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이 읽어주는 불교 詩 | 나의 주인

나의 주인

김영재

내가 만일 말이 되어
차마고도 넘는다면

그대를 등에 태워 낭떠러지 벼랑길 마다 않고 콧소리 내지르며
오르고 오르리라 밤 되면 별을 보며 두 몸이 하나 되어 아침을
기다릴 것이고 아침 해 설산을 넘어 불끈 솟구치면 추운 밤 이
슬에 젖은 내 잔등을 말려 그대의 보료로 삼게 하리니 그대는
나의 주인 천 길 벼랑 한 몸으로 떨어져도 좋을 주인

떨어져 천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보리

김영재 시인의 이 사설시조는 2019년에 펴낸 신작 시조집 『목련꽃 벙그는 밤』에 실려 있다. 시조집에는 ‘시인의 말’ 대신 서시를 한 편 싣고 있다. 서시로 ‘선암사’를 싣고 있다. “사는 게 아득한 날은/ 선암사에 가보세요// 근심 푸는 해우소/근심 없는 무우전// 육백 년/ 늙은 매화는/ 봄 오면 꽃 피워요”라고 썼다. 봄이라는 시절 오면 그것에 맞게 꽃 피우는 늙은 매화의 태연무심(泰然無心)을, 집착도 근심도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설시조인 「나의 주인」은 설산에서의 체험에 바탕하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설산에서 비를 만나 대피소에 머물 때 본 풍경을 시 「비를 만나다」에 썼다. “마부는 비를 맞고 말의 잔등을 우산으로 씌워주었다 말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와 바람을 막아서며 오래 입어 색 바랜 바람막이 겉옷을 다 적셨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너에게/ 말이 되고 싶다”라고 썼다.
「나의 주인」은 「비를 만나다」의 후속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시인은 누군가를 태워 차마고도를 넘어가는, 한 마리의 말이 되고자 자처한다. 높고 험준한 그 길을 가되 ‘주인’을 태워서 낭떠러지 벼랑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특히 밤새 젖은 잔등을 말려서 주인이 앉는 자라에 깔아두는 두툼한 요가 되겠다는 대목은 자기희생의 진심을 엿보게 하는 대목으로 시 「비를 만나다」에서 마부가 말을 위해 말의 잔등위에 우산을 받쳐주고 비바람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는 행위에 비견할 만하다.
이 자기희생적 사랑은 만해 한용운 시인의 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시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라고 썼듯이 말이다. 이 모두가 불교에서 가르치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에서 그리 멀지 않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BBS)』 제주지방사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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