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불교에서 보는 행복과 복지__박경준

불교에서 보는

행복과 복지

박경준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불교의 최고선, 열반 혹은 궁극의 행복

해탈과 열반은 불교의 최고선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그것은 고타마 붓다의 출 가 동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 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열반을 얻기 위해 서였다.” 붓다는 이처럼 열반을 얻기 위해서 왕궁을 떠나 6년간 수행한 결과, 12 연기의 진리를 깨달아 마침내 붓다, 즉 ‘깨달은 자’가 된다. 그리하여 모든 고통과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대자유와 불사(不死)를 성취한다. 우리는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서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열반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 교리인 사성제와 12연기의 가르침을 통해서 도 확인할 수 있다. 사성제에서는 우리의 현실 세계를 고성제(苦聖諦)로 규정하고 이상 세계를 멸성제로 설정한다. 멸성제는 말할 것도 없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 리’라는 의미다. 괴로움의 소멸은 결국 열반이다. 따라서 사성제는 열반을 불교의

최고선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2연기의 가르침도 불교의 최고선 이 열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2연기의 환멸문은 노사(老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 가 사라진 상태를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는바, 그것은 결국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열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성제에서는 탐애(貪愛)를 끊고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실천 덕목으로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의 여덟 가지 바른 길, 이른바 팔정도 를 제시한다. 팔정도는 탐욕과 미혹에 바탕한 향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적 인 삶을 경계하고 조화롭고 균형 잡힌 중도적 인생관을 가르친다. 또한 5계 등에 의거해 윤리의식을 고양해 생명 윤리로까지 나아가게 하고, 선정과 지혜에 의한 자기 정화를 통해 삶의 궁극적 가치를 실현케 한다. 한마디로 팔정도의 실천은 우 리를 온전한 자유와 궁극적 행복, 즉 ‘열반’으로 이끈다.

대승불교의 근본 이념, 자리이타

하지만 열반은 불교 안팎에서 종종 생사 저편의 초월적 세계로, 또는 자기 멸각 의 허무주의적 관념으로 곡해되었다. 대승불교 운동을 선도한 『반야경』이 공(空) 의 기치를 내세운 것은 본디 초월적 열반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한 것이었다. 초 월적 열반에 대한 집착이 있는 한, 개인적·소승적 자아 관념은 극복되지 못하고 생사의 현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용수 보살 이 “열반과 세간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차별도 없다”라고 한 이른바 ‘생사 즉 열반’ 의 주장도 초월적 열반의 관념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는 개인주의적 삶을 지양하고 인간과 중생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중 시한 데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깨달음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이것이 곧 대승 보살의 ‘자리이타’행인 것이다.

삼라만상 일체만유의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에 대한 대승불교의 인식은 인드 라망의 비유 속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드라망은 제석천의 궁전을 장엄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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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써 그 모든 그물코에는 보배 구슬이 박혀 있다. 그런데 이 보배 구슬들은 서 로가 서로를 비추며 장관을 이룬다. 하나의 구슬에는 다른 모든 구슬의 그림자가 비치고 다른 모든 구슬 하나하나에도 역시 또 다른 모든 구슬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의 보배 구슬에 비치는 다른 모든 구슬 속에는 각각의 구슬에 비친 또 다른 모든 구슬의 그림자까지도 되비치게 되어 더욱 장관을 이룰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 만유는 중중무진하게 상호 융합하고 상호 침투한다[相卽相入]. 만물은 상호 융합하고 상호 침투하므로 어떠한 걸림도 없다. 그리하여 한 먼 지 티끌 속에 수미산이 용납되고 한 털구멍 속에 대해(大海)가 용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즉상입의 연기사상은 대자대비의 이념을 꽃피운다. 자비와 동체대비 의 이념은 불교 경전 도처에서 발견된다. 『유마경』은 “내 병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일체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고 있습니다. 만약 중생의 병 이 없어지면 나의 병도 곧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설하고, 『범망경』은 “모든 남자 는 다 나의 아버지이고 모든 여자는 다 나의 어머니이니, 내가 태어날 적마다 그 들을 의지하여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도의 중생들이 다 나의 부모이 니라”라고 설하고 있다. 『지장경』에서 지장보살은 “미래제가 다하도록 헤아릴 수 없는 겁에 저 6도의 죄고(罪苦)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방편을 베풀어 다 해탈하게 한 후에야 제가 비로소 불도를 이루오리다”라고 서원한다. 이것이 바로 지옥 중생 까지도 모두 구제한 후에라야 스스로 성불하겠다고 하는 지장보살의 대자대비의 서원인 것이다.

