을 독송하며 고난 극복의 가피를 받았고,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친 후에야 그 『법화경』을 반납했다는 일화도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이화동 자택 2층은 법당 겸 서재였다. 평생 부처님을 모시고 60년 이상 매일 108배와 조석 예불을 올리면서 참선, 독경, 사경 등 수행으로 신앙심을 키우고 끊임없이 정진하신 것이다. 66㎡(20여 평) 정도의 2층 법당에는 웬만한 암자의 불단처럼 부처님을 모시고, 선생님이 9세부터 모셔온 부처님이 액자 속에 잘 모셔져 있고, 조그마한 탑과 향로, 촛대, 사진 등으로 한쪽 벽면을 잘 꾸며놓으셨다. 그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집필도 하셨다. 대부분의 시간을 스님처럼 수행하시며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원각경』, 『금강경』, 『법화경』 등을 즐겨 사경하셨다고 한다.
교수 불자들에게도 늘 경전이나 교학 공부보다는 108배와 염불과 선(禪) 등 불교수행을 먼저 하라고 강조하셨다. “불교란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믿고 행해야 하는 거야. 특히 젊은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불교를 머리로만 이해하려 한단 말이야. 물론 불교는 이론도 완벽한 종교이지만 우선은 믿음과 실천이 중요시되는 종교이지.” 하시며 불교를 교리의 이해보다는 믿음과 수행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선(禪)이나 염불 수행이나 궁극은 같은데 솔직히 참선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아. 화두선(話頭禪)도 해보고 묵조선(黙照禪)도 해보았는데 그것은 참 어려워. 또 선(禪)은 좀 차가운 것 같아. 불교는 알고 보면 참으로 따스한 종교인데 말이야.” 이처럼 불교와 그 수행법에 대해 진솔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문득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각별히 염불 수행을 강조하시는 간절함이 현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경건해진 적이 여러 번이다.

오늘, 무애 선생님을 회상하며
선생님이 열반에 드신 지 벌써 16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선생님의 예불, 염불 독송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때로는 음악 소리처럼 고요하고 아늑하게 들려온다. 또 108배 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생의 수행력으로 보나 신앙심으로 보나 불국 극락정토에 왕생하셨다고 믿는다. 아미타불을 비롯해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마하반야바라밀 등 불보살님을 염송하실 것이다.
“이생에서 성불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세세생생 불자로서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불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실 때의 분명하고도 여유로운 말씀을 되새겨보면 선생님은 성불을 확실히 믿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이생에서 일구어놓으신 대학생 불교, 청년 불교, 교수 불자 등 지성 불교 운동이 원만 성취될 수 있도록 호법 신장으로 지켜주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열심히 정진해 선생님을 다시 뵙고 싶다.

연기영 동국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 박사(Dr.jur.)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법대 교수, 미국 워싱턴 주립대, 독일 괴팅겐 대학 객원교수 및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법학개론』(공저), 『생산물 손해배상 책임법』, 『21세기 도전과 전략』, 『과학기술법제』, 『스포츠법학 연구』 등이 있으며, 법학 및 불교와 사회문제에 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 이웃을 돕는 사람들 이사, 국제로타리 RMCH Asia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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