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참된 불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__박찬국

참된 불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에리히 프롬을 예로 하여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쇼펜하우어와 불교

유명한 서양 철학자들 중에서 불교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고 불교와 유사한 사 상을 펼친 철학자로는 쇼펜하우어와 프롬을 들 수 있다. 이 중 염세주의자로 유명 한 쇼펜하우어는 산다는 것을 고통으로 보면서 이러한 고통의 원인과 극복 방안 과 관련해 불교와 유사한 사상에 도달했다. 그는 삶이 고통인 원인을 생존과 쾌락 에 대한 욕망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을 극복하고 항상 청정한 마음 상태 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을 극복하는 궁극적인 길이라고 보았다. 그는 조만 간에 유럽에서 불교가 신화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를 대체할 것 이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불교적인 가르침을 진리라고 생각했지만 불교적인 가르 침대로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명예욕과 질투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당시 독일 철학계를 지배하던 헤겔에 대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헤겔의 강의 시간 과 동일한 시간대에 강의 시간을 잡았지만, 거의 수강생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낭 패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는 나이 60이 되어서야 유명해졌는데 그는 신문에서 자신과 관련한 모든 소식을 찾아 읽으면서 자신의 명성을 즐겼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결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 을 삶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불교는 무상(無常)을 깨쳐야 한다고 말한다. 무상을 깨친다는 것은 우리의 육신, 재산,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덧없는 것들이 흡사 영원할 것처럼 매달릴 때 우리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깨친 사람은 무상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진정으로 놓아버린 사람이다. 그러나 집 착을 진정으로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과 불교

에리히 프롬은 전 세계적으로 2,500만 부 이상 팔렸던 『사랑의 기술』의 저자다. 따라서 누구든 에리히 프롬이란 사상가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 나 정작 에리히 프롬이 불교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불교의 명 상법을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쇼펜하우어를 제외하고는 서양 철학자들 대부분이 불교를 비롯한 동양 철학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불교에 대한 프롬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높은 평 가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프롬은 나이 20세 때 이미 불교 관련 서적을 접했지만, 불교에 대한 프롬의 이 해와 애정을 심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서양에 선불교를 소개하 는 데 크게 기여했던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와의 만남이었다. 프롬의 나이 50대 후반에 이루어진 이러한 만남을 계기로 선불교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면서

정신분석학자였던 프롬은 정신분석학이 선불교의 통찰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 을 적극 주창하게 된다.

불교에 대한 프롬의 관심과 애정은 단순히 이론적인 데 그치지 않았다. 프롬은 매일 아침 10시에서 11시까지 명상을 했다. 프롬은 1975년에 자신의 7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병으로 쇠약해져 있었지만 전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두 시간에 걸쳐서 발표를 했다. 사람들 이 그 비결을 묻자 그는 그날 아침 두 시간 동안 호흡과 명상을 했다고 대답했다 고 한다.

인본주의적 종교냐 권위주의적 종교냐

프롬은 종교를 논할 때 중요한 문제는 유일신교냐 다신교냐, 무신론이냐 유신 론이냐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가 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성장을 돕는지 아닌지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억압 하고 방해하는 종교를 프롬은 권위주의적 종교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에, 정신적 성장을 돕는 종교는 인본주의적 종교라고 부르고 있다.

권위주의적 종교는 특정한 교리나 예식 체계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면서 신 자들에게 특정한 교리를 맹목적으로 믿거나 특정한 예식 체계를 무조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권위주의적 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비롯한 지혜를 상실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교리나 예식 체계 만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는 독선에 사로잡히면서 다른 종교들을 이단시하 고 배척하게 된다. 이에 반해 인본주의적 종교는 지혜와 자비심과 같이 인간에게 원래 존재하는 훌륭한 잠재 능력을 온전히 개화시키는 것을 목표한다. 따라서 인 본주의적 종교의 이념에 충실할수록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비롯한 지 혜를 더욱 성숙시키게 되며 모든 생명과 사물에 대해 공감과 애정을 갖게 된다.

