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무엇인가 1 | 불교가 보는 고통

불교가 보는 고통
왜 ‘일체개고( 一切皆苦)’ 인가?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에게 삶은 왜 고통일까? 그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석가모니는 이 물음의 답을 찾고자 출가해 수행했고, 그 답을 깨달은 후에는 살아 있는 모든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가르침을 폈다. 불교의 성스러운 가르침인 고집멸도( 苦集滅道) 4 성제( 聖諦) 는 고( 苦) 의 실상( 고) 과 고의 원인( 집), 고가 멸한 경지 (멸) 와 그리로 나아가는 길( 도) 을 말한다. 이처럼 고를 중심으로 기본 가르침을 편 다는 것은 불교가 일반 중생이 느끼는 고통을 얼마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 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불교 4법인( 法印) 의 하나인 ‘일체개고( 一切皆苦)’ 는 고가 우 리 삶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삶 전체가 고의 무게를 짊어 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고를 불교는 생·로·병·사·애별리·원증회·구부 득·오음성고 8고( 苦) 로 정리한다. 탄생 이후의 모든 신체적 심리적 변화와 사회 적 관계에 고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개고’를 말한다고 해서 불교가 즐거움이나 기쁨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교는 느낌을 세세하게 둘 또는 셋 또는 다섯으로 구분해 논한다. 흔히 말하는 고·락·사는 느낌을 셋으로 나눈 것이다. 달콤한 꿀처럼 대상 이 내게 수순할 때의 느낌은 즐거운 느낌 락수( 樂修), 쓴 약처럼 대상이 내게 거스 를 때의 느낌은 괴로운 느낌 고수( 苦受), 특별히 수순하지도 거스르지도 않을 때의 느낌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비고비락의 사수( 捨受) 이다. 이러한 고·락·사의 느낌은 다시 크게 신수와 심수 둘로 나뉜다. 신수( 身受) 는 우리의 신체가 물리적 대상과 접촉해 일어나는 몸의 느낌이다. 이 몸의 느낌은 곧 바로 마음속 근본 번뇌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즉 탐진치를 건드려서 탐진치 에 물든 느낌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곧 마음의 느낌 심수( 心受) 이다. 락수 중 탐욕 (탐심) 이 일으킨 느낌이 기쁜 느낌 희수( 喜受) 이고, 고수 중 분노( 진심) 가 일으킨 느 낌이 슬픈 느낌 우수( 憂受) 이다. 희수와 우수가 신수와 대비되는 심수이다.

이와 같이 느낌을 고·락·사 셋으로 또는 고·락·우·희·사 다섯으로 구분한 다는 것은 불교가 우리에게 고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도 있고 비고비락의 느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고와 락, 기쁨과 슬픔이 수시 로 교차하는 것을 느끼며 산다. 그런데도 불교는 왜 ‘일체개고’라고 하는 것일까? 불교는 모든 느낌은 결국 가장 광의의 고( 苦) 하나로 귀결된다고 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와 락과 비고비락의 느낌이 궁극적으로는 모두 하나의 고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락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 순간에는 락이어도 곧 그 락이 다해 무너져 고로 돌아가기에 ‘무너지는 고’라는 의미에서 ‘괴고( 壞苦)’ 이고, 일상적 고는 그 자체가 고이므로 ‘고 중의 고’라는 의미에서 ‘고 고( 苦苦)’ 이며, 비고비락은 아직은 고나 락으로 분화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곧 고나 락으로 전개될 수 있기에 결국 고를 품고 있어 ‘행고( 行苦)’ 라고 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 의미의 고와 락과 비고비락이 결국은 궁극적 의미의 고에 모두 포섭되므로 ‘일체개고’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락은 왜 곧 무너져서 고가 되는 것일까? 고 와 락은 서로 어떤 관계이기에 모든 느낌이 다 고로 귀결되는 것일까? 고와 락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서로 상대적이라는 것만으로 ‘일체개고’가 성립하지는 않 는다. 단지 서로 상대적일 뿐이라면, 즉 락이 고가 되고 고가 락이 되는 것이라면, ‘일체개고’가 아니라 ‘일체개락’이라고 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일체 개고’라고 하는 것일까?
신체 현상을 보자.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고 또는 음식을 먹는다고 락을 느끼지 는 않는다. 그것은 몸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살 아 있다고 락을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숨을 쉬는 것, 음식을 먹는 것이 락으로 다가올 때는 죽을 뻔하다가 살게 되거나 숨이 막혔다가 숨 쉬게 되 거나 계속 굶다가 먹게 될 때이다. 이처럼 락은 고를 전제해야만 느낌으로 다가온 다. 고가 사라지는 순간 바로 딱 그만큼의 락이 느껴지는 것이다. 위가 비어 있으면 고이고, 그 빈 위가 채워지는 동안이 락이다. 그러다가 위가 다 채워져서 더 이 상 고가 없으면 락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락은 고를 전제한다. 반면 고는 락을 전제하지 않는다. 살기 위한 에너지가 결핍되면, 즉 숨을 못 쉬게 되거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그래서 사는 게 힘들어지면 기본이 깨지므로 그냥 단적으로 고 가 느껴진다. 고에 앞서 락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음식을 먹어 위 가 채워지면, 고도 없고 락도 없는 비고비락이 된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비고비 락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 충전된 에너지는 곧 소모되기 시작하고 그러면 다시 결핍이 시작되어 서서히 고가 쌓여간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한 기본으로 여기는 의식은 현재 내게 없는 것을 지향하는 의식이기에 계속 결핍의 의식이고 불만과 고통의 의식일 수밖에 없다.  

