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불교 | 최인호의 구도 소설 『길 없는 길__송인자

최인호의 구도 소설 

『길 없는 길』

송인자 소설가

최인호는 경허 선사가 머물렀던 사찰들을 구름처럼 떠돌며
2,6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온 한국 불교의 전통을 소설로 복원했다.

 

2013년 9월 25일 위대한 이야기꾼 최인호 작가가 별세했다. 그가 남긴 장편 소설은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왕도의 비밀』, 『제왕의 문』, 『상도』, 『해신』,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작가는 다양한 기록의 보유자이다. 고교 시절 신문사 신춘문예의 최연소 당선자가 되었으며 스물일곱 되던 1972년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해 최연소신문 연재 소설가로 기록되었다. 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또한 그는 영화화된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적도의 꽃』, 『고래사냥』,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여자』 등 흥행에 성공한 작품만도 20편이 넘는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인호의 작품은 낭만 소설, 역사 소설, 도시적 감수성이 짙은 현대 소설 등 세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최인호의 유일한 불교 소설인 『길 없는 길』은 역사 소설에 속한다. 조선시대 실존 인물인 한국 불교의 거봉, 경허(鏡虛)를 주인공으로1989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이다.작가는 1980년대 말, 영적 목마름으로 수도자나 스님이 되어 구도의 길을 걷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경허의 선시 하나가 그의 머리를 두들겼다.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다. ’최인호는 충격에 빠져 경허가 머물렀던 사찰들을 구름처럼 떠돌았다. 1년 후 『중앙일보』로부터 연재소설 집필을 권유받자 그동안 본인이 느꼈던 불교에 관한 놀라운 충격을 현대인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는 구한말 경허 선사와 만공(滿空) 선사를 축으로 2,6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온 한국 불교의 전통을 소설로 복원했다. 부처님의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운 행보는 인간의 본성을 찾고자 하는 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내가 곧 부처’라는 명제야말로 팔만대장경을 단숨에 불태워버릴 수 있는 진리의 불쏘시개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부처님 말씀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선승들에 대한 다양한 일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어떻게 도를 깨우치고 어떤 생활을 했으며, 대승의 길이 어떤 길인지 보여준다. 거문고라는 매개물을 통해 경허의 삶으로 들어가는 이 작품은 소설 내용 대부분이 불교 교리로 되어 있는 까닭에 생경한 불교 용어가 문면에 노출되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주인공 강빈은 해직 대학교수인데, 고종 둘째 아들 의친왕과 기생 사이의 사생아이다. 그는 왕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각으로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강빈은 어린 시절 늙은 부친으로부터 염주를 받는다. 염주에는 염주의 주인인 ‘만공월면’과 ‘경허성우’라는 법호가 새겨져 있었다. 만공 스님과 의 친왕은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은 사이로 의친왕은 700년 된 궁중의 보물 거문고를, 만공 스님은 염주를 신표로 주고받았다. 거문고를 친견하기 위해 수덕사를 찾은 강빈의 내면을 꿰뚫어본 법명 스님은 경허의 화두를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경허는 아홉 살 때에 청계사 계허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사미승이 된 분이다. 우리나라 선종은 조선시대 서산 대사 이후 그 법맥이 끊겨버렸다. 이후 200년 동안 단 한 명의 눈 밝은 부처도 탄생하지 못했다. 깨달음을 얻은 이가 없었기에 경허에게는 스승도 제자도 없었다. 그는 1879년 계룡산 동학사에서 넉 달간 방문을 닫아걸고 정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학사 아랫마을에 살고 있던 처사가 던진 한마디가 화두 한복판을 꿰뚫는다.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 순간 경허는 옛 부처들과 조사들이 남긴 1,700가지 공안들이 확연히 풀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스승도 없는 31세 젊은 스님 하나가 마침내 도를 깨치고 부처가
되어 닫혀 있던 문을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춘다. 이때의 모습을 한용운은 이렇게 표현했다.

