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불교 | 박종화의 불교적 상상력과 인간 구원의 문제

박종화의 불교적 상상력과 인간 구원의 문제

사이채
소설가

 

박종화 시인

 

불교가 인간 구원의 수행을 통해 불타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점에서, 문학이 추구하는 존재론적이며 이상적인 사유가 불교가 추구하는초월적 사유에 닿아 있음을 말한다. 박종화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불교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를 사유하려고 한다.
박종화 시인

 

불교가 인간 구원의 수행을 통해 불타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에서, 삶의 성찰과 우주 질서의 통찰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를 드러내려 하는 문학과 그 궁극이 다르다 할 수 없다. 즉 문학이 추구하는 존재론적이며 이상적인 사유가 불교가 추구하는 초월적 사유에 닿아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 시대의 문학을 풍미한 박종화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를 사유하려고 한다.
1919년 3・1운동의 좌절은 당시 젊은 지식인들을 절망케 하고 정신적 방황을 겪게 한다. 그 좌절감을 배경으로 1920년대 허무적인 낭만주의 문학이 나온다. 박종화도 그렇다. 휘문고보 졸업을 앞두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다. 만세운동이 무위로 끝나자 그 절망감은 그에게 문학에 더욱 몰두하게 한다. 이 시기에 나온 동인지 1920년 『문우』, 『폐허』,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에 모두 박종화가 있다. 시로 등단한 박종화의 두 번째 시집 『청자부(靑磁賦)』에서 시 몇 편 읽는다. 「십일면관음보살」은 대자대비한 화엄의 세계를 잘 드러낸다.
고운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백어(白魚) 같다/ 신라 옛 미인이/ 저렇듯이 거룩하오?/ 무릎 꿇어 우러러 만지면/ 훈향내 높은 나렷한 살 기운/ 당장 곧 따스할 듯하구나. – 「십일면관음보살」 3연
보살상(像)의 아름다움을 상찬하면서 관음보살의 대자대비에 힘입어 일제 강점에 놓인 조국이 환한 미래를 맞이하도록 기원한다. 십일면관음상은 서방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아미타불의 성화(聖化)를 돕고, 널리 중생을 교화해 이끌어주는 숭고한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불상(佛像) 시(詩)에는 「석굴암 대불」 연작시도 있다. 이 시편은 민족애와 역사의식을 저변에 두고 있다. 1편에서 신라 천 년의 무양(無恙)이 부처님의 공덕이라 말하고 2편에서 신라 천 년에 이어 다시 천 년이 지나 나라가 곤경에 처해 있다며 통곡하고 원망도 한다. 이어 3편에서 부처님의 자비 말씀으로 매듭짓는다.

동해바다 물결 드높아/ 허옇게 부서져 사나우니/ 미소하시어 누르시다./ 천년 긴 세월을/ 두 어깨에 받드시다./ 신라의 큰 공덕이/ 님 때문이시니라. (1편)
솔바람 새소리에/ 다시 천년이 갔네/ 몸부림쳐 님의 무릎에/ 통곡하고 싶구나. (…) 동해 말랐다오/ 무엇을 지키시오. (2편)
눈감고 고즈너기 이르는 말씀/ 바다 마르거니 물이야 없을 거냐/ 고요히 침묵을 지키라 하시다. (3편)

그 불심은 보상화문(寶相華紋) 불타(佛陀) 무늬가 새겨진 고려청자에 남아 오늘에 이른다.

선(線)은/ 가냘핀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菩薩)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 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陰影)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翡翠)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 청자기!//
술병 물병 바리 사발/ 향로 향합 필통 연적/ 화병 장고 술잔 베개/ 흙이면서 옥(玉)이더라.//
구름 무늬 물결 무늬/ 구슬 무늬 칠보 무늬/ 꽃 무늬 백학(白鶴) 무늬/ 보상 화문(寶相華紋) 불타(佛陀) 무늬/ 토공(土工)이요 화가더라/ 진흙 속 조각가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 청자기!// – 「청자부(靑磁賦)」 전문

 

