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무엇인가 5 |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나는 지혜

녹원 스님 법문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나는 지혜

 

불교의 사성제( 四聖諦) 란 네 가지 거룩한 진리, 곧 고( 苦)· 집( 集)· 멸( 滅)· 도( 道) 입 니다. 쉽게 말하면 인생은 괴롭다고 하는 것과 그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는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을 해탈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곧 사제( 四諦) 의 진 리입니다.첫째,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 하여 고제( 苦諦) 를 말씀하셨는데, ‘인생살이는 고해 (苦海) 와 같다’ 하는 것은 참으로 진리라 하겠습니다.옛날 페르시아에 제밀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젊은 제밀왕은 즉위하자 곧 천 하의 학자들을 불러 명하기를 “가장 정밀한 인류의 역사를 편찬하라”고 했습니다. 왕명을 받은 많은 학자들은 열심히 인류 역사의 편찬에 노력했습니다. 일 년이 가 고 10년의 긴 세월이 지나가도록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인류사는 쉽게 되지 않았 습니다. 근 5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겨우 써 내어놓은 그 인류사의 결론은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사람은 태어나서 마침내 죽습니다. 세상에 나와서 죽을 때까지의 인간의 일생 그것이 필경은 괴로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작게는 개인, 크게는 사회, 국가, 거기에는 가지가지로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는 것입니다.고뇌가 없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번민이 없다는 것은 반성하는 마음이 부족하 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에 부딪치기 싫어서 겁내어 비켜가는 것입니다. 『법화경』 에 말씀하시기를 “삼계( 三界) 가 편안치 않음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으며, 여러 가 지 괴로움이 충만하니 심히 겁이 나고 두려움이라. 항상 생로병사의 우환이 있어 이와 같은 불꽃이 치열하여 쉬지 않거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불타오르고 있는 집과 같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야말로 귀중 한 인간고( 人間苦) 를 겪고 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여래는 이미 삼계의 불타는 집을 다 여의고 고요히 임야에 처하니 이 삼계가 다 나의 둔 바요, 그 가운데 중생은 다 나의 자식이니 지금 이곳에 모든 환난( 患難) 이 많은지라, 오직 나 한 사람이 능히 구함이라.” 이 말씀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자비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고 하는 그 괴로움의 진리에 눈뜨는 것이야말로 종교로 향해가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생의 괴로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왜 인생은 괴로운가’ 하는 그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해놓은 것이 집제( 集諦) 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 은 유물주의자 마르크스가 말하는 괴로움과 내용이 다릅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괴로움은 어디까지나 경제생활의 괴로움이지 인간 전체의 괴로움은 아닌 것입니 다. 그것은 인간 괴로움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구해서 얻지 못 하는 괴로움밖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 괴로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물질이나 경제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괴로움은 안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이야말로 괴로움의 근본이지만 욕심이라든가 욕망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애착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이 곧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아함경』에 “괴로움의 근본은 애착심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현재의 애착심 은 미래의 괴로움에 근본이 되는 줄 알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괴로움의 원인은 욕심인 것입니다. 욕심이야말로 괴로움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괴로움의 근본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무조건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 다. 왜냐하면 욕심이 환락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면 욕심이라든가 욕망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애착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이 곧 괴 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불교의 이상( 理想) 세계인 멸제( 滅諦) 입니다. 이는 갈애( 渴愛) 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이 없는 원적( 圓寂) 혹은 열반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고의 근본이 되어 있는 무명( 無明), 즉 진리의 세계를 알지 못하 고 형상의 차별적인 여러 모양에 집착해 현실 세계의 온갖 번뇌와 망상의 근본이 되는 것을 멸해 없앤 것이 열반입니다. 『잡아함경』에 “탐욕도 영원히 그치고 성나는 것도 영원히 그치는 것이 열반이 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온갖 죄와 고( 苦) 그리고 숱한 불행을 빚어내 는 근원은 우리 스스로가 무명( 無明) 한 탓입니다. 무명이란 자기만 아는 탐·진· 치 먹구름에 의해 태양 같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명 때문에 숱한 죄와 고를 낳게 하고 인간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있을 것같이 그렇게 집착하는 아( 我) 는 잠깐 동안의 시간 적 과정의 생존에 불과한 것입니다.끊임없이 변전하는 만유는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한 것임에도 범부 중생은 아 (我) 가 언제나 있는 것으로 망상하고 그로 말미암아 무명이 치성해가는 것입니다. 죄와 고를 극복하는 길은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차원 높 은 새 삶에로 회심해 새로운 인격의 지평( 地平) 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넷째로 열반의 세계로 가는 방법을 말씀해놓은 것이 도제( 道諦) 입니다. 열반의 세계로 가는 방법, 즉 괴로움을 없애는 길, 병고( 病苦) 의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이
팔정도입니다. 정견( 正見), 정사유( 正思惟), 정어( 正語), 정업( 正業), 정명( 正命), 정정진( 正精進), 정념 (正念), 정정( 正定) 의 바른 길을 통해 치우치지 않는 한가운데의 길로 가야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전법륜경』에 “열반으로 가려면 치우친 두 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그 하나는 쾌락에 빠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고행에 몰두하는 길이니라. 고락( 苦樂) 의 두 끝을 떠난 한가운데 길이야말로 실로 열반에 이르는 똑바른 길이니라” 하 셨습니다. 과연 고락( 苦樂) 의 두 끝을 떠난 한가운데 길이야말로 열반으로 가는 유 일한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영원히 존속할 이런 교훈을 주시었습니다. “과거의 인연을 알고자 원하거든 현재의 결과를 보라. 미래의 결과를 알고자 원 하거든 현재의 인과를 보라.”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 해서 단순한 오늘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 늘은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단순한 오늘이 아니라 영원한 오늘인 것입니다. 어제는 살았습니다.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내일도 살 것입니다. 살았다는 것은 어제이며, 살 것이다는 내일입니다. 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오늘인 것입니다. 어제의 나도 나이며, 오늘의 나도 나이며, 내일의 나도 나 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는 아닙니다. 내일의 나도 또한 오늘의 나는 아닙 니다. 이렇듯 시간적으로는 오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 속에 걸쳐 그 한 지점을 점유한 나인 반면 공간적으로는 온 누리의 일부분인 나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속에서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이 글은 『마음으로 읽는 고승법어』(신지식 26인 설법집) 2권(홍법원 刊)에 실린 녹원 스님의 법문 ‘불교란 무엇인가’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녹원 스님(1928~2017) 일본 류고쿠대학(龍谷大學)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조계종 총무원장,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원로회의 의원, 직지사 조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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