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복지국가와 빈곤 문화__전상인

복지국가와 빈곤 문화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들어가며

불평등은 인간 세상의 ‘영원한’ 숙제다. 원시시대 이후 이른바 ‘문명사회’의 출 현과 더불어 시작된 구조적 불평등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현 저히 줄어들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다. 평등 사회란 어쩌면 인류 사회의 ‘영원한’ 이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회적 불평등이 백해무익한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똑같기를 바라는 평등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활력을 약 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은 다양하다. 전근대 사회의 경우 그것은 혈통이 나 종교, 성별, 지역 등 대부분 신분(status)의 차이에 기인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촉발한 근대 사회는 역사상 최초로 법적·신분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유인이 되는 평등한 사회를 출범시켰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기회 균 등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적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중

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번에는 계급(class) 불평등이었고, 이는 소득과 자산 등 부(富)의 격차가 초래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의 핵심은 빈곤의 문제다.

물론 빈곤은 개인의 팔자나 능력 탓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빈곤이 사회문제라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우선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외면하기 어렵다. 또한 아무리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 다”고 해도 “국민을 굶기는 정부는 통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문명 국가의 규범이 다. 국가나 사회가 불평등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는 것은 결코 이타심(利他心)의 발로만 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 및 재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탄생과 논리적 근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이다. 이에 복지 국가는 전통 사회의 긴급 대응형 구빈(救貧) 정책을 넘어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제 도적으로 새로 창안한 통치술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최저생활보장 및 행 복을 원하는 노동자 계급으로부터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배 세력이 선제적으로 만든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영국의 보수당 정권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복지국가(welfare state)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에는 독일의 나치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대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

물론 복지국가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사회보장이 시민권으로 확 립되는 것은 1920년대 대공황을 맞이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맞서는 케인스 경 제학이 수용되면서부터였다. 말하자면 자유방임 대신 국가의 거시경제적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특히 복지국가의 이론적 근거는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왔던 미국에서 확립되었다. 범세계적인 ‘68혁 명’과 미국 내 ‘빈곤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존 롤스(John Rawls)가 썼던 『정의 론(A Theory of Justice)』이 그 결정적 계기였다.

롤스는 자유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지상주의가 아닌 평등 지향의 자유주 의를 추구했다. 그는 사회정의를 공정(fairness)의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만약 기회 와 과정이 공정하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결과적으로 생겨나는 불평등은 기 꺼이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곧 국가가 기회와 과정을 공정 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일정 부분 침해되는 것에 대해, 무릇 ‘합리적’ 인간이라면 ‘자발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 논리다. 자유 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에게 보상과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복지국가의 철학적 근거가 완성된 것이다.

빈곤, 구조적 요인인가 문화적 이유인가?

20세기 후반 복지국가는 근대 국가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과도한 복지에 대한 시장주의의 줄기찬 반격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오늘날에도 그 위세가 멈출 줄 모른다. 한편으로 이는 계층 양극화의 심화 때문이다. “19세기가 노예해방, 20세기 가 보편적 선거권 도입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기본 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벨기에의 정치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의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인기 영합주의, 곧 포퓰리즘의 득세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복지 포퓰리즘에 중독되어가고 있다. 복지 증대 를 말하지 않고는 시나브로 권력을 잡을 수도, 지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유일 한 정답 혹은 최선의 해답일까? 빈곤에 대한 기존의 설명 대부분은 문화적 측면 보다 제도나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영국의 여성 칼럼니스 트 폴리 토인비(Polly Toynbee)가 여러 가지 저소득층 직업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 쓴 탐사 보고서 『거세된 희망』에 따르면 빈곤 계층의 삶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사회구 조 때문이다. 한국의 사회학자 조은 교수가 쓴 『사당동 더하기 25』는 한 가난한 가 족의 이야기를 25년 동안 추적한 연구 보고서인데, 저자는 가난의 책임을 분단 체

제, 자본주의, 도시재개발, IMF 경제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에게 돌린다.

