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 | 건축과 땅이 관계 맺는 지혜_문상원

건축과 땅이 관계 맺는 지혜

안동 봉정사(鳳停寺)

문상원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서울에서 안동 봉정사로 가는 길은 다양해지고 또 그만큼 가까워졌지만 오늘은 조선시대 한양(漢陽)과 경상도(慶尙道)를 잇는 1번 길 문경새재가 있는 문경(聞慶)을 거쳐 샘이 좋은 예천(醴泉), 안동(安東)으로 국도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차창을 내리고 서두르지 않고 가다 보면 편안한 고향 집같은 시골 마을들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건축 하는 사람들에게 봉정사는 극락전(極樂殿)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만큼이나전체적인 가람 배치(伽藍配置)의 지혜와 ‘건축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의 다양한 건축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교과서와 같은 곳으로 건축 학도들에게는 필수적인 답사지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전라도의 완만한 산사(山寺)와는 다르게 꽤 경사가 가파른 산 중턱 경사지에 위치한 봉정사는 북쪽 천등산(天燈山)을 배경으로 멀리 자백봉(自白峰)을 바라보며 남북으로 축(軸)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습니다.
개울 소리가 들리는 주차장에 내려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진입로에 오릅니다. 특별히 사람의 손으로 조영(造營)되었다기보다 구부러진 길처럼 줄기와 가지가휘어진 채 자유롭게 자랐고 여러 이름모를 잡목(雜木)에 섞여 공존(共存)하는 소나무 숲길입니다.
왼편 솔숲 사이로 개울물과 너럭바위에 앉힌 작은 정자 하나가 얼굴을 내밉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어린 시절 봉정사에서 머물며 공부하던 때에 자연과 벗하며보냈다는 명옥대(鳴玉臺)입니다.
물이 옥(玉) 소리로 울린다(鳴)는 이곳은 내려오는 길에 발을 담그기로 약속하고 먼저 봉정사를 만나러 갑니다.
멀리 일주문(一柱門)이 보인다 싶으면 하늘이 열린 곳에서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만납니다. 콘크리트와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넓은 다리가 예전 호젓했던 산사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속세(俗世)를 개울에 씻고 오르는 마음가짐은 같을 것입니다. 일주문부터는 참나무 숲길입니다. 참나무는 우리들 삶과 아주 가까운 나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추운 겨울 아랫목을 데워주는 땔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숯중에 으뜸인 참숯으로 만들어지며, 또한 흉년이 들 때면 도토리 열매로 선조들의주린 배를 채워주던 말 그대로 우리에겐 정말 고마운 나무(眞木)라고 합니다. 참나무 숲길 끝자락에 올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 멀리 산 중턱에 어렴풋이 봉정사가 나무들 사이로 보일 듯합니다. 이곳부터 두 번째 다리를 건너 만세루와 오랜 세월의 노송(老松)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까지 걸음마다 변화되는 봉정사의 전경(全景)을 천천히 눈에 담기를 권해드립니다. 하늘에서 봉황(鳳)이 내려앉아 머무르는(停) 듯한 봉정사의 자리 앉음을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진입함에 따라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만세루(萬歲樓)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여러 단의 석축과 돌계단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봉황의 발이 땅을 딛는 듯한 만세루의 늠름한 기둥을 만납니다. 자연석으로 높게 쌓아 기와를 씌운 석축에 끼어 있어 정면은 2층으로 반대편에서는 1층으로 보이는 구조입니다.이로 인해 만세루를 통한 주 진입은 그 어떤 누하 진입(樓下進入) 방식보다 폐쇄적이어서 동선의 움직임에 따라 보이는 대웅전의 액자 같은 장면(picture frame)이더욱 극적으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경내(境內)에서도 경사 지형을 이용해 크게 세 개의 단(壇)으로 조성해 단마다서로 다른 영역(領域)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단(下壇)부는 동서로 길게 띠처럼 형성된 과정적 공간이며, 중단(中壇)부는 화엄강당(華嚴講堂), 고금당(古今堂), 무량해회(無量海會)로 이루어진 요사채와 강당영역이며, 마지막 상단(上壇)부는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과 극락전 영역입니다.봉정사 가람 배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웅전과 극락전, 2개의 주전(主殿)을 수직으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수평으로 배치하는 병렬축형(竝列軸型)이라 이야기합니다.

만약 수직으로 배치했다면 경사지의 특성상 높고낮음의 위계(位階)가 발생하겠지만 두 공간의 병렬적배치로 각 영역을 동등하고 독자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단(壇)인 하단부는 수평으로 길게 동서(東西)로 연결해 정적(靜的)인 두 가지 영역을자연스럽게 동선(動線)으로매개(媒介)하는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중·상단부는 화엄강당을 중심으로 오른편의 대웅전 영역과 왼편의 극락전 영역으로 나뉘고 이 두가지 영역은 같은 사찰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극적인 대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씩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대웅전의 마당은 만세루를 포함해 폐쇄적이고 정갈해 엄숙한 성격인 반면 극락전의 마당은 남쪽 자백봉으로의 조망이 시원하게 열려 있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대웅전은 처마가 하늘을 나는 듯한 팔작(八作)지붕으로 화려하지만 반대로 극락전은 배를 맞댄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간결하고 모던합니다.
셋째, 대웅전 영역은 단청(丹靑)을 자제(自制)하고 있고 극락전 영역은 기둥과 벽까지 화려한 단청을 입혀 수묵화와 채색화로 화풍이 다른 그림이 됩니다.이 밖에도 툇마루가 있는 친근하고 실용적인 대웅전과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극락전 측면 노출된 구조(構造) 부재를 통한 아름다운 면 분할(面分割), 규모는 작으나 뛰어난 비례감으로 극락전 마당을 지키는 삼층석탑, 멀리 안산(案山)인 자백봉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전망 등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 여행을하는 듯합니다.
이처럼 대조적인 공간이 서로 다투지 않고 더하고 빼면서 존중하고 오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共存)하고 있습니다.경내를 나와 산속으로 조금 더 오르면 조선 후기에 지어진 암자(庵子) 영산암(靈山庵)이 있습니다.
영산암에 들어서면 갖가지 표정과 일상의 편안함이 마당에 떨어지는 햇살과어우러집니다. 매번 마루에 앉아 건축의 반성문을 쓰고 숙제 검사를 받고 갑니다.가끔 극락전을 보고 적잖이 실망하며 내려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교과서에서 배운 최고(最古)가 최고(最高)라는 기대감에 따른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봉정사는 극락전 하나만의 봉정사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규모가 큰 사찰은 아니지만 천 년을 넘어 시대별 건축 양식으로 증축되고 변화되었지만 정연한 배치를 겸손하게 지켜온 큰 어른 같은 사찰입니다. 사람도 혼자만이 아닌 서로(人)와의 사이(間)로 관계(關係) 맺음에 의해 인간(人間)으로 완성되듯이 건축 또한 건축물 하나가 아닌 빈(空) 사이(間)의 관계 맺음으로 건축의 공간(空間)으로 구축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어느 누구와 어느 곳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나를 돌아보는 하루입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four − tw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