“순간 경허 스님에게는 대지가 둘러빠지고 물건과 내가 함께 공(空)하며 백만 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풀리듯 하였다. 경허는 자신이 진리를 구한다
하면서 줄곧 진리의 코에 고삐 구멍을 뚫으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번개처럼 느꼈을
것이다.”

경허는 1880년 동학사를 떠나 형과 어머니가 계시는 서산의 천장암으로 가서 보임 생활에 들어간다. 보임은 자신의 깨달음을 지켜나가는 것을 말한다. 깨닫는 것보다 이것을 지켜나가는 보임 생활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경허는 천장암에 이르자마자 누비옷을 입고 쪽방에 들어앉은 채 살아 있는 등신불이 되어버린다. 천장암에서의 보임은 모든 감각을 죽이고 암자에 내걸린 ‘염궁문’처럼 생각을 화살로 만들어 문을 향해 쏘아 날려버리는 처절한 수행을 한다. 면벽 정진하는 동안 몸을 씻지 않고 솜으로 누빈 누더기 한 벌만 입은 채 한여름을 보냈으므로 온몸과 머리에는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이가 들끓었다. 그는 마침내 1년 3개월의 면벽 수도를 마치고 문을 박차고 나온다. 보임 생활을 마친 경허는 어머니 박 씨의 간청으로 법회를 연다. 소문을 들은 불자들이 모여든 법회에서 경허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한다. “오줌이 마렵습니다. 어머니, 오줌 좀 뉘어주세요.”
어머니를 비롯한 사람들은 대경실색해 도망친다. “나를 변함없이 어린 아들로 보았다면 화날 일이 무엇이고 부끄러울 일이 무엇이냐. 아아, 아들을 아들로 보지 못하고 형상으로만 보는구나.” 경허는 탄식하며 법당을 내려왔다. 경허가 도를 깨쳤다는 소문은 퍼져나가 50세 무렵까지 천장암을 중심으로 호서지방에서 선풍을 떨치게 된다. 그는 사찰을 돌아다니며 시주를 목적으로 염불에만 매달려 있는 승려들을 꾸짖고 때리고 고함치고 때로는 종을 부수고, 북을 찢어버리는 난폭한 행동을 보이며 수행을 권한다. 그 외에도 경허는 파계승이라 할만큼 많은 일화를 남긴다.
경허는 1899년 해인사로부터 조실로 초대받고 호서지방을 떠나 영남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부터 5년간 영남과 호남 일대의 사찰을 두루 돌며 이름을 떨친다. 1904년 월정사를 떠난 경허는 금강산을 거처 석왕사에 도착한 후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그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경허는 말년에 이르러 승려의 직분도 버리고
늙고 병든 저잣거리의 중생으로 돌아간다. 부처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부처에 머물러 있음은 부처에 얽매여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효 대사처럼. 경허에게는 수월, 혜월, 만공이라는 세 제자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는 『경허집』은 만공이 편찬했다. 『길 없는 길』은 만공이 스승 경허를 기리며 쓴
‘경허법사영찬’으로 대단원을 내린다.

‘빈 거울에는 본래 거울이 없고 깨친 소는 일찍이 소가 아니다(鏡虛 本無鏡 惺牛曾非牛). 거
울도 없고 소도 아닌 곳곳 길머리에 살아 있는 눈 자유로운 술 더불어 색이로다(非無處處
路 活眼酒興色).’

가톨릭 신자인 최인호는 이 소설에서 특정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수년간 불교 교리와 많은 선사들의 일화를 조사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작가는 부처님과 한없이 매력적인 경허라는 두 사람에게 피붙이 같은 친근감을 느껴 연재하는 동안 무척 행복했다고 고백했다.『길 없는 길』은 소설적 재미도 추구하면서 종교적 감동도 놓치지 않은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송인자 『월간문학』에 소설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총무,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
집으로 『사람 뒈지게 패주고 싶던 날』,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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