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생명 윤리 | 불교와 채식

불교와 채식

남시중  미국 변호사

동물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인류가 모두 채식을 할 때만이 중단된다고 믿는 ‘윤리적 채식주의자(ethical vegetarian)’인 미국인 변호사와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어떤 육류 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인 그는 한국의 사찰 음식을 맛보고 싶 어 했다. 인사동 사찰 음식 전문점에서 보스턴에서 동물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친 구(‘P’)와 내(‘N’)가 불교와 채식의 관계에 대해 나눈 대화를 회고해본다.
P. 한국 사찰 음식이 이렇게 화려하고 맛있는 줄 몰랐다. 한국에서는 채식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N. 전통적으로 채식 문화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채식하기 쉽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육식이 급격히 늘었다. 통계상으로 더는 채식 문화권이 아니다.
P. 한국인이 그렇게 육식을 많이 하는 줄 몰랐다. 한국인의 절반이 불자이고, 불교는 채식의 종교 아닌가?
N. 모든 불자가 다 채식만 하는 건 아니다. 스님에게는 계율이지만 재가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불교는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 이다. 각자 스스로 선택한 수행 방식으로 법의 이치를 깨우쳐 열반에 들 뿐이다. 미물이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생명을 빼앗는 걸 반대하는 불교는 당연히 채식을 지향한다. 하지만 육식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거나 육식 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불교의 채식 지 향과 육식 자를 공격하는 서양의 ‘비거니즘(veganism)’ 혹은 윤리적 채식주의는 이 점에서 다르다.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주의(ism)’도 무상한 견해에 대한 집착이다. 붓다와 불법에 대한 집착조차 경계하는데 하물며 채식에 집착하겠는가.
P. 스님과 평신도에게 적용되는 계율에 차이가 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N. 스스로 선택하는 수행 방법과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은 유일신 종교의 도덕률, 즉 신의 명령이 아니다. 수행에 도움을 주는 울타 리 역할을 할 뿐이다. 평신도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오계( 五戒) 도 제례 형식주의 에 빠진 당대의 평민에게 붓다가 권한 인류의 보편적 도덕 상식이었을 뿐이다. 스 님은 신의 중개자인 사제가 아니라 전업 수행자일 뿐이다. 붓다 생존 시 승가의 공동체 생활에 불가피한 규율을 모은 율장( 律藏, Vinaya Piṭaka) 을 불교 윤리학으로 오해한다. 계율은 상황에 맞추어 자유롭게 운용하라고 붓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이 설정한 계율이나 설법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반복해 강조했다.
P. ‘살생하지 말라’가 불교 제1의 계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만 죽이지 말라는 게 아니고 동물을 포 함하지 않는가?
N. 팔리어 초기 경전을 보면, ‘살생하지 말라’고 할 때의 ‘생( 生)’ 이란 ‘숨 쉬는 존 재’란 뜻의 팔리어 ‘pano’로 표현되어 있다. 당연히 동물을 포함한다. 곤충과 같은 미물도 정당한 이유 없이 해하지 말라고 붓다는 말했지만, 살인과 동물을 도살하 는 건 구분했다. 살인은 승가에서 축출되는 가장 강한 벌을 받았다. 동물을 죽이 는 건 상대적으로 벌이 그보다 약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같은 값으로 보지 않았다. 일부 서양 동물권 철학자는 동물과 인간 의 생명 가치를 구분하지 않는다. 동물 사랑도 좋지만 그런 과격한 논리를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면 인륜의 상식이 무너진다.
P. 난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그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인간의 이기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소한 식도락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건 정당화할 수 없고 인류 사회에도 도덕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N. 모든 생명체에게 먹고 생존하는 문제는 사소한 게 아니다. 대승불교는 생명 존중의 정신에서 승려의 육식을 엄격하게 금한다. 재가자에게 ‘강요’하지 않을 뿐 이다. 반면, 붓다가 육식을 철저하게 금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남방불교에서는 육식을 금기시하지 않는다. 티베트는 대승불교이지만, 승려조차 육식을 자유롭게 한다. 전통적으로 육식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도 육식한다는 게 최근 알려져 달라이 라마를 불교의 교황으로 착각하는 서구인은 충격을 받았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채식과 육식을 가리지 않고 부단히 몸부림쳐온 동물일 뿐이다.
P. 채식할 수 없는 기후나 환경은 인정한다. 하지만 채식이 가능한 환경에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은 채식을 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본다.
N. 자네가 자주 언급하는 ‘윤리적 의무(ethical duty)’란 유일신 전통에서 나온 지극히 서구적이고 동시에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다. ‘의무’란 신에 대한 인간의 의 무를 암시하지 않나? ‘신’이란 현실 역사에서 민중 착취를 위한 개념 장치로 악용 되었다. 피터 싱어(Peter Singer)나 톰 레이건(Tom Regan) 같은 서양의 동물권 철학자 가 주창한 윤리적 채식주의란, 모든 사람이 채식하면 동물에 대한 학대와 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순진한 책상물림 논리이다. 지난 60~70년대 보수적 기독교 가 치관에 반발한 ‘히피(Hippie)’ 운동과 결합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50년 간 공장형 축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만 했다. 운동권식 논리로 육식 자 를 모두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여 오히려 동물 복지 운동에 등을 돌리게 했다. 정 작 시급한 문제는 육식 그 자체보다 현대인의 ‘과다한’ 육식이다. 동물을 비정상 적으로 속성 사육하고 지구 환경과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장형 축산업은 폭증하는 고기 수요가 부른 자본주의 시장의 경제 논리적 반응이다.
