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불교 1 | 불교의 마음과 인공지능의 마음

불교의 마음과 인공지능의 마음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인공지능의 시대
인공지능이라는 연구 분야는 1956년 미국 북동부의 뉴햄프셔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 하노버의 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에서 열린 여름 학술 모임(TheDartmouth Workshop)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추상적 개념을 구사하며,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스스로의 정보 처리를 담당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이런 연구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인공지능 프로젝트는 컴퓨터의 인지 능력을 극대화하는 공학적이며 실용적인 구상을 포함하지만, 그 기반에는 많은 철학적인 제안과 주장이 담겨 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알지 못하면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가 막막해지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위한 연구는 인간의 마음과 인지 능력에 관한 연구와 병행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그대로 복사할 필요는 없지만 뛰어난 인지 능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음이 가진 지적 능력을 완전히 넘어선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고 그 결과 인간의 고유한 정신 세계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인공지능의 능력이 강화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화되며 결국에 가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 기생하거나 인공지능에 의해 이용당하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이러한 근심 어린 질문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 세계의 기반이 되는 종교는 인공지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특별히 불교의 인공지능에 대한 입장은 무엇일까? 도대체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불교와 인공지능이 함께 대화할 가능성은 있기나 한 것인가?

인공지능과 불교의 대화
현재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인공지능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교토 인근의 고다이지(高台寺)라는 절에서는 오사카 대학의 이시구로 히로시(石黑浩) 교수 팀이 제작한 민다르(Mindar)라는 인공지능 로봇 관음상이 설법을 했다. 또한 중국 베이징의 용천사(龍泉寺)에는 샨어(贤二)라는 로봇 승려(로봇 도우미)가 있고, 한국에는 아직 사용 중인 로봇 승려는 없지만 <인류 멸망 보고서>라는 옴니버스 영화 중에 두 번째 에피소드인 <천상의 피조물>에는 로봇 승려인 RU-4(인명스님)가 나타나 깊이 있는 설법을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인공지능에 대한 불교의 개방적 모습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불교와 인공지능은 마음과 깨달음에 관해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
이 둘은 모두 마음의 능력에 관심이 많다. 마음의 문제는 불교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교는 마음이 가진 최고의 능력인 깨달음의 능력에 집중한다. 번민과 고통으로 인도하는 집착의 마음을 극복하는 깨달음의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의 길이다. 인공지능은 마음이 가진 최고의 인지 능력에 도전하고 있다. 얼핏 보면 불교가 보여주는 깨달음의 영역은 인공지능의 인지능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불교와 인공지능의 노력은 그렇게 다른 것만은 아니다. 학자들은 인공지능의 최종 발전 단계로 계산과 지각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지혜의 단계를 꼽고 있다. 불교와 인공지능이 깨달음과 지혜의 단계에서 만날 수 있을까?
먼저 불교와 인공지능은 마음을 특정한 대상이나 실체로 보지 않고 현상이나 기능으로 생각한다. 즉 마음은 영속하는 본질을 지닌 영혼이나 정신이 아니고 일정한 과정이나 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기능이나 현상이다. 인공지능은 마음을 실체로 보지 않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현되는 연산적 기능으로 보았다. 마음은 우리의 정신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혼과 같은 실체가 아니라 일정한 연산적 기능을 수행하는 컴퓨테이션의 과정이다. 그래서 마음은 두뇌에 있을 수도 있고 디지털 컴퓨터에 있을 수도 있으며 신경망에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연산적 학습과 프로그램에 집중하지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특정한 실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불교도 이와 비슷한 마음에 대한 비실체적 접근을 하고 있다. 마음이나 영혼은 몸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여러가지 요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현상을 실체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영혼의 불멸과 영속성에 사로잡히고 집착하는 태도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번뇌와 고통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극복하는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불교의 마음에 대한 자세이다. 불교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보자는 것을 주장하는 종교이다. 인공지능은 마음을 실체로 보지 않고 컴퓨테이션(계산적 정보 처리의 과정)으로 본다.
20세기 후반 인공지능 연구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마빈 민스키는 마음과 인간의 사고 능력을 단순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설명한다. 1986년에 출간된 『사회로서의 마음(The Society of Mind)』이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의 마음과 사고 능력을 에이전트(agent, 판단과 결정을 스스로 내릴 능력을 지닌 행위자)라고 하는 단순한 기능체들의 연합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마음의 문제는 불교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교는 마음이 가진 최고의 능력인 깨달음의 능력에 집중한다. 인공지능은 마음이 가진 최고의 인지 능력에 도전하고 있다.

