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이 읽어 주는 불교 詩

당신이 아니더면

한용운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이 왜 주름살이 잡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첨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안 하여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만해 한용운 스님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서 1944년 심우장에서 열반하셨다. 스님의 시와 시조가 지닌 지조(志操)는 우리 시사(詩史) 시정신 의 설산(雪山)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님께서 펴낸 시집 『님의 침묵』에는 ‘당 신’이 중요하게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당신’의 존재는 중층적인 의미를 갖 고 있다. 사모하는 님, 신앙하는 부처님, 그리고 식민지 시대의 조국을 뜻한 다. 스님은 이별한 님(당신)과의 조우를 간절하게 희구한다. 이 시에서도 나 의 몸의 피로와 늙음이 당신을 그리워한 까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생사와 병듦조차도 당신 때문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당신은 나의 사랑을 완성시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이 길어질수록 당 신을 기다리는 나의 고대(苦待)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간곡해진다. 그리하여 다른 시 「나의 꿈」에서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 에, 나의 꿈은 적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겄습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더없이 지극해진다. 스님의 시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깨 끗한 달이 빛나지만 늘 언제나 단심(丹心)이 한가운데에 있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BBS) 라디오 제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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