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불교 2 | 인공지능의 자의식의 문제

인공지능의 자의식의 문제

한성자
국사편찬위원회 번역위원

 

인공지능과 불교는 둘 다 인간의 의식에 대해 연구한다는 점에서 그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불교에서 의식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은 불교 수행의 목표인 깨달음이 순수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순수의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청정하지 못한 의식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연구는 인간의 사고를 기계가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인공지능은 그 시작부터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갖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만큼 의식과의 관련성이 크다. 이 글에서는 자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호황을 누리게 된 정황을 살펴보고 미래에 강한 인공지능이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 여부를 의식에 대한 불교적 관점에서 점검해보도록 하겠다.
현재 인공지능의 학습과 활용은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하는 한계가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알파고는 바둑만 둘 수 있고 로봇청소기는 청소만 할 수 있어서 알파고에게 청소를 시킬 수 없으며, 청소기는 바둑을 둘 줄 모른다.
이렇게 전문가 시스템 내에서만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며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인공지능은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고 해도 약한 인공지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반해 특정한 범위 내에 국한되지 않고 영역의 구분 없이 어디에서나 작동하는 범용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며 강한 인공지능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각력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자의식을 지닌다. 마음을 기호 체계 시스템으로 보았던 인공지능의 출현 초기에 사물 일반을 데이터화해서 입력시키고자 한 시도가 실패한 이후 인공지능 분야의 대세는 특정 영역을 관장하는 약한 인공지능의 연구에 집중되고 있다. 강한 인공지능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과연 그런 자의식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이 미래에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회의주의적인 시각이 있다.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의 입력과 입력한 데이터에 대한 꾸준한 학습을 통해 언젠가 인공지능에게도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가능성을 확고하게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이점주의자들은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을 말한다. 특이점주의자들은 특이점이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 나노 기술(Nano-technology), 로봇 공학 및 인공지능(Robotics)의 기술적 혁명(GNR 혁명)을 통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들에 따르면 유전공
학을 통해 생명체의 원리를 파악하고, 나노 기술을 이용해 그 원리들을 조작해 초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되며, 특이점 이후 인류는 인공지능에 의해 멸종하거나 또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영생을 누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제 불교적 관점에서 강한 인공지능의 실현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에게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불교의 6식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이점주의자들을 비롯해 강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믿음은 인간의 마음은 유한 상태 기계(Finite Automata)이며 인간의 마음은 오로지 뇌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에는 물리적인 속성을 뛰어넘는 영혼과 같은 불변의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영혼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공지능 로봇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의 주장은 불경의 가르침과 공유하는 점이 있으며 또한 인간의 마음이 오로지 뇌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주장도 식(識, viññāṇa)은 조건을 갖춰야만 작용한다는 붓다의 교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불경의 여러 곳에서 붓다는 의식을 비롯한 인간의 6식이 조건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과 6식이외의 다른 식, 즉 한생으로부터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불변의 식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6식이 일어나는 조건은 안·이·비·설·신·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각각의 감각기관이 접하는 색·성·향·미·촉·법의 여섯 가지 대상이며 감각기관이 감각 대상을 접할 때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여섯 가지 식이 생긴다. 그러므로 원래부터 있는 인간의 의식이나 마음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삶과 더불어 삶의 경험치가 증가하면서 포괄하는 식의 범위도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개념이나 이름과 같은 것으로 저장된 의식의 대상이 되는 법의 범위도 갓 태어난 아기에 있어서는 제로였거나 아주 적었다가 삶의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의식 및 법의 확장과 함께 ‘나’라는 허상의 자의식과 ‘나의 것’이라는 허망한 집착이 생겨나게 된다.
불경에 나타난 의식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은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의식이 형성된다고 하는 점에서 수많은 데이터의 입력과 입력한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현생에 국한되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몸은 사라져도 존재를 향한 갈망은 죽음 후에도 작동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생존 욕망은 사후에는 존재를 이어가기 위한 욕망(有愛)으로 집중되어 다음의 몸을 찾아 존재를 지속한다.
이 욕망은 삶을 향해 질주하는 기운, 또는 에너지로서 이 기운에 의해서 생명체는 그 정체성을 달리해가면서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존재를 이어온 것이다.

