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 | 2. 마침내 생명과 하나 되는 예술을 향하여

2. 마침내 생명과 하나 되는 예술을 향하여

『풍경의 깊이』

강요배 지음, 돌베개 刊, 2020년

 

강요배 작가의 그림은 ‘풍경 뒤의 또 다른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은 다만 풍경의 가장 바깥에 있는 껍질일 뿐, 그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재능이 아닐까. 그
는 화가의 일이 순수한 영감을 통한 창조가 아니라 온갖 이질적인 체험들 속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내가 미처 모르는 나’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완성된 형태의 사유를 드러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도 생성되고 있는 듯한 살아 있는 사유의 힘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는 매우 닮았다. 소가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듯, 묘사의 대상이 자기 안에 들어와서 5년이든 10년이든 숙성되는 것. 그리하여 그 묘사의 대상이 마음속에 가장 커다랗고 생생한 풍경으로 부풀어 오를 때,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쓴다. 마음속에 담긴 대상이 더 커다란 말을 걸어올 때까지, 희미한 안개처럼 꿈틀거리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나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예술가는 기다리고, 탐구하며, 끊임없이 실패를 감수하며 묘사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예술가는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듣는다.
강요배 화백의 글은 자신의 그림을 단지 해설하지 않는다. 글 자체가 또 하나의 붓이자 보이지 않는 약손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그의 그림과 글을 함께 바라보면 한 차례 맵찬 바람이 지나간 뒤 섬의 중심에 의연히 앉아 있는 새하얀 산, 한라산의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림과 글은 마치 피아노와 첼로의 하모니처럼, 소리꾼과 북소리의 하모니처럼, 우리 안에서 새로운 멜로디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그림과 글의 하모니는 시간 속에 흘러가는 사건을 포착하는 데 훌륭한 팀플레이를 해낸다. 거대한 고목을 스쳐 가는 바람결, 억새가 우거진 제주의 오름 위로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남편이나 오라버니가 있는 산으로 간장과 소금을 지어 나르는 여인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제주 여인들의 고된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감동을 창조하는 존재, 예술가는 우선 자기 자신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다. “그것은 먼저 창작자 자신을 놀라게 해야 하고, 다시 감상자의 마음을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그가 그림 앞에 섰을 때, ‘어!…아하…야~’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나를 감동시켜야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비로소 붓을 뗄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이 제주를 지탱해온 민중들의 저항의 역사와 함께하기에 더욱 ‘이야기가 있는 그림’의 감동은 커진다. 부당함에 분노하고, 차별에 분노하고, 잘못된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속에 숨은 따스함. 그것이 제주뿐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을 잉태하는 모든 장소의 얼이다. 강요배는 나이 들수록 더 어눌해지고 어설퍼지는 것, 좀 더 단순하고 소박해지는 것,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것이 예술가의 본령임을 일깨워준다. 마음의 잡티가 사라져가는 것, 욕심을 내려놓고 점점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 산을 잘 올라가는 것보다는 산을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되는것. 그리하여 어린아이의 천진무구함과 노인의 지혜로움을 동시에 간직한 화가의 글쓰기가 우리 모두에게 정다운 마음챙김의 지침서로 다가온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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