마음은 따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여러 요소들이 (즉 에이전트들이) 모여서 나타나는 사회적 총합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것은 사실 불교에서 인간 존재를 오온(五蘊)이라는 다섯 가지의 요소를 통해
분산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인공지능과 불교의 마음에 관한 접근법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신경망(Neural Network)이라고 알려진 정보 처리체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경망 체계의 정보 처리는 망상 구조로 연결된 단자(unit)들에 의해서 수행되는데 이 단자들은 다른 단자들과 연결되어 입력된 신호를 처리한다. 이런 정보 처리 체계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의 구조와는 형태가 다르다. 일반적인 컴퓨터의 구조는 중앙 처리 장치(Central ProcessingUnit)가 신호의 흐름과 프로그램의 순차적 적용을 하나하나 통제하는데 신경망 체계에서는 이러한 집중적 관리 체계가 없고 정보 처리 과정이 체계 전체에 분산되
어 있다. 따라서 마음은 전 체계에 퍼져 있어서 체계의 한 부분을 꼭 집어서 이것이 마음이고 이것이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체계를 병렬 분산 체계(Parallel Distributed System)라고 한다. 정보 처리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병렬적으로 한꺼번에 일어나고 그것도 체계의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나누어서 일어난다. 이러한 체계에 관해서는 마음을 하나의 중앙 통제적 체계로 생각하거나 자아(自我)의 핵심적 실체로 간주하거나 생각을 일정한 내용을 가진 마음의 상태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설명이 필요하다. 신경망 체계에 따르면 마음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바뀌는 단자들의 활동 상태의 전체적 패턴이 만들어내는 통합적 영상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불교에서 마음과 자아가 실체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의 조건적 연결로 설명되는 방식과 흡사하다.

마음의 탈실체화와 탈신비화
이러한 인공지능의 철학은 마음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에 도전한다. 인공지능은 마음을 탈실체화하고 탈신비화하면서 마음을 절대화하고 영웅화하는 서양 근대 철학에 대해 포스트모던 디벙킹(Postmodern Debunking, 전통적 가치의 상대화와 전통 사상에 대한 비신비화와 비실체화)을 감행한다. 불교는 마음을 번뇌로부터의 해탈을 이루는 중심적 힘으로 보지만 그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이해하지 불변적 영혼의 자기 완성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결국 인공지능과 불교는 마음에 대한 우상 타파와 참된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마음의 능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인공지능의 깨달음 능력에 관해서는 학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인공지능에 대해 깨달음의 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무명(無明)함을 (무지함을) 아는 것을 깨달음의 중요한 조건으로 상정하고 인공지능은 무명함을 충분히 자각할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깨달음 가능성은 자아 의식에 달려 있는데 현재의 인공지능은 완전한 자아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이 외에도 현재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이 업식(業識, 습관화된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마음)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아직은 깨달음의 능력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있다. 이런 주장들은 최고의 정신 능력인 깨달음의 중요한 조건들을 인공지능이 만족할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고 동시에 인공지능에 관한 불교적 시각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현대 기술 문명의 최고봉인 인공지능과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 번뇌와 미망을 극복하는 불교가 마음과 지혜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계속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앞으로 개발될 인공지능의 창조적인 인지 능력이 주어진 조건에 집착하지 않는 불교적 깨달음의 능력에서 영감을 얻기를 기대한다.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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