특이점주의자들이 강한 인공지능의 탄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능의 확장을 주장한다면 그것의 가능성은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이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고주장한다면 불교의 불생불멸의 논리에서 이것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탄생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 불교는 불변의 영혼을 주장하지 않지만 또한 사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존재를 향한 욕망에 의해서 전생에 이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로부터 불쑥 솟아난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을 닮은 강한 인공지능이 될 수 없다. 사후에 작동하는 존재를 향한 유애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인간의 생존 욕망인 욕애(欲愛) 또한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은 이 힘에 의해서 갖가지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욕망이 결여된 인공지능이 그러한 행동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와 알고리즘을 갖춰야 할지 알 수 없으며 또한 아무리 많은 설비와 좋은 성능을 갖춘다 하더라도 인간처럼 자유자재한 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또한 강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또 다른 확실한 근거가 된다.
욕망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는 불교에서 자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불교의 핵심 경전인 『중론』은 자아 또는 존재 일반에 대해 모든 존재는 공(空)이고 가명(假名)이며 중도(中道)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존재의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말한 것으로 존재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순간순간 존재하는 개체들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오랜 세월을 두고 보면 어느새 사라져서 그것은 있지 않다. 그러나 없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 현재는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존재에 대해서 놓고 보면 비유비무를 끊임없이 오가는 연속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존재에 배당된 이 연속선은 다른 개체의 연속선과 섞이지 않는다.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이 연속선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힘은 욕망, 또는 업이다. 이 연속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불교의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하는 것이다.
이제 불교에서 존재 또는 자아를 이해하는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자아를 지닌 강한 인공지능의 구현 가능성을 가늠해본다면 강한 인공지능이 존재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겠다. 강한 인공지능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자체 내에 이런 연속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미래에 새롭게 존재할 수가 없다. 특이점주의자들은 미래에 유전공학이 생명체의 원리를 파악하게 되면 나노 기술을 통해 초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설령 인류가 생명체의 원리를 완전히 파악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조작해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존재의 연속선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힘, 그것을 욕망이라고 부르든 또는 업, 알라야식, 명근 등의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그 어떤 힘을 불어넣지 않는 한 그것은 물질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존재 또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티끌만 한 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은 생명체로 태어날 수 없고 거기에 자아가 형성될 수도 없다. 특이점주의자들이 강한 인공지능의 탄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능의 확장을 주장한다면 그것의 가능성은 부정되지않는다. 그들이 뇌 스캔과 뇌 역분석을 통해 대뇌 신경망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인간 신체 부위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뇌까지도 인공 신경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가능성이 있다. 이미 있는 것을 변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이 새롭게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불교의 불생불멸의 논리에서 이것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또는 인공지능 로봇이 앞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발전을 지속해나가든 그 자체 내에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면서 광범위한 인식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의식 없이 광범위한 인식 작용을 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지금 현재도 약한 인공지능이 특정 범위 내에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식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뛰어난 인식 능력은 앞으로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인간은 그 앞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자의식을 붙잡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더욱이 인간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할 때 인공지능은 흔히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완성한다. 자의식이 없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꽤 두려운 일이다. 고차원적인 자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과 근본적인 소통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으로 미래의 어떤 순간에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한성자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 및 동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했다. 독일 보쿰대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강사, 동국대 강사 및 BK21 연구교수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문판 번역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불교와 비교종교학」,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불가분성에 대한 고찰」, 「인공지능 로봇은 해탈할 수 있나」 등과 번역서로 『심조만유론』 등 다수가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3 × thr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