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아함경』 | (4) 『아함경』의 핵심 내용__김윤수

(4) 『아함경』의 핵심 내용

김윤수
경전 번역가

『장아함경』의 내용
『장아함경』은 한 부파의 장부 경전을, 413년에 계빈국 출신의 사문 불타야사(佛陀耶舍, Buddhayaśas)와 양주(涼州) 출신의 사문 축불념(竺佛念)이 22권으로 공역한 것이다. 그 원전은 서북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사용되던 프라크리트어로 기록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를 전승해온 부파는 법장부(法藏部)였으리라는 점에 대체로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장아함’이란 제목은 범어 『디르가아가마(Dīrghāgama)』를 의역 및 음역해 합성한 말인데, 긴 길이의 경들을 모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지만, 현존 『장아함경』의 경우 단순히 길이를 기준으로만 모은 것 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체제와 내용을 분석할 때 오히려 불교 외의 인사들에게불교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집되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 된다는 점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다.
현존 『장아함경』 22권은 30개 경을 수록하면서 이를 4부로 나누며, 제1~3부의 주제가 순차 불·법·승 삼보이고, 제4부 주제는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표현할 수있다.
먼저 제1부 중 제1 대본경은 과거 7불의 여러 인연을 설명한 것인데, 그러면서그 대표로 비바시 붓다의 일생을 설명함으로써 붓다의 생애를 보이는 것이고, 다음 제2 유행경은 반열반을 앞둔 붓다께서 왕사성을 떠나 수개월에 걸쳐 열반에드실 구시나갈에 이르기까지 각지를 순회하면서 펴신 최후의 가르침과 구시나갈
성에서의 반열반 과정을 서술한 경이다. 이어서 제3 대전존경은 대전존이었던 붓다의 전생에 펼쳤던 광범한 도의 교화에 대해 밝히시면서, 그러나 당시의 교화는 궁극의 도가 아니었으므로 궁극의 범행을 얻게 할 수 없었고 안온한 곳에 이르게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궁극의 도법(道法)·범행(梵行)·안온에 대한 가르침으로열반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밝히시는 경이며, 제4 사니사경은 전생에 병사왕이었던 사니사 귀신을 통해 스스로 세 가지 지름길을 열고 정각을 이루는 등 붓다의 공덕을 설명하는 경이다.

