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 |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벗어나는 길 『마음을 치료하는 법』 외__ 정여울

1.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벗어나는 길 『마음을 치료하는 법』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자기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는사람들,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인간의 변화를 믿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남이 알아서 변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는 절대 변화가 불가능하다. 자기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날마다 분투하는 사람들만이 눈부신 변화의 주인공이될 수 있다. 마음이 나빠지고, 영혼이 타락하고, 나쁜 습관이 몸에 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이미 나빠져버린 마음을 더 나은 곳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바꾸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마음을 치료하는 법』은 상처 입은 마음 때문에, 비뚤어진 심리 때문에 변화를두려워하고 진정한 성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로리 고틀립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심리 치료사다. 그녀는 자신이 손대는 모든 분야에서 인정받은 유능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환자의 아픔을 치료해야 할 자신의 마음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어줄 또하나의 심리 치료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심리 치료사야말로 자신의 정신건강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환자들에게 최고의 컨디션으로 다가갈 수가 있다 .치유자가 또 다른 치유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는 물론 환자들의 상처 전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혜안이 살아난다. “부모를 가장 잘 표현한 건 시인인 필립 라킨이다. ‘그들은 당신을 망친다, 당신의 엄마와 아빠가 / 그럴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그러고 만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부모 자식 간의 트라우마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환자를 바라볼 때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환자들을 보면 인간적으로 화가 나기도 하는 심리 치료사의 솔직한 고백에 너털웃음이 터지기도 한다.“존은 자기애성 장애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또한 그냥 (…) 존이다. 오만하기도 하고, 임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빌리자면 놀랍도록 우라지게 짜증나는 인간.”

저자는 심리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즉 ‘남이 변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핵심에 전혀 다가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심리 치료를 시작한다. ‘내 남편은 왜 이러는 걸까요?’ 상담을 할 때
마다 우리는 호기심의 씨앗을 뿌리는데, 자신에게 호기심이 없는 사람한테는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을 당연하고도 바꿀 수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변화의 필연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변화의 모험 자체를 시작할 수 없다.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말썽꾸러기’, 즉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그 문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항상 문제투성이’인 상황에 중독되어 변화를 바라지 않을 때가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가족들이무의식적으로 그의 회복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서는 누군가 말썽꾼의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기필코 변화하지 않으려는 힘’이야말로 마음을 다루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환자들의 ‘저항’이다. “심리 치료의 핵심은 자신의 자아를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던 자신을 지우는 것도 자신을 이해하는 일의 일부다. 스스로를 가둬왔던 스토리를
지워서 더 이상 그것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자신의 인생이라고 내내 말해왔던 그스토리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의이야기,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의 이야기’라고 믿었던 이야기들로부터 해방되는 것.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나, 내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를
변신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심리 치료의 변치 않는 매혹이다

 

2.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신화의 매혹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옛이야기의 매력은 영원하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력은 그 모든 이야기들이 의존하는 이야기, 그 모든이야기들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잉여, 이성과 비이성의 틈새에 ‘신화’라는 ‘사이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과론에 매혹되는 인간, 인과론 없이는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에게 신화는 인과의 잉여, 인과의 외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영웅 서사가 유행하고 게임의 제목들도 하나같이 신화의 캐릭터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충분히 신화적 역동성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삶은 고여 있지만 신화는 역동적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백조로도 황소로도 황금 빗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제우스처럼, 끝없는 변신의 에너지로 가득한 삶의 눈부신 역동성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신화를 믿지 않으면서도 끝없이 신화적 아이콘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인류의 무의식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는 신화가 끝난(것처럼 보이는) 지금 – 여기에서 신화를 끝없이 복제하는 신화의 흔적기관이다. 미디어는 오래된 신화를 현재의 삶 속에서 복제하는 무한한 시뮬라크르의 제공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종 고유명사 뒤에 ‘신화’라는 레테르를 붙여가며 죽은 신화 위에 새로운 신화를 피워 올리고 싶어 한다. ‘신화? 그게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는 현대인들에게 신화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대답할 것이다. ‘신화? 그것은 너희들이 매일매일 소비하는 이미지가 아니냐’고. 제우스, 아폴론, 헤르메스, 아프로디테, 에로스 등등의 신화적 인물들을 검색해보면 신화의 원전이 아니라 무수한 관련 상품 이미지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다. 신화의 성명학은 신화를 끊임없이 영원회귀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드러낸다. 신화는 끊임없이 상품의 이미지속에서 미디어의 주인공들 속에서 갖가지 신화소로 흩어져 있다. 우리는 신화를 모른다. 아니 모른 척한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신화를 불러낸다. 신화가 잠들만 하면 또다시 불러 깨워 신화의 주술을 이용한다. 미디어를통해 21세기의 헤르메스를 찾는 것은 곧 신화 속에서 사랑의 윤리를 찾는 것과동일하다. 사랑이야말로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존재를 이어주는 무형의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아무런 특이성을 갖지 않으면서 그것과 연루된 모든 존재를 바꿔놓는 기적의 헤르메스. 사랑. 그것이야말로, 도저히 섞일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를 잇는 영혼의 헤르메스이며 메신저다. 사랑은 모든 경계를 허무는 메신저이며 세속적인 인간이 천상의 가치와 접신할 수 있는 유일한미디어가 아닐까.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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