조은 교수가 특히 거부하는 것은 이른바 ‘빈곤 문화(culture of poverty)’의 존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조 교수는 미국의 인류학자 오스 카 루이스(Oscar Lewis)가 1951년에 출간한 『산체스네 아이들』을 비판한다. 루이스 는 멕시코시티 교외 테포스틀란 빈민가를 심층 분석하는 과정에서 빈곤을 조장 하는 그곳 특유의 하위문화를 발견했다. 폭력성, 역사의식 결여, 미래에 대한 계 획 부재, 낮은 동기부여, 약한 직업윤리, 약물 및 알코올 의존, 혼전 동거, 성문란, 도박, 의존심리, 불평, 원망, ‘사내다움’의 숭배, 가부장적 사고, 찰나주의 등 빈곤 문화는 종류만 해도 50개가 넘었다. 요컨대 빈곤 문화가 빈곤 세습의 핵심 원인 이라는 주장이었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 항의까지 받은 루이스의 빈곤 문화론은 당시 격렬한 학문

적 및 정치적 논쟁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책 입안가나 사회과학자들이 빈곤의 구조적 요인에 방점을 찍는 경향은 그때 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복지국가론 역시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삼고 있 다. 그러므로 빈곤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듯한 빈곤 문화론을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빈곤과 관련해 세 상이나 제도적 요인이 아닌, 개인 탓이나 문화적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일까?

불교와 빈곤 문화

불교가 말하는 빈곤의 원인은 구조적인 것이 아니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잡 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가르침에 따르면 그렇다. 어떤 사람이 성인, 곧 석가모 니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고 한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돌아온 대답은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였다. 그는 재차 물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입니 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라고.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렇지 않으니라. 아무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재칠시(無財七施)’, 곧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 곱 가지 보시의 가르침이다. 이는 부드러운 눈빛을 드러내는 안시(眼施), 환한 얼 굴을 뜻하는 화안시(和顔施), 좋은 말에 해당되는 언시(言施), 예의 있는 행동을 말 하는 신시(身施),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는 심시(心施),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 (座施),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찰시(察施) 등을 말한다.

부처는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것 스무 개 가운데 으뜸으로서 가난한 사람이 남에게 베풀기를 꼽았다. 빈곤은 세상 탓이 아니라 남 에게 베푸는 마음이 없어서 생겨난다는 취지다. 사실 이런 가르침은 예수의 경우 에도 마찬가지다. 『마태오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마

태오 효과(Mattew Effect)’라고 부르며 빈익빈 부익부 혹은 누적우위(累積優位)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학문이 아닌 종교적 차원으로 볼 때 이 메시지는 사 회의 구조가 아닌 개인의 마음에 대한 분석이다. 곧 없는 자가 베풀지 않을 경우 지금보다 더 가난해진다는 경고다. 이 점에서는 예수와 부처는 같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구조적 접근과 정책적 노력은 물론 지속되어야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은 양극화 시대에는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적 설계만으로 빈곤 문제를 완치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론은 빈곤 문화 론에 의해 보완될 때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없는 자’들은 복지를 당연 한 권리로 인식하기보다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진 자’들을 향해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없는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남을 위해 베풀어 야 한다. 이럴 때 ‘가진 자’들은 자신의 몫을 ‘뺏긴다’는 생각 대신 보다 기쁜 마음 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임할 것이다. 그 결과 ‘없는 자’들은 지 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회의 선순환 구조다. 복지국가가 빈곤을 해소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결코 폄훼할 수 없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역설적 결과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 사이에 빈곤 문화 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복지국가를 숭배하는 가운데 포퓰리즘이 대세로 되어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시나브로 빈곤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 부자에 대한 적개심, ‘가난이 벼슬’이라는 생각, 의존 심리와 의타주의, 피해의식과 공짜 심보가 한국 사 회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선의로 출발한 복지국가가 오히려 빈곤 문 화를 낳고, 이것이 빈곤의 영속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을 위한 씨앗이 되고 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빈곤의 구조 적 이유가 아닌 문화적 요인을 말하는지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전상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 았다.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고개 숙인 수정주의 : 한국 현대사의 역사사회학』, 『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 한국의 주거 사회학』, 『공간으로 세상 읽기 : 집, 터, 길의 인문사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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