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이야기 2|무상(無常)과 무아(無我), 그리고 연기 __양형진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그리고 연기

양형진

고려대학교 디스플레이 ・ 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낱낱의 생명체와 생명종뿐 아니라 지구와 우주 전체가 진화한다는 것을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다.

무자성

이 세계의 존재자가 모두 무상(無常)이라면, 그 모두는 자체의 본질(essence)에 의해 스스로 성립하는 것일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의 변치 않는 본질 곧 자성(自性)을 가졌다면, 다른 존재자의 도움 없이 그 스스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런 존재자를 우리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일체의 모든 존 재자는 자성이 없다. 곧 무자성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스스로의 본질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존재자가 성립할 수 있는가? 이 를 설명하는 것이 연기(緣起)다. 법계의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 생한다는 것을 인연생기(因緣生起)라 하고 줄여서 연기(緣起)라고 한다. 연기는 피연생과(彼緣生果), 즉 연에 기대어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직 접적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 원인으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피연생과란 직접적 원인인 인이 간접적 원인인 연에 기대어 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과론

보통의 인과론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 원인에만 거의 전적으로 주목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불씨가 그 화재의 원인이었는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환경적 요인이 불씨 자체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화재의 원인이라 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씨가 없었다면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불이 급속하게 번졌다 하더라도 그 환경적 요인을 화재의 원 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보통의 인과론이 취하는 입장이다.

피연생과(彼緣生果)

불교의 연기론은 이와 상당히 다른 입장에서 인과를 바라본다. 하나의 씨앗이 싹이 되는 예를 살펴보자. 씨앗이 없었다면 싹이 나올 수 없으므로, 싹이 나왔다 는 사실은 씨앗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싹의 나옴”은 “씨앗 이 있었음”의 충분조건이 된다. 그러나 “씨앗이 있었음”이 “싹의 나옴”을 보장하지 는 않는다. “씨앗의 있었음”이 “싹의 나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씨앗이 없이 싹이 나올 수는 없으므로, “씨앗의 있었음”은 “싹의 나옴”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 건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의 인과론으로는 부족하다. 씨앗은 여러 연(緣)의 도움에 의해서만 과(果)로 맺어지므로 피연생과(彼緣生果)라고 한다.

(緣)에 의해 변하는 인(因): 제법무아(諸法無我)

연을 이루는 조건 중의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씨앗은 싹이 되지 않는다. 인은 그 자체로 과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인은 과에 의해 인일 수 있고 과는 인에 의해 과일 수 있으므로, 인은 과에 의해 성립하고 과는 인에 의해 성립한다. 이 성립의 과정에 연이 개입해야 한다. 연의 개입으로 인이 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인과 연과 과의 모두가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며 무자성이므로 가능하다. 제법무아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과 연과 과

그러므로 어떤 존재를 과의 연이 되게 하는 것은 과를 성립하게 하는 능력을 지 닌 연이 있어야 하고, 그 연이 인에 침투해 인을 과로 변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은 인을 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연의 작용에 의해 인이 되며, 연은 과를 성립하 게 할 수 있는 인에 의해 연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나 사건이라도 그 자체로 스스로 인이거나 연이거나 과일 수 없다. 인을 과의 인이게 하는 것은 연이며 연을 과의 연이게 하는 것은 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과 연과 과는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서 하나를 이룬다. 분리할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세계가 존재할 뿐이다.

상입의 연기에 의한 창발

연기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의존과 연관의 관계를 맺는 것까지 포함한다. 가장 간단한 상호 의존과 연관의 관계를 물 분자를 통해 살펴보자. 물 분 자는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물 분자의 속성 을 그 구성 요소인 수소와 산소 원자의 성질에서 추출해낼 수는 없다. 왜 그런가?

물 분자의 극성은 수소와 산소 원자의 전자 친화도가 다르다는 아주 간단한 원 인 때문에 발생한다. 공유 결합을 하면서 전자친화도가 큰 산소 원자가 수소 원자 의 전자 일부를 자기 영역으로 끌어감에 따라, 수소 원자는 양의 전하를 띄게 되 고 산소 원자는 음의 전하를 띄면서 물 분자의 극성이 나타난다.

물의 극성은 세 원자가 공유 결합을 하면서, 즉 상호 침투해 서로 변하면서 만 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수소나 산소 원자가 자신의 변치 않는 본질, 곧 자성을 가 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무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아여서 자신의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을 만나 서로 침투해 같이 변하는 연기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침투와 변환의 상입(相入, mutual penetration)을 통해 수소와 산소 원자에는 없었던 속성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면서 물 분자의 극성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렇게 상입의 연기에 의해 존재자들이 서로 의존 하고 연관하는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세계가 구성된다. 일체의 모든 것이 연기다.

무상과 무아의 연기와 공

무아이기 때문에 연기일 수밖에 없고 연기이기 때문에 무상일 수밖에 없다. 이 렇듯 무상은 세계에 대한 진실한 이해의 출발점이 된다. 무상에 대한 자각은 중생 을 열반에 이르게 하는 긴요한 이치이며 고해를 건너게 하는 자비의 배다.

 

양형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와 신시내티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 교수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과학으로 세상 보기』가 있고, 『놀 라운 대칭성』, 『과학의 합리성』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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