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이 읽어주는 불교 詩 | 절

/ 고형렬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장 한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 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잎 한잎 떨어지는 동안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걸어간다

 

고형렬 시인의 이 시는 1998년에 펴낸 시집 『성에꽃 눈부처』에 실려 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면서 ‘후기’룰 통해 “가급적 시간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틈을 내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린다. 그렇게 마음을 버리면 그들은 나와의 처음 만남이 된다. 사람은 예와 오늘이 있지만(人有古今) 법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法無遐邇)고 했다”라고 썼다. 법은 진리를 일컫는 것일 테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법성을, 본래면 목을 만나는 선열(禪悅)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뜻일 테다.
고형렬 시인의 시집 『성에꽃 눈부처』에는 불교 시가 여러 편 등장한다. 「아미타魚」, 「淸凉寺址를 지나가다」, 「열반 잔치 전에」, 「성에꽃 눈부처」, 「설악산 끝 봉정암」, 「선암사」 등의 시편들이 그것이다. 「설악산 끝 봉정암」에서는 “성스러운 것은, 그 눈보라 속에 서 있는 한 백골집/ 뿔 돋은 벼랑 끝 노송처럼 솔잎을 떨며 지키는 것 하나와/ 아이 같은 봉정암, 그 안 오롯하신 한 채의 몸”이라고 써서 사찰이라는 수행 공간을 욕망을 벗어던진 성스럽고 온전하고 모자람이 없는 곳으로 이해했다. 시 「절」은 사찰에 가서 몸을 굽혀 절을 하면서 항상하고 아름다운 것은 ‘덧없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덧없음’은 곧 무상(無常)을 말하는 것
일 테다. 계절이 바뀌고, 잎이 돋고 잎이 지고, 온기와 한기가 서로 교차하며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일도 무상을 경험하는 일일 테다. 그리고 시인은 이 절하는 수행을 통해 모든 생명을 공양해야겠다는 생각도 갖는다. 시 「소란」을 통해 “내 이 육신은 얼마나 소란한 것인가/ 지금 이 육신은 얼마나 소란하신가”라고도 썼는데, 아마도 시인은 절을 하는 동안에도 그 소란한 육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정려(靜慮)에 이르렀을 것이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BBS)』 제주지방사 총괄국장
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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