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성(性)적 욕망 1 | 불교가 보는 성(性)적 욕망_전재성

불교가 보는 성(性)적 욕망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

 

부처는 성적인 욕망을 어떻게 보는가?
『앙굿따라니까야』의 「여자의 경」[①∼⑤(AN. I. 1)]은 남성이 빠지기 쉬운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의 종류(五欲樂:añcak􀂾magu􀏷a)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하고 있다.
① “수행승들이여, 나는 여자의 형상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형상을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의 형상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② “수행승들이여, 나는 여자의 소리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리를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의 소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③ “수행승들이여, 나는 여자의 냄새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냄새를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의 냄새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④ “수행승들이여, 나는 여자의 맛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맛을 보지 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의 맛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⑤ “수행승들이여, 나는 여자의 감촉처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촉을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의 감촉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 『앙굿따라니까야』 「남자의 경」[①∼⑤(AN. I. 1)]은 여성이 빠지기 쉬운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① “수행승들이여, 나는 남자의 형상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형상을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의 형상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② “수행승들이여, 나는 남자의 소리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리를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의 소리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③ “수행승들이여, 나는 남자의 냄새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냄새를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의 냄새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④ “수행승들이여, 나는 남자의 맛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맛을 보지 못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의 맛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⑤ “수행승들이여, 나는 남자의 감촉처럼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촉을 보지못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의 감촉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부처는 이렇듯 여성이나 남성이 이성(異性)의 성질이나 행동, 모습, 목소리나 치장에서 환희를 느끼면서 그것들에 의해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게 사로잡히면서 그것들에서 쾌락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들을 욕망하게 된다. 『쌍윳따니까야』(SN. II. 270)의 「고양이의 경」에서는 수행승이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때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설하고 있다.“수행승들이여, 옛날에 한 고양이가 어린 생쥐 한 마리를 쫓아 골목이나 하수도나 쓰레기 더미 앞에 서서 ‘이 생쥐가 먹이를 구하러 나오면, 그때 내가 그를 잡아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수행승들이여, 그때 그 생쥐가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고양이는 곧바로 그를 잡아서 씹지 않고 삼켰다. 생쥐는 고양이의 내장을 갉아먹고 창자도 먹었다. 하여 고양이는 죽음과 죽음의 극심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다. 세상에 어떤 수행승이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마을이나 거리로 탁발을 하러 가는데 신체를 가다듬지않고 언어를 다스리지 않고 정신을 수호하지 않고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관을제어하지 않고 간다. 그는 거기서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가볍게 옷을 걸치거나 야하게 옷을 걸친 여인들을 보게 되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한다. 탐욕이 그의 마음을 엄습하면, 그는 죽을 정도의 고통이나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부처는 성적인 욕망을 우리를 윤회의 사슬에 묶어둘 수 있는강렬한 탐욕으로 볼 뿐이다. 따라서 부처는 성적인 욕망에 탐닉하는 것을죄가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어리석음으로 보았다.

 

부처는 다양한 유형의 탐욕에서 성적인 탐욕이차지하는 비중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초기 불교에서 성적인 욕망은 윤회의 원동력으로 간주된다. 넓은 의미의 성적욕망인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윤회 속으로 끌어들이는 소용돌이에비유되며, 좁은 의미의 성적 욕망은 나찰이나 상어에 비유되고 있다. 윤회의 바다에서는 세 가지 탐욕,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欲貪:k􀂾mar􀂾ga)과 미세한 물질에 대한 탐욕(色貪:r􀄬par􀂾ga)과 비물질에 대한 탐욕(無色貪:ar􀄬par􀂾ga)이 작용하고 있다.
성적인 욕망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 속한다. 이러한 탐욕이 좌절되면 분노가 일어난다. 성적 욕망과 분노를 거의 끊으면 천상에 갔다가 한 번 돌아오는 경지(一來果)에 이르고, 성적 욕망과 분노를 완전히 끊게 되면 천상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에 이른다.성적 욕망을 거의 끊거나 완전히 끊는 것은 개체가 있다는 견해(有身見:sakk􀂾yadi􀐝􀐝hi), 회의적 의심(疑:vicikicch􀂾),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
s􀃨labhatapar􀂾m􀂾sa)을 끊어서 진리의 흐름에 드는 경지(豫流果)에 이르는 것보다 어렵다. 성적인 욕망과 분노는 물론이고 미세한 물질에 대한 탐욕과 비물질에 대한 탐욕을 포함하는 모든 탐욕을 끊는 경지가 거룩한 경지(阿羅漢果)다.