이번에는 소설로 가본다. 1925년에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조직되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활기를 띤다. 이에 대응해 다른 편에서 국민문학운동을 벌인다. 이 운동은 국민 의식을 북돋는 작품, 민족사에 눈뜨게 하는 역사소설 창작, 시조 부흥 도모 등 세 가지를 강령으로 삼는다. 그 역사소설의 중심에 박종화가 있다. 그는 1935년 『금삼의 피』를 시작으로 『대춘부(待春賦)』, 『다정불심(多情佛心)』, 『임진왜란』, 『여인천하』, 『세종대왕』 등 많은 역사소설을 내는데, 그 대부분이 영화나 드라마로 나온다. 『다정불심』도 영화 <다정불심>(1967년 신상옥 감독), 드라마 <신돈>(2005년 MBC)으로 재탄생한다.
역사소설 『다정불심(多情佛心)』은 고려 공민왕 왕기와 왕비인 노국 공주의 사랑 이야기이나 이 소설을 단순히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 놓치는 게 많다. 엄연히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고려는 여몽전쟁 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몽골족이 세운 중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다. 이 시기에 세자는 원나라에 체류해야 하며 고려의 왕이 죽으면 귀국해 왕위를 잇는다. 또한 그의 아내는 원나라 공주여야만 한다.
충숙왕의 삼남 왕기도 열두 살에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원 위왕의 딸 노국 공주와 혼인하고, 고려로 돌아와 왕이 된다. 왕기는 14년 동안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를 펼치는 동시에 조정 내 친원 세력을 견제한다. 하지만 노국 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노국을 애도하기 위해 불사를 일으켜 영전(影殿)을 짓는데 정신이 팔린다. 왕기는 신돈을 섭정에 세우고, 신돈은 혁명적인 정책을 펴면서 백성의 신망을 받지만,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가에게는 정적이 된다. 신돈은 왕에게 평양 천도와 영전 불사 중단을 건의했다가 죽음을 맞는다. 공민왕 역시 피살되고 만다.
절절한 사랑과 애끓는 슬픔으로 인해 왕기가 정사를 포기하고 파탄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 그렇게만 단정할 수 없다.
노국의 죽음으로 인해 정치 기반이 약해진 왕기로서는 친원 세력의 드센 반발이 불 보듯 뻔했을 터이니 승려 신돈을 정치 전면에 내세운 건 나름의 차선책이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인물은 왕기의 아들을 낳은 반야다. 반야가 신돈의 첩으로 왕기의 아이를 낳았다는 둥 여러 설이 있지만, 우의 친모는 궁인 한씨라는 게 정설이다. 왕기는 아들 우를 신돈의 사가에서 기르도록 한다. 우왕은 후에 한씨를 순정왕후로 추존한다. 작가는 왜 궁인 한씨를 반야로 바꿔치기한 것일까.
신돈은 반혼법(返魂法)이라 속임수를 써서 노국을 대신해 반야를 왕기와 합방하도록 한다. 신돈은 반야를 그저 북방의 여인이라고 소개한다. 즉 반야는 평민이다. 잘 알다시피 반야(般若)는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반야를 얻으려면 집착해서는 안 될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한다. 공(空) 사상이다. 다른 왕후들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심은 이미 공이 아니다. 평민 반야는 공 상태이므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셋째 인물은 왕기가 반야에게서 낳은 아이, 후에 우왕이 되는 무니노(牟尼奴)다. 왕기는 석가무니불(釋迦牟尼佛)에서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잘 알다시피 무니(牟尼)는 성자라는 뜻이다. 왕기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불타 세계를 우왕이 이루기를 기원했는지도 모른다. 소설 막바지는 왕기가 공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삽시간 일이었다. 왕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넋은 날아 그리운 공주를 찾았으리라. 다정이 병이 아니고 무엇이랴. 뒷사람들은 왕을 가리켜 공민(恭愍)이라 불렀다. 세상 사람들은 노국을 절대 이상으로 삼은 왕기의 사랑이, 다정이 그를 파멸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정(多情)이 공민(恭愍)이 아니라 불심(佛心)이기를 원
했던 왕기, 그의 죽음은 노국 대신 신돈을 통해 이루려던 개혁, 즉 불타(佛陀) 세계 건설의 소원이 허망하게 끝났음을 의미한다. 우왕도 그 뜻을 잇지 못하고 이성계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역사는 슬프다.

사이채 소설가로 김우종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로 『염』, 『잠들지 않는 물고기처럼』, 소설집 『사랑, 고놈』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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