이러한 자비사상은 여러 경전에서 더욱 구체적인 실천행으로 연결된다. 예컨 대 승만 부인의 10대 서원 가운데 여섯째는 “저 자신을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지 않고 가난하고 외로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만 모으겠습니다”라는 것이고, 여덟째는 “외로워 의지할 데가 없거나 구금을 당했거나 병을 앓거나 여러 고난을 만난 중생들을 보게 되면, 그들을 도와 편안하게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

대승불교는 개인주의적 삶을 지양하고 인간과 중생의

상호 의존적 ‘관계’를 중시한 데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깨달음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이것이 곧 대승 보살의 ‘자리이타’행이다.

에야 떠나겠습니다”라는 서원이다. 또한 약사여래의 12대원 중에는, 신체장애자 를 돕고, 배고픈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며, 춥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옷을 제 공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채롭다.

이러한 경전의 자비행은 오늘날 불교 복지 사업의 내용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 어 보인다.

불교 복지의 방향

위와 같이 불교는 그 근본 교의와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 복지 이념을 매우 중 요시하고 있다. 물론 불교 복지의 개념은 절대적인 불변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사회적·역사적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불교 복지의 미래지향적인 기본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원 칙을 제시해본다.

첫째, 불교 교단은 개인적인 수행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에 봉 사하고 대중을 구제해야 한다. 월폴라 라훌라 스님은 다음과 같이 불교 승가의 사 회적 역할과 의무를 강조한다. “승단을 조직한 이유는, 자신의 정신적·지적 발전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봉사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 역사 속에서 사원이 정신적 삶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둘째, 『전륜성왕 수행경』을 비롯한 초기 경전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 사회의 이념에는 자유, 평등, 평화, 정의, 풍요, 도덕, 질서, 법치, 민 주, 복지 등의 이상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불교적 이상 사 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인 동시에,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성숙과 정신적 대자유[열반]를 통한 인 격적 완성을 이룬 사회라고 정의할 만하다. 결국 정신적인 충족과 물질적인 충족 의 두 가지 기본 원리가 불교적 이상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피야세 나 딧사나야케).

셋째, 불교의 가르침에는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이념이 공존한다. 보 편적 복지 이념은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 있 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라는 숫타니파타의 가르침 속에 압축적 으로 드러난다. 반면에 ‘선택적 복지’의 이념은 무엇보다도 『선생경』 가운데 “재 물을 사용함에 사치스러워서는 안 되며, 분수에 맞도록 올바른 대상을 선택해서 주어야 한다. 속이거나 강요하는 자에게는 차라리 걸식(乞食)하게 할지언정 재물 을 주지 말라”라는 가르침 속에 잘 나타난다. 여기서는 개인적 보시의 수혜 대상 을 도덕적 기준에 의해 선택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국가적 분배의 경우에도 적 용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넷째, 불교는 사람들의 물질적 충족과 정신적 충족을 똑같이 중시한다. 정신적 충족이란 곧 열반의 성취를 의미하며 이것은 오늘날 사회복지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영성 복지’ 개념과 유사하다. 이제 불교적 복지에도 켄 윌버(Ken Wilber)가 주 장하는 ‘통합 비전’ 또는 ‘모든 것의 이론’이 필요하다. 궁극적 실재는 그냥 우주 혹은 물질의 차원이 아니라 온 우주(kosmos), 즉 물질적·감정적·정신적·영적 차원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불교는 윤리적 동기론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결과론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관념론으로 흐르기 쉬운 동기론적 사고는 특히 사회적 실천 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반면, 결과론적 사고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회 복지적 실천을 촉발할 수 있다. 동기만이 선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낳는 행위도 선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보다 효율적으로 여러 현실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불교 복지는 단순한 자선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고통을 영속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적 모순과 맞닥뜨려야만 오늘의 역사적 도전을 슬기롭게 극 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박경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철학박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를 지냈으 며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장과 중앙도서관장을 비롯해 불교학연구회장, 『불교평론』 편 집위원장, 『불교방송』 시청자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불교학의 사회화 이론과 실제』, 『불교사회경제 사상』, 『아시아의 참여불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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