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무엇인가 4 | 사회적 고통

사회적 고통

유승무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사회적 고통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까?
우리는 무엇을 사회적 고통이라 하는가? 우선 외연의 차원에서 볼 때 어떤 개 인이 감기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 고통이지 사회적 고통이 아니다. 또한 천재지변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등 크나큰 고통을 당했더라도 그 것은 자연재해일 뿐이지 사회적 고통은 아니다. 사회적 고통은 사회적 원인이란 발생 조건과 그 사회제도적 혹은 사회운동적 해결이란 방법론적 특수성을 내포 하고 있어야 하는 바, 개인적 고통이나 천재지변은 그러한 두 가지 요건을 모두 혹은 하나 이상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우한시에서 코로나19 가 발생해 지역사회 감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확진 판정 을 받았고 그중 수백 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중명한다. 반면에 최근 중국 우한시에서 홍수로 인해 1,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숫자 측면에서 그것이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를 훨씬 능가하더 라도, 그것은 자연재해로 간주될 뿐이다.(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고통이 존재하며 그 정도 는 또 어떠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 는 비록 행복 지수는 존재할지언정 직접적인 고통 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로 고통 지수를 측정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종류와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사회의 자살률, 이혼율, 알코올 소비율, 스트레스 성 암 사망률, 정신질환자 수 등과 같은 각종 사회 지표들과 그 변화 추이와 사회 별 비교를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특정한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종류와 정도를 추 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 당국에서는 급기야 그 도시 전 체를 봉쇄함으로써 바이러스 전파를 막았다. 이렇듯 원인이나 결과에 사회적 차 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호명한다. 반면에 최근 중국 우한시에서 홍수로 인해 1,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숫자 측면에서 그것이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를 훨씬 능가하더 라도, 그것은 자연재해로 간주될 뿐이다.(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고통이 존재하며 그 정도 는 또 어떠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만만치 않다.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 는 비록 행복 지수는 존재할지언정 직접적인 고통 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로 고통 지수를 측정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종류와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사회의 자살률, 이혼율, 알코올 소비율, 스트레스 성 암 사망률, 정신질환자 수 등과 같은 각종 사회 지표들과 그 변화 추이와 사회 별 비교를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특정한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종류와 정도를 추 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현주소
사회적 고통의 현주소를 확인하는데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표들은 수없이 많다. 노인 자살률, 청년 자살률, 이혼율 세계 1위 등과 같은 사회 지표가 대표적 인 예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지표들조차도 사회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게 다가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복잡한 기능 분화 사회의 경우 각 기능 체계, 즉 정치, 경제, 법, 교육 체계 내부에서도 수없이 많은 사회 지표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한 정된 지면에서 그 많은 사회적 지표들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고통의 현주 소를 일일이 다 확인해볼 수는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여기에서 자세하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일단 유명한 막스 베버(Max Weber) 의 방법론적 전제, 즉 가치자유 개념에 의존해 이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가보자. 이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주도적인 기능 체 계로 시야를 돌린 다음 그 체계 내부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회 지표,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회적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 지표를 선택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주도적인 사회적 기능 체계는 무엇인가? 굳이 마르크스(Karl Marx)나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제 체 계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경제 체계가 압도적인 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적 프로그램들을 실행하기 위해 철저히 ‘지불 혹은 비지불’의 코드로 작동하는 오늘 날의 경제 체계를 대표하기에 충분한 사회적 고통 지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빈익 빈 부익부의 공식에서 쉽게 추정할 수 있는 불평등 지표다. 그렇다면 경제 체계의 불평등 지표를 활용해 우리 사회의 고통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

사회적 고통은 사회적 원인이란 발생 조건과 그 사회제도적 혹은 사회운동적 해결이란 방법론적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는 바, 구체적 양태는 사회마다 다르다.

먼저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 지표를 보자.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에 따 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 상위 20%가 생산된 재화의 90%를 소비하는 반면 가장 가난한 20%는 불과 1%만을 소비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고 부자 20명의 재산 총합이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 총합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2003년 국제노동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30억 명이 하루 2달러로 규 정된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최소한 30억 명 이상의 지구촌 사람 들이 배고픔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염된 흙탕 물로 갈증을 해소함으로써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경우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단 행했다. 금융시장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 부문 민영화 등의 정책을 실 행해왔고, 그 정책적 효과가 사회 계층 간 불평등을 발생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한국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 직화되면서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해졌지만, 친 기업 정책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써 대기업과 그 임원들의 소득은 상여금 잔치를 벌일 정도로 꾸준히 높아진 반면 다수의 사람들은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청년 자살률 세계 1 위라는 지표로 현상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아홉 번째로 소득 격차가 심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불교 사회학적 해법
그렇다면 사회적 고통의 해법은 무엇인가? 저 유명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 제에 따르면 고통은 그 원인을 해결할 때 비로소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실천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고통은 고제에, 원인은 집제 에, 해결은 멸제에, 그리고 실천은 도제에 각각 배대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이 공식에 따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고통을 유발하는 가장 근원적 인 요인, 즉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실천이 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금 정책과 같은 정책적 실천을 의미하는 바, 그것은 곧 부 처님께서도 적극적으로 권장하신 레시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초기 불교를 사회학적 시각에서 재정리한 바 있는 스리랑카 출신의 불교 사회학자 라트나팔라의 저술을 참고할 만한데, 그는 부처님께서 행하신 경제 정책을 다 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과거 한때 어떤 왕은 거대한 희생제의를 통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왕의 현명한 고문 한사람이 왕에게 그러한 계획에 의지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 그 왕이 선택한 또다른 전략은 그들에게 생필품을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주고, 여유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 다. (…) 그 왕이 채택한 세번째 전략은 처벌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통치자가 국민 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점에서 채택할 수 없다. (…) 그러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올바른 전략은 통치자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적 자원과 정신적 자원에 정당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Ratnapala, 『Buddhist Sociology』, 1992)통치자, 즉 왕은 오늘날의 경우 국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가난한 사람 들로 하여금 물질적 자원과 정신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있는 정 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재원은? 바로 세금 정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서 그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지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탱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충고를 줄 수 있다. 그것은 부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은 모든 사람의 가장 궁극적 목 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천적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 로 ‘행복을 위한 부( 富) 사용법’인 바, 그것은 ‘모든 사람이 행복할 때 비로소 나도 행복해진다’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유승무 한양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로 있으 면서 불교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불교사회학』, 『불교지도자론』이 있고, 「유교적 사회질서와 문 화, 민주주의」, 「불교복지, 행복을 만나다」, 「한국 불교 노동관의 탈현대적 함의」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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