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불교 |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불교 세계_김관식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불교 세계

김관식 시인

이청준 소설가

이청준은 존재론, 선악론 등 불교적 상상력으로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소승적 자각에서 대승적 실천으로 가는 방도에 대한 소설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청준(1939~2008) 소설가는 생전 창작 활동에 전념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장편 소설 17편과 중·단편 소설 155편을 실은 『이청준 전집』은 총 34권 분량에 달한다. 그는 소설에서 불교를 즐겨 소재로 다루었다. 「서편제」, 「소리의 빛」, 「빗새이야기」,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 「해변 아리랑」, 「이민수속」, 「잔인한 도시」, 「노거목과의 대화」, 「인간인」 등을 불교 소설로 손꼽을 수있다.
이청준은 「다시 태어나는 말」을 발표하기 전까지 『언어사회학 서설』(1973~1981)연작과 『남도 사람』(1976~1981) 연작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었다.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은 1973년 그 첫 작품 「떠도는 말들」을 발표한 후 1981년 초까지 4편이발표된 상태였고, 『남도 사람』 연작 또한 1976년 그 첫 작품 「서편제」를 발표한후 1980년까지 4편이 발표된 상태였다.그는 1981년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1991년「인간인」을 발표하기까지 꾸준히 불교 세계를 다룬 소설을 써왔다. 「인간인」에와서 비로소 이청준의 불교 세계에 대한 탐구와 형상화는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다시 태어나는 말」, 「노거목과의 대화」, 「흐르는 산」, 「인간인」 등 네 작품을 대상으로 이청준의 불교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태어나는 말」을 통한 다선(茶禪)의 세계

이청준이 처음으로 불교 세계를 인간의 구체적 삶 속에 구현해보려고 시도한작품은 「다시 태어나는 말」이다.주인공 윤지욱은 우연히 『초의선집(草衣選集)』이라는 책을 읽고 다선에 관심을갖게 된다. 그는 초의 선사와 다선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그 책 편역자김석호를 찾아간다. 김석호는 윤지욱을 초의 선사가 생전에 기거했던 일지암(一枝菴)으로 안내한다. 김석호는 다선의 경지를 대표하는 인물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頌)’ 핵심 구절을 인용하고 해설해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윤지욱은 다도(茶道)가 언어와 정신 관계에 대한 올바른 규범을 제시해주는 것임을 깨닫는다.이청준은 「다시 태어나는 말」을 통해 불교 세계에 대한 경험이 주인공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다루었다. 『남도 사람』 연작의 중심에놓여 있는 한(恨)의 극복이라는 명제와 초의 선사의 다선으로 구현된 선불교의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인간인」에 가서 본격적으로 다루게된다.

「노거목과의 대화」를 통한 늙은 현자(賢者) ‘지혜’의 말

「노거목과의 대화」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니는 작품으로 작가를 연상시키는작중 화자를 등장시켜 거대한 은행나무를 상대로 서로 주고받는 문답을 전개하는 대화 형식의 소설이다.주로 삶과 죽음의 문제,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상에 대한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모두가 불교의 가르침과 상통하거나 일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예를 들면 화자가 나무를 향해 ‘나무 생명의 무한성’과 ‘인간 생명의 유한성’을 대비하며 탄식한다.
“그 유한성이 당신 앞에 저를 이토록 절망케 하곤 합니다.”
나무는 충고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세상을 보지 마라.”
또 화자가 묻는다.
“우주 만물의 본질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나무는 대답한다.
“인간들 말로는 섭리라 하고 법(法)이라 하고 혹은 원소나 도(道)나 무(無)라고들말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본질을 바로 말하고 있지 못한다.”
불교의 언어관, ‘직지인심(直指人心)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선불교의 입장과 일치한다.이 소설은 불교와 문학을 합일된 차원으로 끌어올려 상승 효과를 낸 작품으로인간 존재의 근원 탐색인 삶과 죽음의 본질, 구원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흐르는 산」을 통한 불교 수행 방법

이청준이 불교 서사를 통해 구체적 삶의 차원에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은1987년에 발표한 「흐르는 산」에서부터다. 불교 세계의 경험이 경험자의 삶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나는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도섭이다. 그는 일제 말기에 자기를 괴롭힌 일본인 관리에게 복수하고 대원사로 숨어든 인물로 권력의 문제, 한의 문제와 연결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그는 대원사에서 무불 스님이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무불 스님은 과거에 일제의 부정한 권력과 연결된 내용의 악업을 지은 바가 있으며, 그 악업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한을 심어준 인물이다. 무불 스님이 자리행(自利行)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높은 정신적 경지에 이를 때 이타행(利他行)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자리행과 이타행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불교적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두 가지가 있다. 무불 스님은 일회적이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참회를 실천하는 사참차원까지 나아가 장좌불와라는 수행 방법을 실천한 것이다.

장편 소설 「인간인」을 통한 삼독심(三毒心)에서 벗어나기와 불성 자각

「인간인」 제1부는 대원사를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흐르는산」의 주제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까지도 일제 말기, 그리고 남도섭으로 「흐르는 산」과 일치한다. 다만 「흐르는 산」에서는 주인공 남도섭을 대원사로 도피한 피동적 인물로 설정했지만, 「인간인」에서는 일제 경찰의밀정이 되어 출세하는 것으로 자신의 한을 풀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로설정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우봉 스님은 일제 관헌의 핍박을 피해 대원사로 숨어든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아 실천한다. 남도섭은 탐진치(貪瞋痴)에 이끌려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고 있다. 자신은 교묘한 위장술을 발휘하며 추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농락당하는 바보 노릇으로 일관한다. 치(痴)의 극한에 다다른 인물이다. 우봉 스님은 그에게 삼독심(三毒心)에서 벗어
나라고 권유한다.
「인간인」 제2부에서는 「흐르는 산」의 등장인물 무불 스님이 다시 나오고 남도섭은 안장손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된다. 무불 스님의 감화로 성격이 불량배 같았던 안장손은 내면의 불성이 깨어나는 체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한을 극복한다. 다른 피신자를 돕는 이타행 실천으로 한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광주항쟁의 총격전에 뛰어들었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에서는 노암 스님이 등장한다. 한 맺힌 사연이 있으며 그 한을 승화하고 넘어서는 길을 불교에서찾아낸 인물이다.
이청준은 「인간인」을 통해 존재론, 선악론 등 불교적 상상력으로 인간 존재에대한 근원적 성찰과 소승적 자각에서 대승적 실천으로 가는 방도에 대한 소설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김관식 『전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과 계간 『자유문학』에서 시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감사, 국제PEN한국본부 및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김우종문학상과 노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시집 『가루의힘』, 평론집 『한국 현대 시의 성찰과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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