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내가 생각하는 윤회__안정은

내가 생각하는 윤회

무화과를 보며

 

고즈넉한 산자락, 작은 사찰에서 서글픈 노랫가락이 울린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로 시작되는 한오백년 민요가 49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린다. 애절한 가락과 애달픈 가사로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분명히 짓는다. 49재 동 안 몇 번이나 이별을 준비하고 이별의 갈림길에 섰지만 아직은 완전히 죽은 이와 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가(靈駕)가 좋은 곳으로 가도록 배웅하는 마지막 의식, 봉송을 마무리할 때쯤에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남동생 집을 찾았다.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10년 만에 처음 방문하는 거라 들뜰 만도 한데, 공항으로 가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가 집을 비우는 사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구더 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성격 탓을 했다. 이참에 고쳐보자 마음먹었다. 부모님 침 대 위에 깔 새 이부자리와 휴대용 산소호흡기, 그리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가정 용 소화기를 사놓고 동생 집 방문을 결정했다.

아버지가 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새벽 일찍 출발한 터라 주머니에 돈이 없다 며 오천 원짜리 6장을 꺼내 내미셨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오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용돈을 쥐여 주셨다. 그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으로 헤어졌고, 이후로 우리는 평소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었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우리 가족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아버지

조차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별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왔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우리는 황망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성격이라 자식들에게 살갑진 않았지만 권위적이진 않았다. 일을 마친 뒤 소주 한잔 마시는 게 낙인 평범한 가장이었다. 자식들이 각자의 위 치에서 제 몫을 잘해내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소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통장에 큰돈은 없어도 주머니에 소주 한잔 살 돈은 늘 찰랑대는 게 행복한 남자였다. 사 람 좋아하고 이것저것 호기심 많은 소년 같은 면모도 있었다. 그런 분이 한순간 에, 가족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 외롭고 어두운 길로 떠나야 했으니 얼마나 발 걸음이 무거우셨을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까. 가족에게 인사만이라 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테다.

49재를 준비하며 아버지에 대해 밀도 있게 생각했다. 고생만 하다 이제 좀 편 해지려니 생을 달리한다는 말들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효도하려고 하자 돌아가 신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인 줄 알았는데, 그 말들이 이제와 가슴에 사무쳤다. 아버지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열심히 일했지 만 돈벌이엔 소질이 없었다. 앓는 소리 하는 거래처에 외상으로 물건을 주고 정 작 그 외상값을 아버지가 갚으니 돈이 모일 리가 없다. 칠십팔 년이란 세월을 쉬 지 않고 일했는데 아버지 통장 잔고는 사천만 원이 전부였다. 서글펐다. 그 돈이 나 원 없이 쓰고 가시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갑작스레 떠난 건지 원통했다.

허무함이 폐부로 스며들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지만 참으로 인생무 상(人生無常)이다. 그렇게 열심히 산 아버지의 흔적이 사천만 원이 담긴 통장뿐이 라니 침통했다. 거리를 걷다가 문득, 모든 건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없다는 사실이 자각돼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자전거로 누볐을 거리에 아버지의 생전 숨 결이 남아 있을 법도 한데,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이대로, 아버지가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숨결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걸까.

마당에 심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심은 나무다. 그 무렵 아버지는 텃밭에 소소한 작물을 심고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취미가 생겼다. 아버지는 가고 없지만 무화과나무는 홀로 남아 열매를 맺었다. 안 방 창문을 통해 무화과를 보는데 별안간 아버지가 나무를 심는 모습이 눈앞에 그 려졌다. 급한 성격에 어설프게 구덩이를 파고 무화과나무를 내려놓은 뒤 대충대 충 흙을 덮었을 것이다. 직접 지켜본 어머니는 무화과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지 걱정하셨다. 그런데 용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하나둘 매달고 있었다. 왜일까. 설익은 무화과에서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마음이 무화과나무에 열렸다. 식물박람회에 구경하러 갔다기에 과실 수를 심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잊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장례를 치 르고 한참 후에야 아버지가 마당에 심어놓은 무화과나무를 발견했다. 경황이 없 던 탓이다. 그래서일까. 무화과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무화과가 꼭 아버지 같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고, 자극적으로 달진 않지만 은근하 게 달큼한 맛이 가슴 저린다. 딸을 위해 과실수를 심은 아버지의 마음이, 그 정성 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무화과를 보며 윤회의 심오한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다. 윤회는 육체 의 환생이 아닌, 마음의 환생이라고. 훗날 아버지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 한들 외양만 같을 뿐, 더 이상 내게는 아버지가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 의 마음이 흠뻑 물든 무화과가 더 정겹다. 집 안 곳곳에 자박자박 젖어 있는 아버 지의 손때와 추억이 내 안에서 아버지를 살아 있게 한다. 아버지는 당신을 기억할 자식들을 통해 앞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봉송(奉送)은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로 끝맺는다. 서러운 울음이 영가(靈駕)의 발목을 잡지 않게 애써 참아본다. 좋은 곳으로 가실 아버지를 배웅한다. 아 픔도 슬픔도 없는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길 진심을 다해 발원한다. 윤회에서 벗어 나 극락왕생(極樂往生)하시길 염원해본다.

안정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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