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재가열전|내가 만난 붓다 | 현대 한국 불교학의 새 지평을 열다__정병조

불연 이기영 거사
현대 한국 불교학의
새 지평을 열다

정병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전 금강대학교 총장

불연의 학문적 배경
불연(不然) 이기영(李箕永) 거사는 1922년 황해도 사리원 출신이다. 1941년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43년 일제의 학병 징용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1945년 수마트라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귀국했다. 그러나 공산당 치하에서 대지주였던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했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1954년부터 6년 동안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역사학과 불교학을 전공했다. 루뱅(Louvain) 대학에서 은사 에티엔 라모트(E.Lamotte)를 만난 것은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계기였다. 라모트 교수는 신부였지만, 인도 불교와 『유마경』 등 대승불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그의 문하에서 산스크리트
(Sanskrit), 팔리(Pālī) 등 인도 고전어를 익혔고 『중론』 등 대승불교 논서를 연찬했다.

그의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은 「Aux origines du Techan
-Houei(懺悔). Aspects bouddiques de la pratique
penitentilel(불교적 관점에서 본 참회의 기원에 관한 연구)」로 프랑
스어로 출판되었다. 1964년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초대
교수로 초빙되었고 당시 김법린 총장의 배려로 그의 불
교학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원효 연구의 대가
1960년대에 국내 불교학 연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친, 이른바 연구 2세대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문헌학 위주의 연구 풍토가 성행했고 그나마 한국 불교에 국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기영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불교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우선 인도 고전어를 통한 불교 연구의 연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불교와 한문 위주의 연구 풍토에 경종을 가했으며, 특히 역사학, 미학, 철학 등 주변 학문에 대한 폭넓은 연찬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비교종교적인 관점 또한 매우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의 출세작 『원효사상』은 1969년에 출간되었다. 이른바 원효의 해동소(海東疏)라고 부르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를 재해석한 역작(力作)이었다. 이 책은 그해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아마 불교학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첫 번째 ‘사건’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변방에 머물던 한국 불교가 세계의 관심을 끈 것도 불연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의 영향을 깊게 받은 학자로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UCLA 교수), 노리토시 아라마키(荒牧典俊, 교토대 교수), 고 윤이흠(尹以欽,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있고, 이외에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문학자들 가운데 이기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 주변 학문에 대한 그의 관심은 「원효의 입장에서 본 카알 야스퍼스의 포괄자(Das Umgreifende)」, 「종교 간의 대화, 무엇이 핵심인가?」, 「하나(Advaita)를 향한 커뮤니케이션」 등의 논문에서 보여진다.
특히 그가 쓴 원효와 관련한 논문만 20여 편에 이른다. 그는 원효 사상의 골격을 반야·유식 사상의 토대 위에 화엄적 융섭(融攝)으로 회향하는 대승불교의 종착점이라고 보았다. 또 중생제도라는 보살사상을 『범망경(梵網經)』 ‘보살계본(菩薩戒本)’의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완성함이라고 정의한다. 전자는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일[歸一心源],” 후자를 “중생의 아픔을 배려하다[利益衆生]”로 압축했다.
만년의 그는 원효야말로 21세기를 주도할 불교사상의 원천임을 천명했다. 「세계의 문화적 현실과 한국 불교의 이상–원효사상은 21세기 세계를 향해 무엇을 줄 수 있는가」는 바로 그의 원효사상 연구의 회향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원효사상』 2편은 「금강삼매경론」을 주제로 하겠다고 말했지만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다. 또 한국 불교를 원효라는 프리즘으로만 해석하려고 했다는 비판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원효는 그에게 있어서 영원한 스승이었고, 아마 전생의 그 자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불교연구원과 재가불교운동
1974년 불연은 한국불교연구원을 창립했다. 창립 멤버는 고 서경수(徐景洙)·고 황수영(黃壽永) 지도위원과 함께 이민용(李珉容, 전 영남대 교수)·고 장충식(張忠植, 전 동국대 교수)·필자 등 연구위원이었다. 그는 불교 연구와 신행을 동시에 갖추려고 노력했다.