다음 제2부는 가장 많은 15개 경을 수록하고 있는데, 먼저 제5 소연경은 세간의 네 가지 종성의 기원과 함께 네 가지 종성의 평등을 밝히는 내용이고, 제6 전 륜성왕수행경은 전륜성왕들이 닦고 행한 법에 견주어, 비구가 닦고 행해야 할 법을 밝히는 것이며, 다음 제7 폐숙경은 동녀 가섭이 폐숙 바라문에게 다른 세상,
다시 태어나는 것, 선악의 과보가 있는지에 대한 바른 견해를, 열네 가지 비유를 들어서 밝히는 것이고, 제8 산다나경은 외도의 제일 뛰어난 고행으로 얻을 수 있는 법의 한계와 불법(佛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대비해 밝히는 것이다. 다음 제9 중집경은 사리불이 여래의 명을 받들어, 여래께서 설명하신 바른 법의 정수를
법수 1에서 10까지 순차 간략히 열거해 밝히는 것이고, 제10 십상경은 사리불이역시 여래의 명을 받들어, 온갖 결박을 없애고 열반에 이르게 하며 괴로움을 끝까지 다하게 하는 최상의 법을 법수 1부터 10까지 각각 열 가지씩 열거해 설명하는 것이며, 제11 증일경은 법수 1부터 10까지 앞의 열 가지 중 다섯 가지 법을 세
존께서 직접 각각 열거해 설명하시는 것이고, 제12 삼취경은 세존께서 악취·선취·열반으로 각각 나아가게 하는 세 가지 무더기[三聚]의 법을 법수 1에서 10까지 열거해 설명하시는 것이다. 다음 제13 대연방편경은 세존께서 12연기의 의미를 설명하시는 것이고, 제14 석제환인문경은 중생들이 원한을 품어 칼과 몽둥이
로 서로를 향하는 원인과 궁극의 안온을 얻는 방법을 밝히시는 것이며, 제15 아누이경은 신통을 보이거나 세상의 기원에 대해 밝히는 것은 불교의 본령이 아니라는 것을 외도 수행자와의 대담을 통해 밝히시는 것이고, 제16 선생경은 여섯방위에 비유한 재가 생활의 덕목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며, 제17 청정경은 여래
와 여래의 법이 외도와 차별되는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고, 제18 자환희경은 사리불이 여래의 법과 여래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얻고 스스로 환희한 것을 밝히는 것이며, 제19 대회경은 붓다와 오백 분의 아라한들이 모이자, 여러 종류의 중생들이 찾아와 예경하는 모임을 소개한 것이다.
다음 제3부는 모두 10개 경을 수록하고 있는데, 먼저 제20 아마주경은 불교 수행자가 위없는 명지와 행을 갖추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고, 제21 범동경은 바라문이나 외도들이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일으키는 62사견을 분류해 정리하신 뒤, 그 원인이 되는 여섯 가지 접촉의 일어남·소멸·맛·허물·벗어남을 여실하게 앎
으로써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밝히시는 것이며, 제22 종덕경은 진정한 바라문의 조건과 불교 수행자가 그것을 갖추는 과정을 설명하시는 것이고, 제23 구라단두경은 바라문에게 큰 과보를 얻게 하는 제사의 요건에 대해 설명하신 뒤, 그 공덕을 능가하는 불교의 수행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며, 제24 견고경은 불교에서의 진정한 신통변화를 설명하시는 것이고, 제25 나형범지경은 계를 갖추고 봄을 갖춘, 최상이며 미묘하기 제일인 불교의 수행과 그 과보를 설명하시는 것이며, 제26 삼명경은 범천에 태어나는 길을 밝히시는 것이고, 제27 사문과경은 사문의 과보를 설명하시는 것이며, 제28 포타바루경은 이치에 맞지 않고 범행을 닦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닌 명제를 탐구하려고 하지 말고, 이치에 맞고 범행을 닦게 하며 열반에 이르게 하는 사성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교시하시는 것이고, 제29 노차경은 진정한 설법의 의미를 설명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제4부는 5개 권에 걸쳐 제30 세기경 1경만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
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경이다. 이 세기경은 모두 12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제1~8품과 제10품은 지옥·축생·아귀·아수라·사람과 천신이라는 육도의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설명하고, 제9품과 제11·12품은 그런 세계가 파괴되어 비었다가 생성되어 머무는 과정을 설명한다. 따라서 전자는 불교의 공간적 세계
관을 보이는 것이고, 후자는 불교의 시간적 세계관을 보이는 것이므로, 불교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경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장아함경』은 불교의 삼보와 세계관을 설명함으로써 불교를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편집된 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다른 하나의 장부 경전인 『디가 니까야』는 모두 34개의 경을 제1계온품(戒蘊品)[Sīlakhandhavagga](13경), 제2 대품(大品)[Mahāvagga](10경), 제3 빠띠까품
[Pāṭikavagga](11경)의 3개 품에 나누어 수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장아함경』과 대조하면, 대략 두 가지 점이 드러난다.
그 첫째는 4부 아함 중 어느 아함보다 니까야와 상응하는 경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장아함경』 쪽에서 보면 30경 중 27개 경이, 『디가 니까야』 쪽에서 보면 34경 중 28경이 서로 대응되는 경이다. 서로 1경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제2 유행경이 『디가 니까야』 제16·17경의 2개 경과 상응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장아함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30 세기경이 『디가 니까야』에는 없다는 점인데, 한문 경전에 이 경과 상응하는 세 종류의 독립된 이역본이 있는 것을 보면, 불교의 세계관을 설명한 이 경이 불교 밖에 있는 이들에게 불교를 알리려는 장부 경전의 편집 목적에 부합한다는 점 때문에 후대에 『장아함경』에 편입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둘째, 경의 편성과 수록 순서이다. 『디가 니까야』 제1 계온품에 수록된 13개 경중 10개 경이 『장아함경』에 상응하는 것이 있는 것들인데, 이 10개는 예외 없이 모두 『장아함경』의 제3부에 수록되어 있으며, 『디가 니까야』 제3 빠띠까품에 수록된 11개 경 중 9개 경이 『장아함경』에 상응하는 것이 있는 것들인데, 이 9개는
예외 없이 모두 『장아함경』의 제2부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디가 니까야』 제1 계온품은 승보를 설명하는 것이며, 제3 빠띠까품은 법보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 『장아함경』과 그 편성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디가 니까야』 제2 대품에 수록된 10개 경 중에서는 9개 경이 『장아함경』에 상응하는 경이 있는 것들인데, 그중 5개 경은 『장아함경』의 제1부에 수록되어 있지만, 제15 대인연경, 제20 대회경, 제21 제석문경, 제23 빠야시경의 4개 경은 『장아함경』의 제2부에 수록되어 있어, 편성이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디가 니까야』 제2 대품은 불보를 설명하는 경들의 모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된다.붓다께서 깨달으시고 중생들을 위해 펴신 ‘법’이 ‘붓다’와 무관한 것일 수 없을 것
이고, 불보를 설명하는 경과 법보를 설명하는 경의 경계가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디가 니까야』의 3개 품도 삼보를 나누어 설명
하는 것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함경』의 현대적 의미
