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성(性)적 욕망 3 | 사이버 섹스 그리고 섹스 로봇_정원섭

사이버 섹스 그리고 섹스 로봇

정원섭 경남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불굴의 성적 욕구
2019년 말 발생한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을바꾸고 있다. 치료 약이 곧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보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생활 백신, 즉 ‘사회적 거리 두기’인 듯하다. 그래서 ‘언택트(untact)’, 즉 접촉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기준, 즉 ‘뉴노멀’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강의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재택근무는 점점 확산하고 있다. 팬들을 금과옥조처럼 모시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경기마저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지난 3월 말경 콘돔 판매가 급증했다는 국내외 보도가 이어졌다. 대체로 피임과 감염 예방을 목적으로 성행위 과정에서 사용되는 콘돔의 판매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상황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인간의 성 활동이 어떤 역경에서도 쉽게 멈추지 않는본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영국 방송『BBC』와 네덜란드 국립공중보건환경연구소(RIVM) 등에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성생활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창의력을 활용한다면,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두면서 행복하고 안전한 성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연인과 평소보다 더 친밀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솔로들의 경우 육체적 관계를 맺을 사람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화상 전화를 활용하는 등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있습니다.1)

몸과 몸이 만나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하며 다 같이 혼연일체의 절정에 이른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성일 것이다. 소박한 욕망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상대와 깊은교감을 통해 절정을 체험하면서 상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싹틀 수도 있다.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 인간조차도 깊은 성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는다. 혼자서는 결코 다른 사람과의 혼연일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와의이런 성적 교류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며 인간은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온갖 것을 바칠 마음을 먹기도 한다. ‘하룻밤 정’만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러 갈 수도 있는 것이다.이처럼 멋진 성을 온전하게 경험할 기회는 흔하지 않지만, 인간의 성적 욕망은결코 쉽게 멈추지 않으며 때로는 어마어마한 위험까지 불사하며 끊임없이 출구를 모색한다. 그 덕분에 인류가 이렇게 종족을 번식하며 번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성적 능력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도 성적 욕망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현대 과학은 성적 능력 저하에 대해서만큼은 꽤 괜찮은 의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여타의 첨단 기술, 특히 정보통신 기술은 성의 상대 없이도 성적 욕구를 구현하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제 말하고자 하는 사이버 섹스란 대체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는 성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1) https://www.bbc.com/korean/news-52102003

사이버 섹스 : 사이버 자위
우리 사회에서 ‘사이버 섹스’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과 벤처 열풍이 몰아치던 2000년대 초반이다. ‘사이버’란 정보통신 기술이 제공하는 비대면 환경을 말한다. 따라서 사이버 섹스는 그 정의상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 하는 섹스이다. 바로 신체적 접촉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사이버섹스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하는 것처럼 벤처 열풍당시 컴퓨터는 가히 무소불위였다. 게다가 <데몰리션 맨>, <스텝포드 와이프>, <론머맨>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는 사이버 섹스라는 신세계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드디어 인간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선택해 완벽한 쾌락으로만 가득한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만연했다. 급기야 무어의 법칙까지 동원되면서 머지않아 사이버 섹스에 필요한 장비가 저렴하게 공급된다면 현실에서 성폭행이나 성매매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도 없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영화가 보여준 사이버 섹스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VR(Virtual Reality),즉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진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발상의 원조는 아마도 1974년 로버트 노직이란 미국 철학자가 비웃듯 말한 “쾌락 기계”라는 사고 실험이라는 공상일 것이다. 이런 식의 기계나 사이버 섹스는 현실 속에서는 과거에
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오로지 영화와 소설이 제공하는 가상현실일 뿐이다.그런데도 왜 사이버 섹스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주목받을까? 현재 사이버섹스라고 일컬어지는 행동 중 대표적인 것은 성에 대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실시간 채팅이다. 화상 통화를 할 수도 있고 단순히 문자나 이미지만 주고받을 수도있다. 핵심은 실시간 상호작용이다. 전화방 음란 통화도 당연히 사이버 섹스의 일종이다. 이런 사이버 섹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라는 점을 역설한다.설령 왜곡된 방식일지라도 인간이 얼마나 타자를 필요로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이라고 해서 성적 소통을 나눌 수 있는 타자를 쉽게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이런 소통으로 성적 판타지가 모두 충족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이버 섹스가 반복될수록 성적 욕구는 더욱 왜곡된 방식으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며 다른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서기 십상이다. 실시간 소통 자체를 불편하게 혹은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아예 꺼릴수도 있다.

