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성(性)적 욕망 4 | 문학 작품을 통해서 보는 성적 욕망_사이채

문학 작품을 통해서 보는 성적 욕망

성의 ‘터부와 제한’이 부른 비극 서사

사이채 소설가

 

욕망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발전과 파멸을 추동하는 동력이며, 마찬가지로 서사(敍事)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피터 브룩스가 말하기를 욕망은 항상 내러티브의 출발점에, 그리고 종종 내러티브의 최초 각성(arousal; 성적 자극 또는 그에 따른 흥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태로 존재한다고 한다.불사음(不邪􈹭)은 음행(淫行, adultery)을 경계하는 것이며, 욕자(欲刺)의 고통이 심한 것이 색욕(色慾)이다. 성경에도 십계(十戒)의 하나로 간음하지 말라고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도 간음과 성범죄를 법으로 저지한다. 그렇다면 문학 작품에서는 인간 본성 중 하나인 성적 욕망을 어떻게 다룰까.

청교도적 징벌과 혹독한 속죄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의 『주홍글씨』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Puritan)가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한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다.
남편이 죽은 줄 알았던 헤스터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바람에 간음죄로 심판대에 올라 정죄를 받고, 주홍빛 천으로 만든 글자 ‘A’(Adultery, 간음)를 가슴에 달고 살아간다. 뒤늦게 도착한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는 아이의 아버지가 그 사회에서 존경받는 젊은 목사 아서 딤스테일이라는 걸 알아내고, 그의 주치의가 되어괴롭힌다. 죄책감에 시달려온 딤스테일은 총독 부임 예배 설교를 마치고 연회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심판대에 서서 죄를 자백한다. 그는 심판대에 올라 헤스터와딸 펄을 가까이 불러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A’ 자를 보여주고 죽는다. 얼마 가지않아 칠링워스도 많은 재산을 펄에게 남기고 죽는다. 시간이 흘러 헤스터는 장성
한 펄을 떠나 뉴잉글랜드에서 살다가 생을 마친다. 작가 호손은 청교도의 후손으로 이 작품에서 청교도 정신을 잘 드러낸다. 즉 간음은 중요한 죄이며, 드러난 죄든 숨은 죄든 모두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역
설한다.

탐욕-자기혐오의 반복과 고해성사
톨스토이(1826~1910)의 「악마」는 젊은 남성의 육체적 욕망과 자책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다. 작가는 이 작품을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다.앞길이 창창한 청년 예브게니는 작고한 아버지의 빚을 정리하려고 고향에 내렸다가 영지에 머물며 농장을 경영한다. 그곳에서 그는 혈기왕성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부녀 스체파니다와 몇 차례 관계한다. 그 후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살던 그가 어느 날 스체파니다를 보자 잊고 있던 그의 몸을 탐하려는 욕망에휩싸인다. 결국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소설은 또하나의 결말을 제시하는데, 이번에는 예브게니가 스체파니다의 등에 권총을 쏜다. 총을 쏘기 전에 예브게니가 외친다. “과연 난 정말 내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걸까? 진짜 나는 파멸할 것인가? 하느님 맙소사! 어떤 신도 없어. 오직 악마만 있을뿐이야. 바로 그 여자지. 악마가 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난 싫어.싫다니까 악마, 그래 악마야!”

현실 반영에 적합한 문학 장르인 소설은 악을 고발하려고 악행을 묘사하기도하지만, 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악행을 묘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소설을 읽으면서 성적 욕망의 터부와 제한이 어느 선까지 타당한 것인지,그것이 어떻게 선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질문해야 한다.

