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무엇인가 3 |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로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로움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최고의 국가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 에서 경제 발전을 일구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 득은 3만 달러를 뛰어넘었고 국민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인터넷 보 급률도 높아서 일상생활이 놀라울 정도로 편리해졌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번 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가장 행복해야 할 한국인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삶은 괴롭고 고달프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 서 지난 수년 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 전반적 행복도는 OECD 국가 중 에서 하위권이며, 특히 청소년의 행복도는 지난 10년간 연속 꼴찌다. 많은 한국인 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을 원하고 있으며 심리 상담실마다 삶의 괴로 움에서 벗어나려는 내담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국인의 삶은 왜 이렇게 괴롭고 고달픈 것일까? 인간의 삶이 본래 이렇게 괴롭고 고달픈 것일까?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은 괴로움과 불행을 경험하고 있을까?

괴로움의 보편적 원인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다(Bad is stronger than good).’ 이 명제는 인간의 생명 과 행복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세력이 그것을 증진하는 긍정적인 세력보다 더 강력 하다는 의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자연 세계는 자체의 원리에 따라 무심하 게 운행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 세계는 모든 것을 무질서와 혼돈으로 몰아감으로써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위협하는 거대한 원리에 의해서 운 행되고 있다. 자연과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이 그것이다. 우리가 육신을 지닌 존재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물리적 세계를 움직 이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엔트로피 증대를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 즉 애써야 하는 노고( 努苦) 가 필요하다. 행복하려면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고 수시로 만나서 애정과 우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삶에는 희로애락이 병존하 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힘들여 애써야 하는 괴로운 것이다.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다’는 말은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세 계에도 해당되는 명제다. 인간의 마음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의해서 더 강한 영향 을 받는다. 인간이 손실을 보았을 때의 괴로움은 동일한 액수의 이득을 보았을 때 경 험한 기쁨보다 2배 이상 강하다. 실패의 아픔은 성취의 기쁨보다 더 강렬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아픔은 칭찬을 받을 때의 기쁨보다 최소한 5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장점보다 단점을 더 예리하게 포착 한다. 또한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처럼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의 성향을 심리학에서는 ‘부정 편향 (negativity bias)’ 이라고 부른다. 진화 과정에서 좋은 것을 지향하기보다 나쁜 것을 회피 하는 것이 생존에 더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도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괴로움의 집단적 원인
행복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저명한 긍정심리학자인 에드 디너(Ed Diener)는 2010년 한국심리학회에서 개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인이 경제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우선 한국인은 물질주의 성향이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다. 조사 대상 5개국( 한국, 미국, 일본, 덴마크, 짐바브웨) 중에서 한국인은 물질적인 부( 富) 를 가장 중시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얻기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 다. 물질주의(materialism)는 재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얻기 위한 과도한 노력으로 인해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하게 만듦으로써 행복 을 훼손하는 심리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 라 경쟁의식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하거 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라는 물음에 한국인은 조사 대 상인 5개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숫자로 응답했다.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신 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연 구 결과를 바탕으로 디너는 한국인이 물질적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경쟁적 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신 수준이 높고 가족 관 계와 친구 관계도 허약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노가 많은 사회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동서의 지역 갈등, 기업의 노사 갈등, 정치권의 여야 갈등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다 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갈등은 한국인의 인간관계를 피폐 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한국인 대다수는 조급함 속에서 여유 없이 바쁜 삶을 영 위하고 있다. 가족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배려할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인간관계가 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괴로움은 자기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근본적인 보편적 망념, 외적인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집단적 망념, 그리고 항상 자신은 완벽해야 하고 타인은 호의적이어야 하며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개인적 망념에 기인한다.

한국인의 삶이 괴롭고 고달픈 이유는 행복한 삶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인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과도한 물질주의적 욕망, 치열한 경쟁과 갈등, 진정한 행복 의 조건에 대한 무지가 팽배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탐· 진·치의 삼독( 三毒) 에 깊이 물든 아수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움의 개인적 원인
모든 한국인이 다 괴롭게 사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사 람들도 그들이 펼치는 삶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개인이 처한 특별한 상황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과 인생관이 개인적인 괴로움의 색깔과 농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괴로움의 원인을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이 경험하는 괴로움은 상황적 인 외부 요인보다 심리적인 내부 요인에 의해서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동일한 사건도 그것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서 결과가 현저하게 다르 기 때문이다. 사건의 의미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일수 록 더 많은 괴로움을 겪는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의 결과를 실패, 상실, 좌절 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자신은 열등하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 울해질 수밖에 없다. 저명한 심리 치료자인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에 따르면,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많이 지닌 사람들이 사건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심리적 고통을 많이 겪는다. 예컨대 하는 일마다 성공해야 하고 다른 사 람들로부터 항상 인정받아야 한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 항상 자신에게 친절해야 하고 자신의 바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타인에 대한 기대, 항상 공정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세상에 대한 기대가 과도할수록 괴로 움도 커진다. 특히 이러한 기대를 건강한 소망으로 지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 켜져야 할 당위적 요구(absolutistic demands)로 여길 때 삶의 괴로움은 증폭된다. 그 러한 당위적 요구는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렵기 때문에 좌절감을 자주 유발할 뿐 만 아니라 당위적 요구가 좌절되었을 때 그 상황을 더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해 더 강한 심리적 불만과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필자를 포함해 한국인이 겪는 괴로움은 세 가지의 업( 業) 에 기인한다. 그 첫째 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법칙에 역행해 살 아가야만 하는 생명체로 태어난 업이다. 또한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많은 주 의를 기울여 더 강한 영향을 받는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난 업이다. 둘째는 한국 사회가 급속하게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며 경쟁적인 삶에 매몰되어버린 한국인으로 태어난 업이다. 그러한 사회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가치관으로 지니게 된 업이기도 하다. 셋째는 개인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나름대로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상처, 즉 개인적인 업이 다. 고통스러운 경험과 상처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를 갖게 해 생활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괴로움을 유발한다. 자신의 삶 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기대, 즉 망념과 집착을 알아차리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업이기도 하다. 인간이 겪는 괴로움은 자기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근본 적인 보편적 망념, 돈과 권력을 비롯한 외적인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 이라는 집단적 망념, 그리고 항상 자신은 완벽해야 하고 타인은 호의적이어야 하 며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개인적 망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 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사유 능력으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수많은 망념의 그물에 걸려 괴로움의 늪에 빠지곤 한다. 이런 점에서 인 간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의 현실 속에서 생로병사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어도, 생로병 사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이 우리의 삶을 침범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을 침범할 수는 없다. 욕망이 들끓는 아수라의 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여곡절의 개인적 인생 속에 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며 망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혜로운 삶으 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과거의 업에 끌려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미 래의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기도 한다.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부 환 경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는 점에서 동양의 종교인 불교와 서양의 학문인 심리학은 전생에 가까운 친인척 이었던 듯하다.

 

권석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 보는 인간의 마음』,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 『현대 이상심리학』, 『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 , 『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 『인간관계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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