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이야기 6 | 절대적 중심이 없는 세계

절대적 중심이 없는 세계

주반원명구덕문

양형진
고려대학교 디스플레이 ・ 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불교와 그리스의 4원소설
인류가 물질세계에 대해 궁금해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천체의 규칙적인 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의 세계관에서 이 두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4원소설에서 출발하자. 불교와 그리스 문명에서는 세계가 흙, 물, 불, 공기의 네 원소(element)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세계가 네 요소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두 문명이 이를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상당히 달랐다. 불교는 이를 통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설명한다. 네 가지 존재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 요소가 화합하는 인연이 성립하면 존재가 형성되고, 이 화합하는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원각경』 「보안보살품」에서는 “4대가 각기 흩어지면, 4대가 화합한 너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의 4원소설과 연금술과 화학
이와 달리 그리스에서는 이 네 요소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규명함으로써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엠페도클레스(BC 약 492~432)의 4원소설을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우주가 흙, 물, 불, 공기의 네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네 원소는 습함과 건조함,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두 쌍의 성질과 관련된다. 불은 뜨겁고 건조하고, 물은 습하고 차가우며, 흙은 건조하고 차갑고, 공기는 습하고 뜨겁다. 두 쌍의 서로 대비되는 성질이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결정된다.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관점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물질세계가 몇 안 되는 기본적인 원소로 이뤄져 있다고 보는 점에서 근대 과학의 원자론과 맥을 같이하는 세계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소가 지니는 두 가지 성질 중의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면, 다른 원소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연금술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원소가 상호 변환될 수 있다면 보통의 금속으로 금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은 실패했지만, 수많은 화학약품과 실험 기구, 실험 방법을 개발하면서 근대 화학의 기반을 구축했다.

지구중심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설을 활용해 낙하운동을 설명했다. 땅을 이루는 흙은 무거워서 밑으로 낙하하는 속성을 지닌다. 무거운 물체는 이 속성이 커서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낙하한다. 흙의 무거운 속성은 지구의 위치를 정하는 데도 활용됐다. 무거운 흙으로 이뤄진 지구는 그 중량이 무거워서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것이 지구중심설(천동설)이다. 태양을 제외한 모든 별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움직이더라도 지구에서 보는 별의 상대적 위치는 아주 조금 변할 뿐이다. 그래서 태양을 제외한 모든 항성은 마치 하늘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모든 천체는 정확하게 하루에 한 번씩 회전한다. 상대적 위치가 고정된 천체가 하루에 한 번씩 회전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구(celestial sphere)가 도입되었다.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가 하루에 한 번씩 회전한다고 하면, 태양계를 제외한 모든 천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중심설
태양중심설(Heliocentricism, 지동설)은 천체의 회전을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설명한다. 태양계의 천체를 제외한다면, 천체의 회전에 대한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의 설명력은 동일하다. 상대론(Relativity)의 관점에서 보면, 천구가 회전한다는 것은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과 완벽하게 같기 때문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적 중심이나 절대적 주인공이 있을 수 없다. 법계는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주체(主)인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조건(伴)인 보조자가 된다.

그러나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고려하면 두 이론의 설명력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지구중심설은 주전원(epicycle) 같은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장치를 여러 개 도입하지 않으면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와 달리 태양중심설은 행성의 역행이나 내행성의 최대 이각 등 행성의 특이한 겉보기 운동을 타원 궤도만으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을 발견함으로써 모든 천체가 지구를 공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태양중심설은 금성의 겉보기 크기의 변화, 보름달 모양의 금성, 연주 시차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주반원명구덕문(住伴圓明具德門)
오늘날 우리는 지구와 태양의 어느 것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 은하 중심부의 블랙홀은 수천억 개의 항성을 공전하게 하지만 이마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 때문에 우주 안의 어느 지점도 우주의 중심일 수 없다.
그럼에도 굳이 중심이 있어야 한다면, 우주의 모든 부분이 다 중심이다. 나는 너로 인해 있으므로 네가 주인공이고 중심이며, 너는 나로 인해 있으므로 내가 주인공이고 중심이다. 이게 연기의 법칙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씨앗이 싹이 되려면 물이 있어야 하듯이, 한 송이의 꽃이 피려면 새가 울어야 하고 새가 울려면 꽃이 피어야 한다. 꽃이 필 때는 꽃이 주인공이고 새가 보조자가 되지만, 새가 울 때는 새가 주인공이고 꽃이 보조자가 된다. 이래서 절대적 중심이나 절대적 주인공이 있을 수 없다. 법계는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주체(主)인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조건(伴)인 보조자가 된다. 화엄의 3조 법장은 주와 반이 원융하고 명백해 일체의 공덕을 두루 갖췄다고 했다. 주반원명구덕문이다.

● 이번 호를 끝으로 <불교와 과학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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