연구원이 이룬 학술적 업적은 『한국의 사찰』(22권), 10회에 걸친 세계불교학술회의 개최, 『불교연구』 발간를 비롯해 인도의 티베트하우스(Tibet House)와 중국의 북경대학, 미국의 UCLA 버클리 등과의 정기적 교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불교 신행을 굳건히 하려는 원력은 구도회(求道會)로 대변된다.
그는 또한 1994년부터 2년 동안 고은(高銀)과 함께 ‘재가불교회의’의 공동 대표로 활동했다. 특히 1995년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추진위원장으로서 경주 지역의 문화 보존 운동에 앞장서왔다.
원효를 사모한 불연은 경주를 끔찍하게 아끼고 좋아했다. 영남대 재직 시절에 나는 그분을 모시고 경주 남산의 불교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 두 달 동안 경주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그때만 해도 경주 남산은 버려진 땅이었고, 고 윤경렬 선생 정도가 관심을 가졌던 불모의 땅이었다. 우리는 남산의 계곡을 샅샅이 누비고, 꼼꼼히 실측했다. 그리고 경주 남산의 불적이라는 지도를 완성했고, 그 연구물은 『신라의 폐사(廢寺)』 Ⅰ, Ⅱ 로 출간했다. 이 남산 지도는 조선총독부에서 나온 불완전한 지도 이후 50여 년 만에 완성된 것이었다.
불연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16편의 영어 논문, 4편의 일본어 논문, 2편의 중국어 논문을 상재(上宰)했다. 그 가운데 대표 논문으로 「화엄철학과 보살윤리(Hwa-Yen Philosophy and Bodhisattva Ethics)」, 「평화와 조화를 위한 한국 불교의 이상(Ideal of korean Buddhism: Peace and Harmony)」, 「한국적 사유의 일 전형(典型), 종교관에 관하여」 등을 꼽을 수 있다.
원효 연구를 시작한 그의 불교 연구는 한국 불교 세계화의 이상을 달성하려는 원력으로 발전한다. 그가 간 지 20여 년, 아직까지 세계의 불교는 일본과 중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여전히 한국 불교는 세계의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려면 어떤 연구와 실천이 필요할까?
우선 한국 불교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선양하는 일이 필요하다. 영어로 쓰인 한국 불교 학술서가 보다 많이 읽혀져야 한다. 숭산 행원 스님 이후에는 한국 불교를 선양하는 선구자 또한 사라져가고 있다. 다음으로는 한국 불교의 장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그 노력들이 선(禪) 연구에만 집중되어 있다. 내가 목 터지게 외쳐왔던 해외 사찰에 대한 지원은 10년이 넘도록 전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주를 중심으로 한국 불교 포교당을 한국 불교 선양의 전초로 삼아야 한다. 그 사찰들을 통해 『한국 불교의 위인들(The Great Masters of KoreanBuddhism)』, 『한국의 불교문화(Buddhist Culture of Korea)』, 『한국 승려들의 일상생활(The Daily Life of Korean Buddhist Monks)』 등을 영문으로 출판해 배포(혹은 판매)해야 한다. 다음으로 현지인들을 위한 법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해외 사찰들의 본사를 지정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또 미국의 대학에 한국불교학과를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들이 진정한 불사(佛事)다. 개금(改金)하고 원불(願佛) 모시고 기와 불사하는 일보다 ‘살아 있는 부처님’을 모시는 백년대계가 될 수 있다.
불연은 한국 불교가 ‘선교 융합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미 수행 정신이 살아 있는 고무적인 전통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은 앞으로 한국 불교 세계화를 향한 밑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불연이 한국 불교의 지성화와 생활화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한국 불교의 세계화’라는 불연의 꿈을 현실화하는 일이다.
현대 한국 불교를 논할 때 불연은 언제나 그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재가 불교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결코 재가만의 교단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가자들의 부족함을 채우는 역할 분담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이기영 교수는 1996년 동국대 중강당에서 세계불교학술회의의 기조 강연을 마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그 중강당 계단과 그분의 체온을 영원히 잊지 못할 듯하다.

정병조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졸업 및 영남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 네루(Nuhru) 대학 교수 및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사)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 동국대 부총장, 불교학 연구회 회장, 금강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방송(BBS)』 라디오 프로그램 <무명을 밝히고>를 진행했다. 현재는 동국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도철학사상사』, 『불교문화사론』, 『한국불교철학의 어제와 오늘』 ,『불교강좌』, 『반야심경의 세계』, 『현대인의 불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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