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위선이었을까__남정인

위선이었을까

남정인

수필가

오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년 정도라 했다. 대장암이었는데 이미 여 러 곳에 전이가 되었다는 수술 후 소견이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가 동원됐고 신약 처방까지 받았다. 신약의 후유증은 대단해서 차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처절했다. 눈, 코, 귀에 피가 서리고 입안은 먹빛 피자두 같았다. 온몸은 이미 타들어가는 듯 암갈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난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소리 라도 치고 싶었다.

6년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살고 싶어 하는 오빠의 눈빛을 피하면서 죽음 뒤 의 절차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족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담당 의사에게 치료를 중 단하고 싶다고 했다. 내 손으로 베드를 밀고 오빠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 병 실에 들어오자 오빠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보여서 좋다 말했다. 체념한 듯 했지만 내 행동이 조금만 빨라져도 오빠는 자신의 임종을 준비하는 건지 물었 다.

병실을 옮긴 지 열흘이 지나고 자정이 가까운 11월 어느 날, 오빠는 숨소리가

잦아들더니 다음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오빠의 얼굴을 감싸 안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었다. 오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내가 지쳐 견디기 힘들 때면 오빠 가 더 이상 삶에 매달리지 말았으면 했던 것이 미안해서였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되질 않았다. 오빠의 죽음에 앞장서서 깃발이라도 들었던 것 같아 날이 갈수록 가슴이 죄어 들었다. 지울 수만 있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호스피스였다. 자학하듯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건 어느 정도 과정이 필요했다. 요양보호 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이 낮 시간 동안 계실 수 있는 주간 보호 센터를 찾았다. 오빠에게 진 빚을 갚기라도 할 것처럼 낯선 아침을 열었다.

“왜 안 죽어?”

연세가 가장 많은 97세 할머니가 아침에 센터에 들어서면서 하시는 말이었다. 날씬하고 큰 키에 젊은 날엔 근방에선 소문 난 미인이었다는데 많은 재산을 아들 에게 물려주고도 며느리의 눈치가 보인다며 자주 우셨다. 오래 근무한 직원보다 봉사자인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홀로 된 노인 중엔 할머니 숫자가 월등히 많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명 중에 남자 어르신은 세 분뿐이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신나게 부르는 건장한 남자 어르신은 71세인데 날로 치매가 깊어지고 있었다. 먹는 것에 집착하고 때로

난폭해져서 센터에서 아들에게 호출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상태를 듣는 아들은 일그러지면서 울먹였다.

20여 명 되는 어르신들은 거의 치매였고, 당장 치매가 아닌 분들도 초기 전조 증 상을 보였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얽힌 세월의 흔적도, 어디로 달아나버릴지 모르 는 순간들을 붙잡아주기엔 나도 젊은 나이는 아니었다.

죽음에 가까운 노인들을 바라보면 죽음의 공포에서 절망하던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더 생각났다. 암 환자나 치매 환자나 건강해서 천수를 누린 사람도 어차 피 생명은 유한한 거라고 변명처럼이라도 말하기엔 오빠는 오십대 초반 젊은 나 이였다. 이뤄놓은 학문과 명예가 억울했을 것이다. 아니, 죽음 앞에서 이미 그런 것들은 오빠에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건 나의 욕심이었고, 그 욕심 때문에 나는 기적을 바라며 몇 년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가실 무렵엔 숨소리마저 내겐 고통이고 부담이었다. 그랬던 내 마음 이 편해지고 싶어서 화풀이하듯 봉사 활동을 하는 건 아닌지 자책이 들었다. 호스 피스 병동으로 옮기던 날 내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빠에 대한 기 억은 잊기는커녕 덜어지지도 않았다.

9주째쯤 되는 날이었다. 같은 사업을 하던 지인에게서 상의할 일이 있다는 전화 가 왔다. 기간을 정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기다렸다는 듯 모든 다짐이 무너져 내렸 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했고, 왜 그래야 했는지 먹먹 하기만 했다. 나는 살아 있고 더 살아가야 한다는 이기심을 변명할 말은 없었다.

그 봉사 활동은 위선이었을까? 혼자 외롭게 살면서도 나를 보면 천진스럽게 활 짝 웃곤 했던 오빠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제야 내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비심 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줄기 위로의 빛처럼 나를 비추고 지 나갔다.

남정인 작가. 에세이문학작가회, 일현수필문학회, 조선에듀문우회 회원이다. 저서로 수필집 『훔치고 싶은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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