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과 불교 이야기|고대 자연철학자들의 사상 ②__박찬국

탈레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양 철학의 시조로 인정받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에 대해서 물었고 그것을 물에서 찾았다. 그런데 탈레스가 생각한 물은 어떤 물이었을까?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탈레스의 사상은 유물론의 일종으로 보인다. 유물론이란 오직 물질만이 존재하며 물질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생명이나 정신도 결국은 물질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을 가리킨다. 유물론은 생명을 물질들의 복합체일 뿐이며 정신 역시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인 작용일 뿐이라고 본다. 탈레스의 사상도 생명과 인간의 정신도 결국은 이러한 물질로서의 물에서 비롯되고 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탈레스는 ‘세계는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도 남겼다. 여기서 신들이라는 단어는 영혼들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말과 세계는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 말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세계가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물에서 생겨난 사물들 외에 물과는 상관없이 원래부터 존재하는 신들이 세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일까?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 그 말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면 신들도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들이 물에서 생겨난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두 말을 모순되지 않게 그리고 납득할 수 있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탈레스가 말하는 물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을 때,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대지를 둘러싸고 흐르는 거대한 바다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바다를 의인화한 신인 오케아노스가 아내 테티스와 함께 세상의 모든 바다와 강, 연못과 호수를 낳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 탈레스가 염두에 두었던 물은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물질로서의 물이라기보다는 신적인 성격을 갖는 물로서 해석할 수 있다. 이 경우 세계가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 만물은 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2. 그런데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물이 신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나온 만물에도 물이라는 신성이 깃들어 있다.

3. 따라서 세계는 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탈레스는 왜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을까?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추측하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이 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동물의 생명은 정액과 같은 액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탈레스는 이렇게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물에서 탈레스는 일종의 신적인 성격을 보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탈레스는 물에서 어떤 영원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물을 세계의 신적인 근원으로 보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언뜻 보기에 모든 것이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이 세계는 신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적인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항상 물로 존재한다. 그것은 수증기로도 얼음으로도 눈으로도 나타나고, 시냇물이나 강물 혹은 바다로 나타나지만 항상 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말하는 강물과 같은 것이다.

“이 물은 흐르고 흐르며 영원히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다! 그리하여 언제나 같은 물이지만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다!”

이렇게 자신과 영원히 동일하지만 끊임없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물에서 탈레스는 신적인 어떤 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그리

탈레스는 지구 역시 영혼을 갖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바다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구와 지구 내부의 모든 것이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스인들은 도처에서 신과 정령을 보았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러한 신화는 터무니없는 상상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우리도 간혹 숲이나 산을 보면 그것에 어떤 신성한 정기와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는 오히려 자연과 사물들에서 신적인 성격을 제거하려는 사고방식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자연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월든(Walden)』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소로는 아직 환경 위기가 시작되지도 않은 19세기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숲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썼다.

“고대 로마인들이 신성한 숲을 솎아내어 빛을 넣어주려 할 때 느꼈던 외경의 감정을 그 일부만이라도 우리 농부들도 숲을 벌채할 때 느껴주었으면 하고 나는 바라고 있다. 즉 숲은 그 어떤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농부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벌채를 할 때, 속죄의 제물을 바치고 ‘어느 분인지 알 수는 없사오나 이 숲에 계시는 남신이나 여신께옵서는 부디 저와 제 가족, 제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

옵소서’ 운운하며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탈레스의 철학은 신화가 힘을 상실하던 시대에 신화가 갖는 나름대로의 통찰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려고 했다. 그것은 근대의 유물론처럼 신화와 완전하게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가 경험했던 세계의 심오함을 받아들이려 했다.

탈레스는 우주 전체를 영혼을 지닌 유기체로 생각했으며 이러한 우주는 다시 자체적인 영혼을 지닌 작은 유기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탈레스는 지구 역시 영혼을 갖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바다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으며, 지구와 지구 내부의 모든 것이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지구는 바다로부터 물을 흡수하면서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것의 생명을 유지한다. 탈레스의 자연관은 세계를 기계와 같은 것으로 보거나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에너지의 연관 체계로 보는 근현대의 자연관과 전혀 다르다.

탈레스가 물을 신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해서 물을 포세이돈과 같은 인격적인 신으로 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탈레스가 말하는 신적인 것이나 영혼은 생명력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탈레스의 자연철학은 물활론(物活論)이라고도 불린다. 탈레스는 지진과 같은 현상도, 지구가 떠 있는 바다가 흔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포세이돈 같은 신이 분노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언뜻 보기에 서로 모순되는 탈레스의 두 가지 말들, 즉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와 ‘세계는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결합해보려고 했다. 탈레스가 남긴 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탈레스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시도한 해석 외에도 다른 해석들이 가능할 것이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철학 석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서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불교』,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 연구』, 『인간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실존철학의 재조명을 통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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