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이란 무엇인가 4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노년기의 마음 수행__오진탁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노년기의 마음 수행

오진탁
한림대학교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

의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수명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대략 3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1기는 탄생에서부터 약 30년 동안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받는 ‘성장기’, 제2기는 약 30세부터 60세까지, 직업을 갖고 생활하면서 자녀를 키우는 ‘사회 활동기’, 제3기는 약 60세 이후부터 일에서 물러나 죽는 시점까지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노년기’다. 최근에는 수명 연장과 함께, 제3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노년기의 화두가 되었다. 노년기는 죽음을 준비하기 적합한 시기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상존하므로, 인간이라면 가능한 빨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붓다는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출가했고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 죽음을 넘어섰다고 말씀했으며, 명상 중에서도 죽음 명상이 최고라 했다. 따라서 불자라면 노년기에 이런 수행을 통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 어떻게 이해할까
죽음 이해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삶을 어떻게 영위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죽음 이해, 인간 이해, 삶의 이해는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다. 죽음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죽음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삶을 의미 있게 영위하는 일과 직접 연관된다. 즉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식의 영역을 보다 확장시켜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죽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완성이라는 증거를 보려면, 의식 경계를 확장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과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1)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육체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몸 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영혼이 육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2)죽으면 다 끝나는가? 죽음은 새 시작인가? 죽음 문제, 누가 증명해야 하는가? 죽음은 증명이나 논증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삶에서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느냐 여부에 따라 죽음 이해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죽음 이해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 영역을확장하지 않으면 죽음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1) 디팩 쵸프라, 『죽음 이후의 삶』(정경란 역, 행복우물, 2006) 17p
2)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 2010) 279p

죽음 준비, 어떻게 할까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과 함께 살게 되고, 죽음의 순간에 삶을 마감하는것이므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죽음 준비는 일상의 삶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 준비는 구체적 방법이 있다. 만일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죽을 준비가 되었는지,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부를지라도 선뜻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한다. 달라이 라마는 “죽음은 헌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면 낡은 몸을 버리고 새 몸을 받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쓸모없는 낡은 몸을 완전히 이별하고 새롭고 완전한 몸을 받기 때문이다. 죽음은 깊은 내면을 경험하는 기회일 뿐이다. 나는 죽음이 기다려진다. 매일 기도를 통해 죽음, 중음 과정, 내생을 생각한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 순간 정말 죽음의 과정을 완전히 이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흥분된다”3)고 말했다. 아직 살아 있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통해, 죽음의 순간에, 죽은 이후에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육신을 전부로 알게 되므로, 지금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삶은 황폐해져서 우리는 삶을 온전하게, 충분히 살 수 없게 된다. 죽음 준비는 삶의 제한된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함으로써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다.

3) 『KBS』 스페셜 다큐(1998년 5월 3일)
4) 오진탁, 『마지막 선물』(세종서적, 2007) 3장 참조

죽음의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 네 가지를 알 수 있다. ① 누구나 ② 언제나 ③ 어디서나 죽을 수 있다. 또 ④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은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이 절망, 두려움으로 죽었다면 그의 삶 역시 불행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죽음은 아무것도 없는 끝이라며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죽음의모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9가지 종류가 있다. ① 절망과 두려움, ② 부정, ③ 분노,④ 슬픔, ⑤ 삶의 마무리, ⑥ 수용, ⑦ 희망, ⑧ 마음의 여유, ⑨ 밝은 죽음.4) 아니 리루의 죽음은 그녀의 삶과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아페 돌제는 아니 리루가 죽음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찾았다. “아니 리루! 이제 참된 기개를 보여줄 시간이란다.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니 커다란 축복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수행 역시 제대로 닦는 값진 기회도 만났지. 이제,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은 가르침의 정수, 특히 스승이 죽음의 순간을 위해 제시한 지침을 지속적으로 마음에 유지하는 것뿐이란다. 그대 마음에 조금도 흩어짐이 없게 해라. 우리는 잘 지낼 거야. 그러니, 잘 가거라.” 5)

5) 소걀 린포체, 『티베트의 지혜』(민음사, 2003) 372~374p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 이후, 나는 어디 있는가
육신이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추면, 영혼은 3일 반에 걸쳐 육신으로부터 분리된다. 이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죽은 뒤에 몸뚱이가 화장되면 재가 되고, 땅에 묻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중생들은 죽은 뒤에도 평소 쓰던 육신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은 육신과 함께 죽는 게 아니다. 마음은 참다운 생명이다. 몸은 거품같이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게 된다. 육신도 지수화풍 4대가 모여 형상을 이루었다가 인연이 다하면 몸은 사라지게 마련이다.”6)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죽어 화장한 뒤 육신이 자신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대답도 못하면서 자기 존재를 전제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 있을까?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죽음 순간 편안하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다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죽어가기 때문이다.‘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부모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어디 있었는가? 죽어 화장한 뒤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죽은 뒤 우리는 붓다, 빛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빛의 존재는 질문을 던진다. 첫째,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의 영혼은 삶의 과정에서 얼마나 성숙했는가? 둘째, 당신은 얼마나 영혼이 평화롭고 여유 있게 죽었는가, 당신은 죽음의 관문을 제대로 통과했는가? 이런 질문과 함께, 영상처럼 떠오르는 내 삶의 모습을 빛의 존재와 함께 보면, 우리 삶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영혼을 보다 성숙시키기 위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성취와 출세만을 도모한다면, 두 가지 질문앞에서 말이 없게 된다.

6) 청화 스님, 『영가천도법어』(광륜출판사, 2009) 32p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
마음을 닦아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이 세상에 집착해 떠날 줄 모르게 된다. 우리는 마치 죽음이 문제인 듯이 말하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문제가 아닌가. 죽음이 던지는 근본 메시지는 죽음을 준비한다면 삶과 죽음에 커다란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죽음을 철저히 준비해 수행
을 닦은 사람에게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이다. 살아생전에 마음의 눈을 밝히지 못했다면 죽음의 과정과 죽음 이후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이리저리 휩쓸려 헤매듯이 죽음이후 영혼은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업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게 될
따름이다. 우리 삶에는 선택과 자유의지가 있지만, 죽음의 세계에는 선택과 자유의지가 없다. 자기에게 알맞은 세계만이 그의 눈에 보일 따름이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빛, 밝은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세계만 그런 게 아니라 삶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수행을 닦아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죽은 뒤에도 여전
히 이 세상에 집착해 떠날 줄 모르게 되고 영혼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은 이전과 크게 바뀌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려면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묻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의 모습으로 산다. 앞에 놓인 많은 우주의 선물도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거듭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7)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2008) 22~26p

오진탁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 철학전공 주임교수
로 있다. 저서로는 『삶, 죽음에게 길을 묻다』, 『마지막 선물』,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 : 죽음 이해가 삶을 바꾼다』 등이 있
고, 번역서로는 『티베트의 지혜』,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한글세대를 위한 금강경』,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
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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