인간의 성적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사이버 섹스와 섹스 로봇은더욱 확산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물론 병리적 현상이 없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런 욕망 때문에 언제든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그래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 아닐까.

실제 상대를 찾아 나서는 대신 웹서핑으로 성적 표현물을 찾는다. ‘P2P’나 성인물 사이트를 통해 성적 표현물을 꾸준히 탐닉한다면 이것 역시 사이버 섹스이다.이런 탐닉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온라인 사이버 섹스 중독이 된다. ‘n번방’에 등록된 성적 표현물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이 노예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회원들 역시 더욱 높은 수준의 방으로 노예처럼 이끌려가며 더욱 심각하게 중독된다.우리나라처럼 언제 어디서건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사이버 섹스는 그 중독성이 더욱 강하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한 번의 경험이 돌이킬 수 없는 ‘늪’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로봇 섹스 : 인공지능 시대 자위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육감까지 동원한다. 현실에서 섹스는 이런 모든 감각이 모두 발휘되는 총체적 활동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등장한 사이버 섹스는 텍스트, 음성, 동영상 그리고 가상현실까지 제아무리 ‘생생한’ 것이라 할지라도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시각과 청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은 왈츠를 추는 것처럼 서로서로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더욱 만족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체적 상호작용이 일절 배제된 채 일부의 감각을 이용하는 사이버섹스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사이버 섹스도 더욱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리얼돌(real doll)’이라고 일컬어지던 인간과 거의 비슷한 기존의 섹스 용품에 인공지능을장착한 개인 맞춤형 섹스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열린 성인 엑스포에서 ‘롯시’와 ‘로키’가 등장한 이후 이탈리아, 미국, 중국, 일본등에서 더욱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아마존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의 온라인 시장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섹스 로봇이 광범위하게 거래되고 있다.서양 일부 국가의 경우 여러 종류의 섹스 로봇을 갖춘 오프라인 카페들이 영업중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당연히 섹스 로봇에 대한 찬반 논쟁이 국내외에서 이미 들끓고 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니 “로봇의 도덕적 지위” 혹은 “탈인간중심주의적 성 도덕” 등 온갖 현란한 미사여구가 마치 대단한 성찰인 것처럼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심각
한 사회적 논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률을 새롭게 제정하고 관련 규정들
을 재빨리 정비해야 한다는 짐짓 근엄한 주장이 소돔과 고모라를 깨우는 광야의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무수한 찬반 논쟁이 그러했듯 이 논쟁 역시 결국은 ‘성적 자기 결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자유주의의 승리로 귀결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유형의 성행위이건 금지되어서는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로봇 섹스 역시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겠지만 결국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고 말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이버 섹스나 로봇 섹스는신체적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정서적 혹 경제적 사유로 인해 성에 대한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성적 약자’들에게는 중요한 인권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사이버 섹스가 인터넷을 활용한 자위행위라고 한다면 섹스 로봇은 인공지능덕분에 등장한 자위 도구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성적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사이버 섹스와 섹스 로봇은 더욱 확산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병리적 현상이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호소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욕망 때문에 언제든지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 것 아닐까.

정원섭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있다. 연구서로는 『롤즈의 공적 이성과 입헌 민주주의』, 『현대정치철학의 테제들』,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 『제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사회 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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