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 불꽃_신대식

불꽃

신대식 수필가

어느 해 사월 하순경, 햇볕 따스한 봄날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새벽 일찍 연락을 받고서 부랴부랴 시골로 내려갔다. 병원 영안실에 들어서니흰 천으로 전신을 가리고 누워 계신 어머니는 한 줌 안으로 쏘옥 들어올 만큼 너무나 왜소해 보였다. 얼굴을 가린 천을 내리니, 생전에 그처럼 차갑고 도도하던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텅 빈 것만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서, 슬
픔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연민의 정이 솟았다.
소도시 변두리의 야산 지대에 위치한 작은 화장터는 싱그러운 신록에 둘러싸여 정적에 잠겨 있고, 한적한 시골 농가와도 같은 단층 건물엔 봄 햇살이 하얗게내려앉아 있었다. 소각로 입구에는 직사각형의 석고 철판이 놓여 있어, 그 위로목관이 조심스레 올려졌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시각으로 확인하는마지막 순간이었다.

이윽고 무표정한 화부(火夫)의 손길이 벽에 설치된 스위치를 누르자 가족들의 흐느낌 속에 레일 위로 목관이 스르르 흘러, 좁은 동굴과도 같은 소각로 안으로빨려 들어갔다. 곧이어 ‘딸각’ 하고 안착을 알리는 가벼운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양쪽 벽에서 시뻘건 불길이 뱀의 혓바닥처럼 기다랗게 뻗어 나와 목관을 슬쩍 핥는 듯하더니, 이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파르스름하게 변한 불길이 사방에서 거센 기세로 관을 덮치자 좁은 동굴은 화염에 휩싸였다. 순간, 소각로 입구에 숨겨져 있던 철문이 위로부터 소리 없이 내려와 사자(死者)를 이승과 차단시켜버렸다. 다시금 푸른 유리벽이 내려와서 철문마저 가려버리자 실내에는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가족들의 허망한 시선만 허공을 맴돌았다. 이제 와서 어떠한 말도, 나눌회한도 무슨 소용이랴. 형제들은 서로 시선을 피한 채 표정이 굳어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빼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수리에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반짝이는 신록 그리고 파랗게 빛나는 봄 하늘. 봄날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서 화창하기만 했다.

그늘을 찾아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소각로 기계실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작고 동그란 유리 구멍을 통해 불길 속 아비규환의 세계가 보였다. 여기가 세상을떠난 혼령이 천당에 이르기 전, 속세에서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심판을 받는다는 연옥 세계인가. 목관은 이미 불꽃에 덮여서 보이지 않았다. 성난 파도처럼 거센 불길이 사방에서 밀려와 소용돌이치는 용광로의 중심에는 파르스름한 불꽃이끓어오르고, 가장자리의 진붉은 불꽃은 너울너울 춤을 추며 손짓을 했다. ‘들어오라, 어서 들어오라’는 것처럼.

이 유골마저도 묻히고 나면 당신이 세상에 다녀갔다는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기억조차도 쉬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화려한 불꽃은 사람의 넋이 빨려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점점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그만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내 심령의가느다란 시선은 유리 구멍을 지나서 불길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거센 불길에 밀리면서 힘겹게 불길을 거슬러 목관을 뚫고 흘러들어간다. 수의에 싸여서 반듯이누워 있는 시신이 보인다. 목관 안의 공기는 이미 터질 듯 팽창해 폭발 직전의 상태에 있다. 시신에서는 땀인가, 눈물일까, 회한의 피눈물이 샘솟듯 흐른다.마침내 발갛게 달구어진 목관의 파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면서 성난 불길이시신을 덮치자, 머리카락이 사르륵 오그라들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서 전신이불길에 휩싸인다. 드디어 얼굴 근육이 씰룩이다가 일그러지면서 꽉 다문 이빨이하얗게 드러난다. 갑자기 핏망울이 선 두 눈동자가 화들짝 놀란 듯 떠지더니 시신의 상체가 벌떡 일어난다.

“아앗! 이놈들아. 안 돼, 안 돼. 아직 안 돼, 이놈들아. 어찌 나를 …, 난 갈 수 없어.”

생에 대한 미련인가. 처절한 몸부림과 피를 토하는 절규가 불길 속에서 회오리친다. 그러나 펄펄 끓어오르는 용광로의 쇳물은 아랑곳없이 한 인간이 표백되어 무(無)의 상태로 되돌아갈 때까지 무자비하게 육신을 태우며 영혼을 불사르고 있다.환청인가. 어디선가 목탁 소리와 더불어 독경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톡! 똑 똑, 또르르르 ….”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
‘모든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거품이요,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도 같고 또한번개와도 같나니 ….’
건물 지붕 위의 굴뚝에서는 시신이 몸부림칠 때마다 시커먼 연기가 풀썩풀썩 솟아올랐다. 연옥의 불꽃은 세상사 온갖 애증과 맺힌 마음을, 먼지를 남김없이 태
워버리려는가 보다.이윽고 계속되던 처절한 몸부림이 잦아드는지, 지붕 위의 굴뚝에서는 봄 아지랑이 같은 열기만 하늘하늘 날아오르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서, 소각로 입구의 철문이 올라가고 석고 철판이 미끄러져 나왔다. 목관이 얹혀 있던 자리에는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사그라지고 하얗게 바랜 유골의 잔해만 흩어져 있었다.잔해를 집게로 집어 올리니 푸석푸석 사그라졌다. 손에 힘을 빼고서 조심스레집어 올려 알루미늄 믹서에 넣었다. 믹서를 돌린 후에 뚜껑을 열어젖히니 혼령이날아오르듯 하얀 먼지가루가 공중으로 뿌옇게 피어올랐다.어머님의 팔십오 년, 애증의 세월이 한 줌의 재로 삭아 있었다.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겨우 이것이던가.

어머님, 당신은 진정 누구였습니까. 생전에 무엇을 위해 그토록 인생을 외롭게 사셨습니까. 잠시 후, 이 유골마저도 묻히고 나면 당신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며,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조차도 쉬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혹시나 서러워 마시고 인생 자체가 부질없는 것일진대, 맺혔던 마음 푸시고 편히 잠드소서.어머님 유골은 고향 마을 앞산, 아버님 곁에 모셨다. 사십여 년을 외롭게 혼자 계셨던 아버님 혼령이 반기실까, 아니면 벌써 잊었노라며 덤덤한 심정으로 맞이하실까.묘지 주변의 과수원 능선마다 복숭아꽃, 사과꽃이 안개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후미진 언덕에는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하늘은 온통 봄기운으로 뿌옇게 흐린데,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아지랑이를 흔들며 들려오고 있었다.
사월은 정녕 잔인한 달이었다.

신대식 『한글문학』 및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했다.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고 수필집 『바람 불어 구름은 흐르고』,『마음의 여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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