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방바닥을 닦으며__김태겸

방바닥을 닦으며

김태겸

수필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삼십 년이 다 되어간다. 삼십여 평 공간에 세월의 연륜처럼 살림이 늘다 보니 비좁기 짝이 없다. 궁리 끝에 오랫동안 방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침대를 들어냈다. 따끈한 온돌방에 두툼한 요를 깔고 자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잠자리를 펴는 일은 내 차지가 되었다. 아내는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쪼그리고 앉는 일을 힘들어했다.

이부자리를 까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먼저 청소기를 작동시켜 방 전체 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구석구석까지 손걸레로 닦았다.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려 이불장에서 제법 묵직한 요를 꺼내 방바닥에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이불을 폈 다. 족히 삼십 분은 걸렸다. 졸음이 밀려올 때면 고역이었다. 그냥 이부자리를 펴 고 눕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눈치가 보여 꼬박꼬박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청소를 반복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청소기 사용을 생략하고 걸레질 한 번으로 통합한 것이다. 극세사로 만든 걸레를 사용하니 먼지와 머리카락이 잘 달

라붙었다. 방바닥도 쉽게 닦을 수 있고 물에 헹구면 오물이 금방 분리되었다.

걸레로 방을 닦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걸레가 먼지를 사라지게 하 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하지만 걸레의 색은 점점 어두워진다. 방바닥을 깨끗 이 해주는 대신 자신은 더러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나 할까.

문득 몇 년 전 인도 다람살라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달라이 라마’ 존자가 이끄는 법회에 참석하던 중 틈을 내어 그곳에서 이십 년 넘게 수행하고 있는 한 국인 스님의 거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제가 보살펴드리고 있는 십여 명의 티베트 노스님들이 있는데 내일 점심 한 끼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떠날 때쯤 스님이 간곡히 부탁했다. 마침 우리 일행은 다음 날 티베트 불교 지 도자인 ‘까르마빠’ 존자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들 난색을 표하자 스님 얼 굴이 어두워졌다. 순간 불교 지도자 한 분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평범한 수행자들을 대접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내가 나서자 일행 중 세 사람이 뜻을 같이했다.

방바닥을 닦고 있으면 걸레의 미덕이 가슴을 파고든다.

걸레를 닮고 싶다

다음 날, 우리들은 약속 장소인 티베트 호텔 식당에서 노스님들을 기다렸다. 오 후불식(午後不食)을 철저히 지키는 티베트 스님들이라 정오가 되자마자 정확히 도 착했다. 오후 1시가 넘으면 다음 날 아침까지 식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열두 분이었다. 80세 이상이었고 90세가 넘는 스님들도 몇 분 있었다.

스님들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평범한 노인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내 예상에서 훨씬 벗어났다.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면에 흐르는 활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린이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생동감 같은 것 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주홍빛 승복으로 감싼 허리는 꼿꼿했고 표정은 부드러웠 다. 질문을 하면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섞인 답변을 해주어 대화하는 동안 내내 웃 음꽃이 피었다. ‘어떻게 나이를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던 내게 해답을 제시해주 는 것 같았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십여 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한 스 님이 말했다.

“감옥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나를 때리고 고문했던 중국인 간수에게 자비심을 품는 수행이었어요.”

그들은 평생 그렇게 마음을 닦았다.

점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는 스님들이 식당 문 앞에 일렬로 섰다. 식사를 대접 한 우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합장을 하고 나서는 우리 넷의 이 마를 자신들의 이마와 맞대고 일일이 비벼주는 것이었다. 순간 맑은 기운이 머릿 속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욕심과 어리석음에 물들어 있는 우리들을 정화시 켜주는 의식이었을까? 걸레가 방바닥을 닦아주듯이.

‘걸레 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외관이 더럽거나 언행이 난잡한 사람을 의 미한다. 걸레의 겉모습만 보고 만든 말이었을 것이다. 걸레의 진면목을 알았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방바닥을 닦고 있으면 걸레의 미덕이 가슴을 파고든다. 걸레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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