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불교|조지훈의 시와 불교적 상상력__김관식

조지훈의 시와 불교적 상상력

「범종(梵鍾)」의 시 세계

김관식

시인

조지훈 시인은 불교적인 상상력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것에 애정과 관심을 촉발하는 시 세계를 펼쳐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데 노력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조지훈은 어린 시절 전통 명문 유가 집안의 선비정신으로 일관한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고,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통신강의록으로 공부했다. 상경해 오일도의 시원사에 머무르면서 1939년 『문장』지에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았다.

이 무렵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1941년 졸업한 뒤 오대산 월정사에서 반년간 불교 전문 강원 강사를 하기도 했다. 불교 전문 강원의 강사까지 할 정도의 불경 실력이었으니 그가 추구한 고전의 탐구, 자연, 생명 추구, 민족의 역사 인식, 우주적인 세계관 등의 밑바탕에 불교 의식이 깊이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일하다가 왜경에 검거된 일도 있었고, 해방되자 한글학회 편찬위원, 1946년부터 경기여고 교사로 교직에 몸담아 1948년부터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재직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종군기자를 자원하기도 했다.

그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안목,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쓴 수필 「방우산장기」에서 잘 드러난다. 조지훈의 시 세계를 주제별로 분류한다면, 초기의 고전에 대한 추구에서 민족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민족의식이 드러나고, 중기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존중 의식과 관조, 방황 의식, 후기의 자아에 대한 내면 성찰, 그리고 철학적인 탐색과 무한한 우주 감각 등으로 대별된다.

그의 시 세계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본래 유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였기에 전통을 추구했고 방법론적 측면에서 불교적 상상력을 가미해 선의 시를 썼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추천작인 「고풍 의상」에서는 시간적 배경을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봄밤으로, 공간적 배경을 풍경 소리가 울리는 전통적인 기와집으로 설정했고,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 추는 춤사위에 초점을 맞춘 고전미에 흠뻑 도취된 화자의 경지를 드러낸다. 또 「승무」에서도 춤을 통해 세속적인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해 고전적인 분위기와 세속적 번뇌의 승화를 주제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가 고려시대에는 국교로 지정되면서 불교적 생활 문화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억불숭유 정책을 펼쳤지만, 지금까지도 불교문화가 우리 생활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의 근간을 불교문화가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월정사 방한암 스님과의 만남과 불경 공부, 선방 체험 등이 그의 시 세계에 깊이 스며들었음을 「고사(古寺) 1」, 「고사(古寺) 2」, 「산방」 , 「산」, 「정야(靜夜) 1」, 「정야(靜夜) 2」, 「범종(梵鍾)」 등의 시에서 알 수 있다. 이들 시에서 “선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한곳에 모으고 이를 흩어지지 않게 하여 정적한 것에 정지시켜 이를 전념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 그의 말처럼 선의 방법으로 정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지훈 시인 하면 대부분 「승무」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시보다 더 불교적인 상상력으로 범인들의 내면세계에 울림으로 파고드는 시 「범종」을 소개한다. 이 시는 후기 시에서 비교적 불교적 상상력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무르익은 과실이

가지에서 절로 떨어지듯이 종소리는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웅…

삼십삼천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

종소리 우에 꽃방석을

깔고 앉아 웃음 짓는 사람아

죽은 자가 깨어서 말하는 시간

산 자는 죽음의 신비에 젖은

이 텅하니 비인 새벽의

공간을

조용히 흔드는

종소리

너 향기로운

과실이여!

– 조지훈의 「범종」 전문

이 시는 불교적인 선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해 울림을 준다. 옛말에 시(詩)와 선(禪)이 같다는 의미로 ‘시선일여(詩禪一如)’라는 말을 그는 ‘시선일미(詩禪一味)’라고 해 시와 선은 같은 맛이고 멋으로 “참의 시적 감흥은 언어와도 절연(絶緣)한다”는 ‘시선일미관(詩禪一味觀)’을 주장했다.

「낙화」에서 이미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지는 순간적인 미를 포착했던 그가 후기에 선심(禪心)을 바탕으로 세련된 불교적 상상력을 보인 이 시에서는 과실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무르익은 과일과 허공의 종소리의 비유는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심오한 반야의 공사상으로 우주론적인 사유를 확장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울리는 텅 빈 새벽 공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무르익는 과실이 떨어질 때 퍼지는 향기처럼 새벽 공간을 흔든다. 즉 무(無)의 공간을 채우고, 무가 유(有)를 낳는 윤회사상을 대변한다. 잘 익은 과일이 떨어져 다시 싹을 틔워 새 생명을 잉태하듯이 종소리는 떨어지는 과실처럼 텅 빈 허공을 의미 있게 채워간다.

이 시에서 종소리와 낙과처럼 무한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우주의 모든 사물이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해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한다. 조지훈 시인은 자기 를 대상화하고 대상을 자기화하는 시를 창작했기에 그의 시는 다양하게 해석되 고 있다.

그는 청록파 시인으로 알려졌고, 일관된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전통 시의 형식 이나 기법으로 우리나라 자유시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공헌했다. 근대 자유시에 우리의 고전을 융합해 맹목적으로 서구적인 것을 따르는 시단 풍토에 제동을 걸 어서 각성을 촉구했다. 특히 불교적인 상상력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것에 애정과 관심을 촉발하는 시 세계를 펼쳐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데 노력한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김관식 『전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등단 및 계간 『자유문학』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김우종문 학상, 노산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서초문인협회 감사, 국제PEN한국본부 및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시집 『가루의 힘』, 평론집 『한국 현대시의 성찰과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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