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 막바라 춤 공양

막바라 춤 공양

김현숙 수필가

 

시어머니 사십구재에 천도재(薦度齋)를 지내는 날이었다.
자식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님을 모시지 않으려 눈치만 보았다. 나조차 외면할 수 없어 모시고 있다가 장례까지 치르게 되었다. 여유 없는 삶에 생각도 못했는데 큰동서가 천도재를 준비한다고 나섰다. 영이 인간을 지배한다면서 재를 지내면 ‘자손이 성공하고 부를 누린다’고 조상 덕을 바랐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 살기도 힘든데 영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이 있다면 아니, 혼이 있다면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어머님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했던 자식들이 이제 와서 영혼을 위한답시고 주머니를 열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도 낯내기를 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수유리에 있는 조그만 절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주지 스님과 초청한 스님이 와 계셨다. 법당에는 필요한 공양물과 제수용품들이 잔칫상처럼 차려졌다. 그 앞에 촛농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술만 마시면 울던 어머님의 눈물처럼 보였다. 연못가 아기 부처님은 황금 옷을 입고 있었다.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가리켰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인간은 한 줌 흙이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한 잎, 두 잎, 살붙이들이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절에서 봉사하는 보살이 일러주는 대로 표주박으로 청수를 떴다. 아기 부처 관욕을 시키려 물을 세 번 부었다. 염불과 목탁 소리가 법당을 낭랑하게 울리며 회청색 하늘로 퍼져 나갔다. 시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렸다.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편안하게 앉아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던 일이 죄스러웠다.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었어.’
스스로 변명해보았지만 인생의 허무함에 마음이 시렸다. 코끝이 싸해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모든 것을 잊고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그렇게 빌고 또 빌었다.
어느덧 막바라 춤 공양이 이어졌다. 악귀를 물리치고 마음을 정화해,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춤이다. 춤을 출 스님은 장삼 위에 빨강색과 노란색, 초록색 띠를 양어깨에 걸쳤다. 앞뒤로 길게 내려 무지개 같았다. 스님은 솥뚜껑 같은 바라를 양손에 들었다. 연약한 여인네 같아 버거워 보였다. 금빛이 반사하는 한 쌍의 둥근 바라를 들었을 뿐 고깔도 쓰지 않았다.
주지 스님이 치는 징소리가 거친 파도처럼 법당 안을 적셨다. 천수다라니 염불이 우리 중생들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드디어 스님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사위는 움직임이 들뜨지 않고 우아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때 섬세한 동작마다

한순간 사방이 고요해지며 춤이 끝났다.
춤만으로도 중생제도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절감했다.

박꽃처럼 하얀 버선코가 아물거렸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돌 때마다 오른발 뒤꿈치를 왼발 안쪽 가운데로 마침표처럼 교대로 찍었다. 고무래 정(丁) 자를 쓰는 것 같았다. 음양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혼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춤은 점점 물고기가 노니는 것처럼 느릿느릿해졌다.
스님이 무릎을 가볍게 굽히고 오른팔을 올려 바라를 앞뒤로 교차했다. 너울거리는 왼팔 장삼 겨드랑이 사이로 바라가 들고 났다. 바라를 부딪치거나 비벼대는데 쇳소리도 종소리도 아니요, 심벌즈보다 더 고운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마치 저승길에 드는 어머님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길.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듯했다.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님의 앳된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바라 공양 내내 반쯤 감은 눈 위 속눈썹에도 땀방울이 대롱거렸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부처님처럼 흔흔히 웃는 듯했다.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바라춤에서 어떤 힘이 뿜어져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한순간 사방이 고요해지며 춤이 끝났다. 나는 무아지경을 헤매고 있다가 정적과 함께 다시 자신으로 돌아왔다. 춤만으로도 중생제도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절감했다. 춤으로 기란 기는 모두 쏟아버린 얼굴. 스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천지가 합일하듯, 물꼬가 트이듯 내 속이 후련해졌다. 옆에 앉아 있던 막내 시누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모두들 숨소리조차 멈추고 숙연하게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천도재 지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맏며느리도 아닌데 어머님을 모셨다는 이유로 형제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결별하려 했던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영혼이 있다면 하늘에 있는 것도, 땅에 있는 것도 아닌 내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김현숙 수필가. 「그린에세이」로 등단해 조선에듀문우회 회장, 일현수필문학회 회원, 서울시교육감 수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웃어보자 세상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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