결국 비고비락의 0에서 출발해서 곧 서서히 마이너스(-)로 내려가기 시작하고 그 결핍의 크기만큼 고가 느껴진다. 그러다가 축적된 마이너스의 결핍이 채워져 다시 0이 되는 순간 락을 느끼지만, 그렇게 0으로 돌아와 기본이 갖춰지면 다시 비고비락이 된다. 그리고는 곧 다시 마이너스로의 이동이 일어나면서 같은 것이 반복된다. 이렇게 보면 삶은 마이너스로 비웠다가 0으로 채우고 다시 비웠다가 0으로 채우는 고의 연속이다. 락은 고가 사라지는 그 짧은 순간의 반짝거림일 뿐 락 자체의 플러스(+)의 실재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심리적 차원의 고락, 슬픔과 기쁨은 무엇일까? 신체와 마찬가지로 심 리적 차원에도 기본이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미 이루 어놓은 것들은 내게 모두 당연한 기본으로 간주되어서 나는 그것으로 인해 기쁨 을 느끼지 못한다. 눈을 떠서 하늘을 볼 수 있고 귀를 열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이웃과 대화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을 갖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기는 어렵다. 그것들은 그냥 당연한 기본으로 간주되기 때문 이다.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때는 현재 내게 없지만 그래도 갖고 싶은 것, 현재 내 가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루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성취할 때이다. 그래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고자 우리는 쉼 없이 노력한다. 노력하는 동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에 힘든 고통의 시간이다. 드디어 성취되면 그동안의 고통 의 대가로 기쁨을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 기쁨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한다. 일단 성취한 것은 내게 다시 당연한 기본이 되어버리고, 나는 그 기본의 바탕 위에서 다시 그다음의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 이르기 위한 인내와 고통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죽어라 공부하면서 대학만 가면 엄청 기쁠 거라 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대학에 가면 그것은 기본이 되어버리고, 취업이 되어야 기쁠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취업이 되면 승진이 되어야 기쁘고, 승진이 되면 연 봉이 억이 되어야 기쁘고, 그다음은 집을 사야 기쁘고, 그다음은 더 큰 집을 사야 기쁘고. 그런 식으로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기쁨은 예상되는 미래 속에만 있고 그리로 나아가는 현재는 언제나 힘든 인내와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성취가 지속 적 기쁨의 원천이 되지 않는 것은 성취가 곧 기본으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현 재 내가 가진 것을 당연한 기본으로 여기는 의식은 현재 내게 없는 것을 지향하 는 의식이기에 계속 결핍의 의식이고 불만과 고통의 의식일 수밖에 없다. 신체는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반복적으로 결핍이 발생해 마이너스로 나아가게 되어서 고가 되풀이되지만, 심리적으로는 과연 무엇이 고를 반복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성취한 결과를 모조리 기본으로 바꾸어버리는 마음, 그리고는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설정해 자신 안에 끊임없이 결핍을 만 들어내는 마음, 바로 ‘탐욕’의 마음이다. 이 탐욕으로 인해 우리는 락에 머물지 못 하고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여 고통 속에 살게 된다.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이룰수록 더 많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탐욕으로 인해 기본의 수위가 자꾸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본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기쁨을 느끼기는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인생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불교가 탐욕을 근본 번뇌라고 말하는 것은 탐욕이 우리에게서 즐거움이나 기 쁨을 빼앗아버리고 고통만 남겨놓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 움과 기쁨은 오히려 가장 밑바닥의 기본에 담겨 있는데, 탐욕이 우리의 의식의 문 턱을 자꾸 높여서 점점 더 그 기본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결국 그 최고의 즐거움 과 기쁨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죽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면, 내 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 않을까? 눈멀고 귀먹음이 엄청난 슬픔이라면, 지금 눈 떠서 창밖을 보고 귀 열어 새소리를 듣는 것이 엄청 난 기쁨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눈 뜨고 귀 열고 살아 있으면 서도 그것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느끼지 못한다. 본래의 기본 안에 담겨 있는 그 최고의 즐거움과 기쁨에 무감각해지면, 남겨지는 것은 결국 그 큰 즐거움과 기쁨 을 다 빼고 남는 것, 고통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불교는 우리 어리석은 중생을 향해 ‘일체개고’를 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탐욕과 분노에서 먼저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서양 철학(칸트)을, 동국대 불교학 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했다. 현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 엇인가』, 『유식무경: 유식 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 『불교철학과 현대 윤리의 만남』, 『심층마음의 연구』 등이 있으며, 역 서로는 『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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