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대구 도동서원__문상원

道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대구 도동서원(道東書院)

문상원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전통 건축을 답사하는 일은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보다 먼저 있었던 분들의 삶을 반추하고 그들의 지혜를 엿보며, 다시 스스로를 돌아봄으로 지금 서 있는 이곳과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여행이라기보다 나에게로 돌아오는(回歸) 마음의 여정입니다.

그러한 답사 여행 중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사찰(寺刹)이 으 뜸이지만 향교(鄕校), 서원(書院), 고택(古宅), 정자(亭子), 옛 마을로의 걸음은 또 다른 삶의 자취를 통해 더 다양한 삶과 공간(空間)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소백산맥 조령(鳥嶺) 아래 영남(嶺南) 낙동강을 따라 도동서원(道東書院)으 로 길을 떠납니다.

유림(儒林)의 고장 현풍IC을 빠져나와 도동리(道東里) 표지판으로 들어서면 낙동 강변 둑방길과 오월이면 황금빛 보리밭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깁니다.

정겨운 시골길의 정취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다람재길과 도동서원로의 표지판 이 있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가다 보면 유네스코 세계 유산 지정 기념으로 시원하게 뚫린 터널로 안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동서원 으로의 옛길인 다람재길로 방향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왕복 1차선인 좁은 길을 다람쥐가 재를 넘듯 아슬아슬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이곳 고갯마루에서만 볼수 있는 그림 같은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 문입니다.

멀리 강원도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안동(安東)의 도산서원(陶山書院),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지나 하회(河回)마을을 휘감고 여러 마을을 거쳐 이곳까지 달려와 도동리 옛 마을을 품은 듯 감싸 안은 장관을 까맣고 어둡기만한 터널 안 풍경과 바꿀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니산(戴尼山)을 뒤로하고 앞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 앉음(坐向)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여러 생각에 잠깁니다.

길도 욕심을 부리면 곧게 달려 수월하겠지만 욕심을 버리면 구불구불 느리나

더 많은 것들과 함께할 수 있음은 많은 사연을 품고 천천히 구비구비 내려오는 강물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차장에 내리면 서원보다 먼저 400년 세월의 은행나무를 만납니다.

그 옛날 공자(孔子)가 은행나무 아래 단(壇)을 만들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 (故事)에서 유래되어 ‘학문을 배워 익히는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해 유교와 은행 나무는 마치 소나무가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듯, 서원이나 향교의 상징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쇠목발을 짚고, 이곳저곳 다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인공의 재료로 새살을 대신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쓰이지만 긴 세월을 지 켜주어 고맙고 대견한 마음입니다.

16세기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간 사학 (私學) 기관인 서원은 교육 공간인 강당과 원생들의 기숙사, 선현을 제사 지내는 사당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교육 공간과 사당 공간의 배치 순서에 따라 전학후묘(前學後廟) 혹은 전묘후학(前廟後學)으로 나뉠 뿐 누각, 강당, 사당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강당 앞마당 좌우로 기 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배치하는 기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 도동서원은 전학후묘의 배치로 수월루(水月樓), 환주문(喚主門), 중정당(中正堂), 내삼문(內三門), 사당(祠堂)을 동북향(東北向)의 축(軸)으로 해 산자락의 비탈면에 직선으로 배치하고 강당인 중정당의 좌우로 거인재(居仁齊), 거의재(居義齊)가 동재, 서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서원의 진입부인 앞마당에서 김굉필 선생을 모시는 사당까지 자연 석으로 쌓은 석축이 연속해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가파르게 각각의 공간을 연 결하고 있습니다.

‘물(水) 위의 달빛(月)으로 글을 읽는다’는 세상 낭만적인 이름의 수월루 하부를 통해 누하진입(樓下進入)으로 들어서면 기와 흙담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이고 경사

진 화단(花階)을 만나고 주 공간인 교육 공간으로 가는 좁고 좀 더 불편한 돌계단과 함께 작지만 정교한 환주문을 맞이합니다.

‘내 마음의 주인(主)이 되는 근본을 찾아 부른다(喚)’는 의미만큼 몸과 마음을 낮추어 배움에 임하라는 암묵적인 가르침을 ‘그 옛날 건축가’의 손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환주문의 액자 같은 프레임을 통해 중정당(中正堂)의 현판과 마당에 깔린 자연석의 안내대로 머리 숙여 오르면 좌우의 동재, 서재를 품은 안마당에 다다릅니다.

높직하게 중정당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 석축은 돌의 크기도 빛깔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재료임에도 가장 아름다운 석축으로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어떤 이는 ‘돌의 미학’이라 하기도 하고 ‘장식미의 극치’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선생은 ‘아름다운 조각보를 보는 듯하다’라는 말로 간결하게 이야기합니다.

이곳에서 한동안 머무릅니다.

때론 수염을 기르고 곰방대를 든 엄한 선생이 되어보기도 하고, 댕기머리 주근깨 꿍꿍이 가득한 유생이 되기도 하면서 이곳저곳 거닐며 마루에 걸터앉아봅니다.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21세기 우리들의 교육 공간을 떠

올리면서 환경(環境)이, 공간(空間)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중정당의 뒤로 돌아 사당으로 가면 경사를 활용한 화계와 내삼문으로 오르는 더 겸손해야 하는 계단을 오르고 우리의 영역은 여기까지이기에 조심스럽게 담너머로 예를 갖추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이 밖에도 디테일한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는 이곳은 보물로 지정된 기와 흙담장을 포함해 석축과 계단, 바닥에 예쁘게 조각된 돌조각과 문양 등을 마치 보물찾기하듯 시간을 보내며 내려오는 즐거움이 빠질 수 없습니다.

서원을 나와 오늘은 제일강산정(第一江山亭) 또는 이노정(二老亭)이라 불리는 곳으로 마지막 걸음을 합니다.

다람재에서의 시작이 오늘 답사의 프롤로그 역할이었다면 에필로그는 이곳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서입니다.

강물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원의 주인공인 대유학자 김굉필과 정여창이 사화(士禍)로 인해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과 벗하며 보냈다는 곳입니다.

도동서원과는 반대로 낙동강을 서향(西向)으로 자리 앉은 이곳에서 강변 노을을 바라보며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는 도동(道東)의 이름을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보고도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모르는 저로서는 또 하나의 숙제만 늘어난 듯했습니다.

산세(山勢)를 거스리지 않고 강물과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흐르는 길(道)도 자신도 힘들지만 몸의 일부를 내주어 매년 가을이면 빠짐없이 노란 카펫을 선물해 우리를 맞아주는 은행나무도 색깔도 모양도 다르지만 욕심 없이 주거니 받거니 양보하고 나누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조각보 석축의 모습에서도 우리가 함께 지녀야 할 도(道)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백 년 전 두 늙은이(二老)가 바라보았을 이 석양을 언젠가 당신과 이곳에서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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