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 쓰레기 속에 숨겨진 생명

쓰레기 속에 숨겨진 생명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채식하는 것을 넘어서, 먹는 것 하나도 꼭 필요한 만큼만,
버리는 것 없이 먹고, 물건 하나도 오래 쓰고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쓴다면
우리 인간이 살면서 더 많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지 않을까

난리법석 쓰레기
쓰레기 문제로 전국이 시끄럽다.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코로나19 이후로 배달,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면서 예년 같은 기간보다 쓰레기가 적어도 16% 이상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이뿐이 아니다. 바닷가로 밀려 온 고래 사체에서는 뱃속에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가득 차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한 빈민촌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아 이미 바닷가의 땅처럼 다져졌다고 한다. 그 땅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뿐인가? 음식물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매년 그 양이 3%씩 증가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19로 캠핑카가 인기를 끌면서 캠핑장 역시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로 골치를 앓고 있다.
먹을 수 없는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쓰레기로 난리법석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인 것일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버려지는 생명들
우리가 먹는 것 중에 생명이 아닌 것에서 나온 것이 없다. 쌀 한 톨만 자세히 살펴봐도 그렇다. 어떤 생명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이 쌀의 영양분이 되어 쌀이 자란다. 비도 마시고 자라난다. 볕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바람이 벼를 쓰다듬어 알곡이 열릴 수 있게 해준다. 쌀 한 톨 안에 세상이 담겨 있다. 모든 음식이 그러하다. 어느 것 하나, 생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음식 자체가 생명인 것이다. 부처님은 생전에 우리에게 살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많은 불자들이 이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채식이다. 그런데 채식만 한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었다.
음식이란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생명을 근간으로 한다. 곡식도 채소도 살아 있던 것들이다. 고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이 생명들을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필요 없는 생명을 죽였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무가 맺는 열매조차도 우리가 버림으로써 이를 먹이로 하는 동물이 배를 채울 기회를 빼앗은 것이 된다. 심지어 꿀은 벌이 자신의 자식들을 키울 기회를 뺏은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가 생명과 관계된 것임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먹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버려지는 양이 너무나 많다. 통계에 따르면 적게는 30%, 많게는 50%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양이 가늠이 안 되는가? 이를 실제 죽어간 생명의 숫자로 치환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8억 1,550만 마리의 닭, 돼지, 소를 먹기 위해 도축한다. 앞의 통계를 그대로 적용해보면 죽지 않았어도 되는 가축이 약 2억 7,000여 만 마리에서 4억여 마리였다는 단순 셈법이 나온다. 가축만이 아니다. 채식을 한다고 해도 채식에 쓰이는 채소, 곡물 등도 마찬가지다. 죽이지 않아도 되는 생명들이었다

먹지 않는 것에도 자비는 있었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의도치 않게 동물들을 죽이고 있었다. 부처님의 살생하지 말라는 말씀, 자비의 정신은 이런 곳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연법’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자비의 정신은 먹는 것에만 있지 않다.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에서도 자비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해양은 쓰레기들이 육지를 떠돌다가 강이나 바람 등에 의해 최종적으로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해양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의 80%가 육지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어찌나 많은 쓰레기들이 바다로 모여들었는지 태평양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15배가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겨났다. 전 세계 해양에는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총 다섯 개가 있다.
거기에다 해양으로 모여든 쓰레기들은 태양이나 파도, 암반 등에 의해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된다. 해양 생물에게 물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 물속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을 그대로 먹게 되는데, 플랑크톤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 플랑크톤을 먹은 바다 생물들이 식탁 위에 올라오고 우리는 그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생선을 먹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미세 플라스틱은 육지에서는 바람을 타고 모든 곳에 내려앉고 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다시 우리에게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환경 전문가들은 앞서 말한 플라스틱 섬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종을 널리 알리기 위해, UN에 이 섬을 국가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섬의 첫 번째 국민은 미국 부통령이었던 환경운동가 앨 고어다

다시 생명
이렇듯 음식물 쓰레기도 플라스틱 쓰레기도 이것은 단순한 쓰레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우리가 자비의 정신을 더 넓게 확장한다면, 물건을 하나 쓰는 것에서 생명에 대한 자비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채식하는 것을 넘어서, 먹는 것 하나도 꼭 필요한 만큼만, 버리는 것 없이 먹고, 물건 하나도 오래 쓰고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쓴다면 우리 인간이 살면서 더 많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게 주어진 적당량의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것만으로도 죽어도 되지 않는 생물들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고,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함으로써 이것들을 먹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동물을 하나라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을 쓰지 않음으로써 땅의 물을 강하게 빨아올리며 자라나고 있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들을 살리는 길은 그 인연에 따라 결국 우리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 자명한 길을 우리 모두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당장 남김없이 적당히 먹고,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동참하자. 그 길이 자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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