부처는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출가 수행승들과 재가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어떤 식으로 구별하는가?
성적 욕망은 우리를 윤회의 사슬에 결박하기 때문에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불교도는 그러한 결박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재가 수행자는 성적인 욕망에 가능한 적게 결박되는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 ‘불사음(不邪􈹭)’이란 계율은 재가자에게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그릇되게 충족시키는 것을 삼가는 것(k􀂾mesu micch􀂾c􀂾r􀂾 verama􀏷􀃨)’을 의미한다. 재가 수행자는 성적인 욕망에 의해서 결박당하는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을 그릇되게 충족시키면 성적인 욕망에 의한 결박은 더욱 강해지고, 바르게 충족시키면 결박은 느슨해진다.
출가 수행승의 경우는 성적인 욕망에 결박되어 있는 상태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필요하다. 출가 수행승은 이성(異性)의 성질, 행동, 외관, 욕망, 소리, 치장에정신이 팔려서는 안 되며 그것에 탐닉해서도 안 되고 환희를 느껴서도 안 된다. 즉 출가 수행승은 자신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뛰어넘어야만 하며, 온전히 청정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순결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하지 못한 삶을 멀리하고, 성적 교섭을 일삼는 세속적인 것을 여읜다.”(DN. I. 63∶abrahmacariya􀏳 pah􀂾yabrahmac􀂾r􀃨 hoti 􀂾r􀂾c􀂾r􀃨 virato methun􀂾 g􀂾madhamm􀂾)

성적인 욕망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이 오늘날 갖는 의의
성적 욕망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는 태도나 그것을 억압하면서 죄의식을 갖는태도는 각종 미신적 사유와 쉽게 결합되면서 인류에게 수많은 고통을 야기하는원인으로 작용했다. 두 가지 태도가 모두 극단적인 것이고 유해하지만, 두 가지태도가 현재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제공되는 현란한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두 가지 태도는 은밀히 강화되고 있으며 수많은사람들에게 고통과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원시 공동 사회가 온존한 원주민 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생리혈을 축복으로 보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악마의 조짐으로 보는 사회가 있다. 파푸아뉴기니아 종족에서 정액은 모유처럼 간주되어 소년을 빨리 자라게 한다고 믿었는데, 이로 인해 과도한 자위행위와 오럴 섹스, 항문 섹스, 동성애 섹스가 행해지게 되었다. 이에 반해 시리아 교회와 일부 기독교 집단은 자위행위를 죄로 간주하면서 이러한 죄를 저지르지 않는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으로 거세를 권했다.고대 인도에서는 생리혈을 인드라신이 창조주를 살해한 죄의 대가로 보았다.인드라신은 창조주를 살해한 후 자신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것을 깨달았다. 하여 인드라신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죄를 함께 나누자고 요청했고 여성들은 적당한 시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대가로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창조주를 살해한 죄는 매달의 생리혈로 나타났다. 이렇게 생리혈을 인드라신이 창조주를 살해한 죄의 대가로 보았기 때문에 고대 인도에서 신부는 첫날밤에 성직자와 성관계를 가져야만 했다. 신랑이 처음으로 성교를 할 때 신부에게서 나오는 유독한 피가 그를 병들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성직자가 먼저 신부를 정화시켜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는 “인간은 누구나 월경, 임신, 출산, 수유를 하는 여인에게서 태어난다”(『앗쌀라야나의 경』, MN. II. 147)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징은 죄가 아니라 단순히 생물학적인 특징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몽정을 죄로 취급해 몽정을 한 소년들은 아침에 시편 일곱 개를 낭독하고 하루 내내 빵과 물만 먹어야만 했다. 이에 반해 부처는 쾌락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자위행위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행위로서 비판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몽정은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다른 모든 현상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도 부처는 어떠한 미신이나 전통적인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이 우리 인간의 해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한다. 부처는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금욕주의적인 종교에서처럼 성적인 욕망 자체를 죄로 보지 않으며, 성적인 욕망 때문에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부처는 성적인 욕망을 우리를 윤회의 사슬에 묶어둘 수 있는 강렬한 탐욕으로 볼 뿐이다. 따라서 부처는 성적인욕망에 탐닉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어리석음으로 보았다. 부처의 이러한 입장은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사람들이 취하기 쉬운 두 가지 태도, 즉 방임적인 태도나 죄의식을 갖는 태도를 넘어서 우리로 하여금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전재성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에서 인도학 및 티베트학을 연구했으며, 독일 본대학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강사, 동국대 강사, 중앙승가대학 교수, 경전연구소 상임연구원, 한국불교대학(스리랑카 빠알리불교대학 분교)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거지성자』, 『빠알리어사전』, 『티베트어사전』, 『범어문법학』, 『초기 불교의 연기사상』이 있고 역주서로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쌍윳따니까야』 전서, 『앙굿따라니까야』 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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