P. 붓다는 육식에 대해 무어라 말했는가?
N. 초기 경전에 그려진 붓다는 이른바 ‘삼부정육( 三不淨肉)’ 이라고 해서 1. 자기 를 위해 죽인 것을 보았거나 2.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말을 들었거나 3. 자기를 위 해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먹어도 좋다고 했다. 당시 승려는 탁발로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게 탁발이다. 삼부정육은 마음 이 혼탁해지기 때문에 붓다가 금지했다고 심리주의로 잘못 해석한다. 사실은 더 욱 좋은 보시를 하기 위해 고기를 특별히 준비하지 말라는 평신도에 대한 배려에 서 나왔다. 스님에게 보시하는 건 당시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평신도에게 가장 성 스러운 선업이었다. 남방불교나 티베트 승려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이 미 도살되어 가게에서 파는 고기는 먹어도 괜찮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편다.
P. 제한적이지만 어쨌든 육식을 허용했다는 말 아닌가?
N. 육식을 허용했다기보다 어떤 경우에도 육식은 절대 안 된다는 자이나교식 극단을 경계했을 뿐이다. 평신도의 집에 초대받아 고기 음식을 대접받은 경 우 붓다는 그 정성을 생각해 맛있게 먹었다. 미국인 중에는 식사 초대를 하면 이런 건 먹고 저런 건 안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동양이나 유럽 문화에 서는 예의가 아니다. 붓다가 미국과 같은 육식 문화권에 지금 살고 있다면 식사
에 초대받아서 굳이 채식한다고 밝히지 않을 거라 본다. 자신만을 위해 채식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붓다는 일상이 생존 투쟁에 가 까웠던 당시의 평신도에게 이런 건 먹고 저런 건 먹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채식하지만 가끔 혹은 예외적으로 육식도 할 수 있는 서구의 ‘유연한 채식주의 (flexitarianism)’ 가 붓다가 의도한 ‘중도의 채식’에 가깝다고 난 생각한다. 붓다 생존 시 채식 교조주의로 가자는 거듭된 제안이 있었다. 붓다는 ‘너는 그렇게 하라’고 말하면서 원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수행 방식으로 인정해주었다. 다만 승단 전체 의 계율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극단’과 ‘강요’를 경계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P. 교조적 채식주의에 반대한다면 동물의 고통과 학대를 덜어주고 건강에 해로운 공장형 축산업을 개 선하기 위한 무슨 대안이 있나?
N. 공장형 축산업의 폐해는 지구촌 차원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맞 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한 개인의 식습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윤리적 채 식주의는 결국 한 개인의 심리적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소비자는 이제 친환경 축 산물을 선호한다. 최근 친환경 축산으로 전환하는 업체가 늘어나는 이유는 그게 실제 더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자연 방목해 사육하고 고통 없이 도살한 축산 제 품에 ‘자비’ 인증을 해주고 불자는 자비 인증을 받은 육류 제품을 선호한다면 동 물에 대한 학대와 고문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유대인은 유대교 율법에 맞추어 사 육되고 도살된 ‘코셔(kosher)’ 인증 제품을 고집하지 않나.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로 만든 고기 생산에 이미 성공했다. 시장 수요가 있다면 대중화할 수 있다. 식물로 만든 대체 육식을 사용한 햄버거는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 시장 논리로 보면 무조건적인 육식 거부보다 친환경 축산물과 대안 육류 제품을 소비하는 게 작금의 현실에서는 동물 복지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P. 자연 방목해 사육하고 고통 없이 도살한다고 해도 육식은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폭력이 아닌가?
N. 생명을 빼앗는 건 폭력이다. 인간의 도덕 분별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생명체도 생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나 주변 환경을 해할 필요가 없 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지구 환경에서는 모든 동물은 다른 생명체로부 터 생명 에너지를 빼앗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보시( 布施) 하도 록 하나의 인연 고리에 묶여 있다. 자연계를 지배한 인간도 죽어서는 흙으로 돌 아가 자연계 ‘푸드 체인’ 최하위에 있는 미생물과 식물에 보시하도록 숙명 지어져 있다. 죽이고 죽는 생명 현상은 인간의 도덕 분별로 보면 잔인하기까지 하다. 우 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 다만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남시중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Northwestern University Medill School of Journalism에서 석사 학위를,
University of California Hastings College of the Law에서 법학 박사(J.D.) 학위를 받았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 전문 변호사 및 투자자로 일하고 있으며, 『IT조선』에 ‘남시중 시론’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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