필자는 지난해 말 한역 4아함을 완역한 아함전서를 출간한 뒤 『아함경』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 질문을 몇 차례 받았는데, 당시 처음에는 그것이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아함경』이 한문 경전 중 붓다의 가르침을 기록한 유일한 경전이라면, 붓다의 가르침, 즉 불교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경전이 『아함경』인데,
이것에 어떻게 고전적 의미가 있을 수 있고, 현대적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인도 대륙에서라면 이 생각이 옳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대륙에서는 불교가 펼쳐진 후 첫 500년 동안 이 『아함경』의 가르침만 있었다가 500년이 지날 무
렵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 한참 동안 성행하면서 『아함경』의 가르침이 대승불교와 공존했지만, 당나라의 대역경가 현장(玄奘)이 인도를 방문했던 7세기경에도 대승불교보다 기존 부파불교의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하므로, 대승불교의 최전승기에도 『아함경』의 가르침이 주류를 잃지 않았다고 하겠다. 그 후 쇠락의 길을 걸은 인도 불교는 13세기경 소멸의 운명을 맞았다가 18세기경 『아함경』의 가르침과 함께 부흥한다. 그러니 인도에서는 이 『아함경』의 가르침이 한 번도 주류적인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대승불교운동이 이미 시작된 1세기에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첫 500년간에는 『아함경』의 가르침이 대승불교와 함께 전래되어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함경』의 가르침이 특별히 중시되었다거나 또는 홀대받았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랬던 것이 수나라 시대의 스님 천태지의(天台智顗)가 『아함경』을 경시하는 오시교판(五時敎判)의 주장을 펼친 것을 계기로 대승 경전을 중시하고 『아함경』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이래, 그 무렵부터 중국 불교를 지배하다시피 한 선불교의 거센 흐름이 그런 분위기를 고착화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환경은 현대에 들어서 초기 불교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날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렇게 『아함경』을 무시하는 분위기는, 불교 전래 후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지배해온 우리나라의 경우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불교가 한 번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고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 분위기가 일변했다. 『아함경』 완역이 한글대장경 번역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아함경』의 필요성을 절감한 분들에 의해, 현대어에 해설이 동반된 『아함경』 번역이 시도되어왔다. 이를 계기로 초기 불전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점점 고조된 결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세한 해설을 동반한 니까야 번역서가 대부분 출간되기에 이르렀고, 근래 필자는 한역 4아함에 있는 오류들에 대해 교정의 노력을 기울이고, 필요한 해설을 덧붙인 『아함경』 번역서를 출간했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번역이 없던 우리나라에 처음 니까야와 『아함경』 완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한 번도 불교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아함경』에 어찌 현대적 의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현재 우리 불교는 적지 않은 병폐를 안고 있다. 그 모든 병폐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이 외면되고 사장됨으로써 붓다의 가르침이 바르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아함경』이나 니까야를 읽어보면 누구나 알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인이 이와 같다면 그 해법도 당연히 초기 불교의
가르침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먼저 『아함경』과 니까야의 가르침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그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이 뒤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분위기가 불자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면, 우리 불교의 병폐는 점차 개선되고 자연히 불교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함경』의 가르침이 널리 알려지고 또 불교가 제자리를 잡는다고 한들 불자 개개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앞에서 불교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얻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눈을 뜨는 깨달음이 몹시 이루기 어렵다는 말
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이 그와 같을진대 분량이 적지 않은 『아함경』을 애써 읽고 이해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코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첫째, 그 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불자라면 그것이 결국에는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모든 괴로움은 우리의 욕망이 초래하는 것이고, 그 욕망은 우리에게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라는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목적은 이룰 수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로써 그런 정신적 괴로움의 대부분을 사라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자들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을 모두 수도원으로 만들 수도 없으며 사람들을 모두 수도자로 만들 수도 없는 현실에서,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불교의 독보적이고 진정한 가치이다.

이번 호를 끝으로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 『아함경』 편 연재를 마칩니다

김윤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1년부터 10년간 판사로, 1990년부터 10여 년간 변호사로, 2001년부터 다시
판사로 일하다가 2011년 퇴직했다. 『육조단경 읽기』, 『반야심경·금강경』, 『주석 성유식론』, 『불교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류의 스승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최근 아함경 전체를 번역해 『아함전서』
(전 16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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