이 소설도 성적 욕망에 대한 죗값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마치 기독교의 고해성사 의식과 같다. 그는 충동적 격정을 감내하기 어렵다고 고해(告解)하지만, 그것을극복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른다. 『숫타니파타』에 예브게니처럼 남의 아내를 탐욕하고, 그것을 자책하며 자기를 혐오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탐욕과혐오는 자신에게서 생긴다. 좋고 싫은 것과 소름 끼치는 일도 자신으로부터 생긴다. 온갖 망상도 자신에게서 생겨 방심케 된다. 마치 어린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아버린 것처럼. 그것들은 집착에서 생겨나고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이중의 육체화’를 통해 남성을 타자화
은희경(1959~ )의 「먼지 속의 나비」는 1996년 발표된 작품으로 성적 욕망의 주체성을 가지려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프리랜서 기자 최선희는 일에는 독종이며, 사생활은 ‘그렇게 소문이 안 좋은’인물이다. 그의 주위에는 툭하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김 선배, 성적으로 문란하다며 최선희를 못마땅해하는 방혜원, 이 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최선희의 몸을 탐하려 하는 박주원이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최선희의 사생활이다. 최선희는세상이 제한하는 것을 어김으로써 통제와 억압의 틀을 깨려고 한다. 그 저항 방식이 자유로운 섹스다.
한편 박주원은 최선희의 많은 남자 중 한 명이 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성적 욕망이 존재 증명이라는 가면을 쓴 셈이다. 박주원은 최선희와 관계하고 나서 섹스 잠언집을 쓴다는데 진짜 경험담이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최선희는 박주원에게 돈을 내밀며 이 섹스를 매춘으로하자고 말한다. 박주원의 말투 속에는 여자를 소유한 뒤 남자가 가지기 마련인 여유로움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불편한 사실이 있다. 성의 해방을 꾀하는 최선희가 남성과 같은 방법으로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여러 여성과 관계하는 것이 많은 남성의 판타지이듯, 최선희가 많은 남성과 관계를 보편화하려는 태도는 남성의 판타지를 모방한 셈에 불과하다.

노년의 존재 증명과 환상의 파멸
박범신(1946~ )이 2010년 발표한 『은교』는 노년의 ‘존재 증명과 성적 욕망’에 관한 서사로 주목을 받았으며, 영화로도 나왔다.위대한 시인 이적요는 그의 제자 격인 소설가 서지우와 열일곱 살 은교를 두고경쟁의식을 갖는다. 서지우가 은교와 관계하는 걸 목격한 이적요는 서지우의 자동차를 고장내 그를 사고로 죽게 한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보통 여자애’에 불과하다. 그가 은교에게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본 것은 그림자가 되어버린 노년의 좌절에서 비롯된 환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적요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늙은 것이지 죽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은교에게 집착한다.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난날의 젊음에 대한 동경이며 그것이 파멸을 불렀으니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비난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이적요에게 성적 욕망은 존재 증명을 위한 수단이자 목적이다. 그의 집착은죽어감을 거부하려는 처절하고 진솔한 진술이다. 반면 서지우는 젊음의 성적 욕망과 함께 스승이 넘볼 수 없는 걸 자신이 한다는 우월감이 엿보인다.그렇다면 은교는 이 소설에서 무엇이었을까. 은교는 말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최악의 소설로 전락한다.
이들 소설에서 어떠한 형태이든 개인의 성적 욕망이 사회의 공적 욕망으로 인해 좌초되고 파멸을 초래한다는 걸 보았다. 이 불행한 서사에 대해 미셸 푸코는반박한다. 그는 성의 억압이나 해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왜 끊임없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는 ‘성이 모든 것의 이유’로 앎의의지를 촉발하는 근본 원인이 성적 욕망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주체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낡은 것이라고 할 만도 한 ‘성 터부와 제한’이 아직도 자체의 윤리를 지니며 사회에 견고한 벽으로 남아 있음을 소설에서 재확인했다. 그런데 이 해석의 다른 편도 보아야 한다. 현실 반영에 적합한 문학 장르인 소설은 악을 고발하려고 악행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악행을 묘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소설을 읽으면서 성적 욕망의 터부와 제한이 어느 선까지 타당한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선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이채 장편 소설로 『염』, 『잠들지 않는 물고기처럼』, 소설집으로 『사랑, 고놈』이 있다. 김우종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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