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이야기 4 | 엔트로피와 생명과 무상__양형진

엔트로피와 생명과 무상
양형진
고려대학교 디스플레이 ・ 반도체물리학부 교수

정보이론은 정보를 수량화함으로써 정보통신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 정보이론의 출발점인 엔트로피(entropy)를 생명과 무상과 관련해 살펴보고자 한다. 엔트로피는 섀넌(Shannon)이 1948년에 제안했고, 폰 노이만에 의해 양자 엔트로피로 확장했다.

나뭇잎의 위치에 관한 정보량
예를 들어 설명하려 한다. 가로 세로가 각각 4m인 정사각형의 마당이 있다고 하자. 이 마당엔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16개를 그릴 수 있다. 이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의 위치를 아는 사람K (known)와 위치를 모르는 사람U (unknown)가 있다.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를 수량화하려는 것이 엔트로피다.
두 사람이 적절한 질의-응답의 과정을 4번만 하면, 나뭇잎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U는 그 위치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때 한 번의 질의-응답을 통해 얻는 정보량을 1bit라고 한다. 정보량의 최소 단위다.
위치를 완벽하게 아는 U는 위치를 전혀 모르는 K보다 4bit의 정보를 더 가진상태다. 질의-응답의 과정을 통해 U는 4bit의 정보를 얻게 된다. 여기서 완벽하게 아는 상태의 정보량을 0이라고 하자. K의 정보량은 질의-응답을 통해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0bit다.1) K의 정보량은 질의-응답 이전에는 –4bit이고, 질의-응답
이후에는 0bit가 된다.

1) 마당이 넓어지면 완벽하게 모르는 상태를 수량화하는 게 어려워지므로, 완벽하게 아는 상태의 정보량을 0으로 정
의하는 게 편리하다. 보통의 시험과는 달리, 정보량을 묻는 시험에서는 완벽한 답안이 0점이다.
2) 정보량이 음의 엔트로피이므로, information을 negative entropy 줄여서 negentropy 라고도 부른다.

나뭇잎의 위치에 관한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음의 정보량’으로 정의한다.2) 이제 여러 나뭇잎이 마당에 떨어져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나뭇잎이 한 변의 길이가 1m인 정사각형에 모여있다면, 이는 나뭇잎의 위치를 완벽하게 아는 상태에 해당한다. 이는 나뭇잎의 위치에 대한 정보량이 0이어서 위치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엔트로피가 0인 최소 엔트로피의 상태다. 이와 달리 나뭇잎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면, 그 위치 정보를 잘 모르는 상태다. 위치에 대한 정보량이 상당히 큰 음의 상태이고, 엔트로피가 커진 상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이에 따른 현상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정보량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된다.3) 저절로 엔트로피가 감소하거나 저절로 정보량이 늘어나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저절로’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의 예는 U가 질의-응답이라는 특별한 노력을 하는 과정이고, 이런 노력을 하면 정보량이 늘어나고 엔트로피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언제나 엔트로피는 늘어나고 정보량은 줄어든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그 예를 살펴보자.
마당에 흩어진 낙엽을 쓸어 모아놓으면 저절로 흩어지기는 하지만, 흩어진 나뭇잎이 저절로 한군데로 모이지는 않는다. 물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리면 물 전체가 파랗게 변하면서 잉크가 퍼져 나가기는 하지만, 파란 잉크 물이 잉크와 물로 분리 되면서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지는 않는다. 낙엽이나 잉크 방울이 한곳에 모여 있는 상태는 위치에 대한 정보량이 많은 상태이고 위치에 대한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다. 낙엽이나 잉크가 흩어진 상태는 정보량이 적고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다.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면, 마당에 흩어진 낙엽을 쓸어 모으지 않고 낙엽이 한군데로 저절로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쓰레기통에 담으면 된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저절로 감소하지는 않으므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3) 열역학, 통계역학, 정보이론에서 이를 정당화하는 논의를 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엔트로피 증가와 생명의 진화
생명체는 매우 복잡한 구조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루는 상호 연관과 의존의 체계이므로 대단히 질서정연한 계이다.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 하나도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조직이어서, 이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아주 큰 정보량을 지니므로 엔트로피가 아주 적은 계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단세포 생명체에서 다세포 생
명체로 진화하는 과정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단세포 생명체에서 고등 생명체로의 진화는 엔트로피가 낮은 계의 크기가 수십억 배로 커지면서 정보량이 수십억 배로 증가하는 과정이다. 얼핏 보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없다는 것은 에너지의 출입이 없는 고립계(isolated system)에서만 성립한다.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항상 공급받는 지구는 고립계가 아니다. 지구에서는 생명체가 성장할 수도 있고 진화가 수십억 년 동안 진행될 수도 있다.

무상(無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진화와 생명 현상
엔트로피는 저절로 늘어나는 것이므로 생명체가 아주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게 쉽지 않아서 결국은 모든 생명체가 주변과 엔트로피가 비슷한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생명의 상태를 유지 하지 못하므로 무상(無常)이다.
노력하면 엔트로피를 줄일 수도 있다.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여 풀과 나무가 자라고, 밥을 먹으면서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정보량이 감소하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상의 세계 안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울며 생명이 진화한다.

양형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신시내티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과학으로 세상 보기』가 있고, 『놀
라운 대칭성』, 『과학의 합리성』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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