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이야기 3|상입과 연기와 무아와 공__양형진

상입과 연기와

무아와 공

양형진

고려대학교 디스플레이 ・ 반도체물리학부 교수

 

 

 

(因)과 과(果)의 관계

세상을 관찰해보면 결과가 원인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因)에 의해 과(果)가 생성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인 안에 과가 들어 있다고 하거나 인이 과로 변하는 성질을 그 안에 품고 있다고 하 거나 인이 스스로 과로 변한다는 등의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인 씨가 과인 싹과 다른 것처럼, 많은 경우 인이 과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인과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거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뤄 진다고 하거나, 정해진 숙명이 있다고 하거나, 객관적인 지식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입장이 제시될 수 있다. 부처님은 이 모두를 부정하 고, 연기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연생기(因緣生起), 피연생과(彼緣生果)의 의미를 갖는다. 여느 인과론과 달리 연(緣)의 역할을 중요시한다.

 

걸어감의 연기에서의 인(因)과 연(緣)의 상입

걸어간다는 행위를 통해 인(因)과 연(緣)의 상입하는 관계를 살펴보자. 걸어간다 는 행위는 걸어가려는 의지와 정상적인 골격과 근육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 하기 쉽다. 그런데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물속에서 허우적거 리는 것을 생각하면, 걷겠다는 의지와 정상적인 육체만으로 걷는다는 행위가 성 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나의 의도와 근골격계의 움직임이 정상적으로 작동 하더라도 이것이 그대로 걸어간다는 행동의 과(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 그런 지를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살펴보자.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란 내가 땅을 뒤로 밀면 같은 크기의 힘으로 땅이 나 를 앞으로 민다는 것이다. 내가 미는 힘은 땅에 작용하기 때문에 (지구가 워낙 커서 거 의 움직이지 않지만) 땅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이는 나의 움직임과는 상관없다. 나 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나에게 작용하는 힘, 즉 ‘땅이 나를 미는 힘’이다. 그러므 로 내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땅을 뒤로 미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

라, 이 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기는 ‘땅이 나를 앞으로 미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땅을 뒤로 밀려면 나와 땅 사이에 마찰력이 있어야 하는데, 얼음 위에서는 마찰력이 없어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내가 땅을 뒤로 제대로 밀지 못하게 되고, 이 에 따라 얼음도 나를 제대로 밀어주지 못한다. 작용이 약하므로 반작용이 같이 약 해지면서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부족해 앞으로 걸어가기 힘들게 된다.

나를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과(果)는 ‘내가 땅을 미는’ 인(因)에 의해 생성되지 않 고, 땅이라는 연(緣)에 의해서 ‘내가 땅을 미는 힘’, ‘땅이 나를 미는 힘’으로 되돌아오 면서 혹은 변하면서 생성된다. 인이 과를 포함하는 것도 아니고, 인이 스스로 과가 되는 것도 아니며, 인과 과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나를 걸어가 게 만들어놓은 것도 아니다. 인인 씨가 그대로 과인 싹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식(耳識)에서의 인(因)과 연(緣)과 과(果)

귀와 연결된 이식(耳識)을 통해 인(因)과 연(緣)과 과(果)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자. 어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공기의 진동인 음파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예 를 들어 우리가 말을 하면 성대가 떨리게 되고 이 떨림이 공기를 진동시키는데, 이때 공기가 진동하면서 퍼져나가는 것이 음파다. 음파의 진동 에너지가 나의 귀 로 전달되고, 그 에너지가 고막을 진동시키고, 고막의 진동으로 발생하는 자극을 신경계가 뇌로 전달하고, 전달된 자극을 최종적으로 뇌가 해석함으로써 귀를 통 한 감각 경험이 완성되고 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극 전달, 뇌의 해석 등의 일련의 과정에 개입하는 공기, 고막, 신경계, 두뇌의 청각 중추 등을 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과는 최종적으로 우리가 듣는 소리, 혹은 소 리를 듣는 일이 될 것이다.1)

1) 이 과정의 각 단계에서 인과 연과 과가 발생한다고 보아도 된다. 일례로, 고막의 떨림을 인으로 신경계를 연으로 신 경계를 통해 전달되는 자극을 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 단계에서의 과는 다음 단계에서 인으로 작용하며, 전체는 인과 연과 과의 연속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달에서와 같이 공기가 없다면 공기의 진동도 없을 것이고, 고막에 이상이 있다 면 신경계가 감지할 수 있는 자극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신경계에 이상이 있 다면 자극이 뇌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며, 청각 중추에 이상이 있다면 신경이 전달 한 자극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대의 떨림이라는 인이 있다 고 해서 소리를 듣는 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무수한 연이 개입하면서 성대의 떨림 이라는 인을 소리라는 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박쥐나 돌고래는 2만Hz 이상의 초음파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 는 20Hz에서 2만Hz 사이의 가청 주파수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초음파가 만 들어내는 자극을 고막과 신경계 등이 뇌에 잘 전달한다 하더라도 청각 중추가 이 를 해석하지 않으면 소리를 듣는다는 과는 생겨나지 않는다. 인이 있다고 해서 과 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연이 개입해서 인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과가 성립한다 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연기의 조건으로서의 상입과 무아와 공

여러 연(緣)의 도움으로 씨가 변하지 않으면 싹이 될 수 없다. 땅이라는 연의 도 움으로 ‘내가 땅을 뒤로 미는 힘’이 ‘땅이 나를 앞으로 미는 힘’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걸을 수 없다. 성대의 떨림이 여러 연의 도움으로 소리라는 정보로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인이 변치 않는 자신의 본질인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다면, 연이 인에 침투해 과를 이루게 하는 연기(緣起)는 성립하지 않는다. 상호 침투하고 상호 의존하는 관 계인 연기는 일체의 모든 법이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성립한다. 제법무아다. 한 발짝도 떼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공(空)이다.

 

 

양형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신시내티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과학으로 세상 보기』가 있고, 『놀 라운 대칭성』, 『과학의 합리성』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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