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이야기 5 | 엔트로피와 생명

엔트로피와 생명

양형진 고려대학교 디스플레이 ・ 반도체물리학부 교수

생명체와 엔트로피
미 항공우주국은 1960년대에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를 탐사하려고 했다. 이 과제에 참여했던 러브록(Lovelock)은 생명을 탐사하기 전에 생명이 무엇인지 먼 저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는 본 적이 없어서 생명이라고 상상할 수 도 없는 존재를 화성에서 만난다면, 그것이 생명인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생명이 무엇인지 여러 생물학자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직접 생명체가 무엇인지 정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엔트로피에 주목했다. 엔트로피는 무지의 정도 혹은 불확실성의 정도를 수 량화해 나타낸 것이므로, 정보량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정보를 음의 엔 트로피라고도 한다. 생명체가 정보량이 고도로 집약된 시스템이라는 점을 파악한 러브록은 생명체를 정보가 집약된 계, 즉 엔트로피가 낮은 계라고 생각했다.

비평형 상태
엔트로피가 낮다는 것은 비평형 상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커피잔 에 커피 가루를 집어넣으면 처음에는 커피 가루가 밑에 가라앉는다. 물을 끓이는 것과 같이 에너지를 투입하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커피 가루가 퍼져나가기는 하지만 물 전체로 퍼진 커피 가루가 밑바닥으로 저절로 모 이지는 않는다. 이처럼 정보량이 줄어들고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변화만 가능하 다는 것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커피 가루가 물 전체로 골고루 퍼지면 위치에 대한 정보량은 최소가 되고 엔트 로피는 최대가 된다. 최소 정보량은 더 줄 수 없고 최대 엔트로피는 더 늘 수 없어 서, 이 상태에서 변하지 않으므로 이것이 평형 상태다. 이와 달리, 커피 가루를 물 에 넣은 처음 상태는 정보량이 최대고 엔트로피가 최소여서, 이후 다른 상태로 변 하는 비평형 상태다.

탈평형 상태인 생명체
평평한 모래밭이 평형 상태라면 모래탑은 주변 모래밭과의 평형에서 벗어난 탈평형 상태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모래탑은 저절로 허물어져서 평평한 평형 상태로 가게 된다. 탈평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대표 적인 것이 생명이다.한 예로, 생명체의 체온은 주위 환경과 다른 탈평형 상태다. 특별한 노력을 기 울이지 않으면, 체온이 주위의 온도와 같아지는 평형 상태, 즉 죽음의 상태로 가 게 된다. 생명체는 탈평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동물의 경우, 소화와 호 흡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해 탈평형 상태를 유지한다.생명체는 체온뿐 아니라 혈압, 혈당, 호르몬 농도 들을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 하고,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정교하게 작동시켜 주위와 다른 탈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이처럼 생명체는 자율 조정 기능이 작동하는 체계다.

가이아 : 탈평형 상태인 지구
러브록은 에너지를 사용해 자율 조정 기능을 작동시킴으로써 낮은 엔트로피 의 탈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체계를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 어졌다. 지구 전체가 엔트로피가 낮은 탈평형 상태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 자체가 거대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산소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태양계의 행성들은 거의 같은 평면을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공전한다. 이는 아마 도 태양계의 구성원 모두가 처음에 같이 생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행성의 대기도 처음에는 모두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구는 다른 행성과 전혀 다르다. 다른 행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고 산소는 거의 없지만, 지구 대기에 는 산소가 21%로 풍부하고 이산화탄소는 소량만 존재한다.현재 지구 대기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산소는 다른 행성에는 없고 원시 지구에 도 없었다. 산소는 생명 세계가 38억 년 동안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구는 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자율 조정 기능이 작 동한다. 러브록은 지구 대기의 조성비, 지구 온도 등 여러 곳에서 이런 자율 조정 기능을 발견했다. 그는 지구의 생태계와 대기권, 대양, 토양 등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의 이름 을 따서, 지구 전체를 가이아(Gaia)라고 명명했다.

온생명
생명은 지구 전체와 역동적인 상호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형성해 지구의 대기 와 토양과 대양의 속성을 바꾸면서 그 자신도 같이 변화하는 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을 밟아왔다. 이것이 지구 생명의 역사다. 이 공진화의 연기적 과정을 거치면 서 가이아라는 전 지구적인 유기적 체계를 형성했다.하나의 지구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도 주변의 도움 없이 그 스스로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낱생명과 그 주변의 환경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분리될 수 없는 전체를 형성한다. 이 자족적이고 최종적인 생명 단위를 장회익은 ‘온생명’이 라고 부른다. 그러면 지금까지 단순히 환경이라고 불렀던 것이 온생명의 일부가
된다.우주의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무아의 존재자다. 그래서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연기의 구조를 형성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38억 년을 연기의 구 조 속에서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상호 연관과 의존의 연기 관계를 형성하면서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 할 온생명의 일부다.

 

양형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신시내티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과학으로 세상 보기』가 있고, 『놀 라운 대칭성』, 『과학의 합리성』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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