프롬은 불교를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우상 파괴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종교라고 보았다. 불교는 자신의 교리나 예식을 무조건적으로 믿 고 따라야 할 것으로 보지 않고 깨달음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만약에 깨달음을 방해한다면 언제든지 폐기되어도 좋다고 본다. 이 점 에서 불교는 철저하게 우상 파괴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는 종교 의 목표를 오직 인간에게 이미 존재하는 지혜와 사랑과 같은 잠재 능력들을 온전 히 개화한다는 데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존재 지향적인 삶으로서 불자의 삶

프롬은 「정신분석학과 선불교」라는 글 외에는 불교만을 주제로 해 글을 쓴 적 은 없다. 그러나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1966)와 『소유냐 존재냐』(1976), 『사랑의 기술』(1986), 『존재의 기술』(1993), 『듣기의 기술』(1993)과 같은 여러 책에서 불교가 그에게 끼친 영향과 불교에 대한 깊은 애정은 쉽게 감지될 수 있다.

특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설파하고 있는 존재 지향적인 삶은 불교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롬은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 인 삶을 서로 대비하고 있다. 소유 지향적인 삶이란 삶의 의미를 보다 많은 물질 의 소유와 쾌락의 향유에서 찾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존재 지향적인 삶의 방식 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자들의 성스러움을 경험하면서 그것들과 교감 을 나누는 삶이다. 이러한 존재 지향적인 삶의 방식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잠재 적 능력인 지혜와 사랑을 능동적으로 실현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성장을 경험하 는 충만한 삶이다.

프롬이 존재 지향적인 삶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입각한 삶인 반면에, 소유 지향적인 삶의 방식은 탐욕과 분노 그리고 무 지라는 삼독(三毒)에 사로잡힌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소유 지 향적인 삶의 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물질과 쾌락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그러한 탐욕은 항상 원하는 대로 즉시 충족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사람은 불만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한 그 사람은 물질과 쾌락이라는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그것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무지에 사로잡혀 있다.

소유 지향적인 삶보다는 존재 지향적인 삶을 주창하면서 사랑의 실천을 강조 했던 프롬은 그 자신 소유욕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독일에서 1981년 까지 500만 부 팔렸던 『사랑의 기술』의 인세로 프롬은 보잘것없는 액수의 돈밖에 받지 못했지만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프롬은 자신의 책이 많이 읽혀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프롬은 오전을 연구와 사색을 위한 신성한 시간으로 생각해 오전에는 돈 버는 것과 관련 한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은 철학하는 방식 면에서도 불교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 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특정한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어떠한 가르침 이라도 인간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 받아들이는 것이 불교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선불교, 유대교, 기독교 신비주의, 실 존철학, 마르크스 사상,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에 담긴 중요한 통찰들을 종합 해 독자적인 사상을 형성했다. 이러한 철학적 태도는 철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자와 실존주의자 등으로 나뉘어 서로 배척했던 20세기의 철학적 풍토에서는 보 기 드문 태도였다.

물론 프롬도 많은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다. 로런스 프리드먼이 쓴 『에리히 프 롬 평전–사랑의 예언자 프롬의 생애』(김비 옮김, 글항아리, 2016)를 보면 그는 오만해 보일 때도 쌀쌀맞게 보일 때도 있었으며, 다른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부당하 게 비판한다고 생각할 때 상처를 입기도 했다. 또한 프롬이 온갖 정성을 다해 간 호했던 두 번째 부인이 심각한 병고와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면서 한때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프롬은 존재 지향적인 삶에 대해서 말로만 떠든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진지하게 노력한 사람이었다. 나는 프롬이 구현하고자 했던 삶이 참된 불자들이 추구하는 삶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한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서양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에서 참된 불자 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프롬을 예로 해서 생각해보았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철학 석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 서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불교』,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 연구』, 『인간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성찰 : 실존철학의 재조명을 통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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