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영국 슈마허대학을 가다__안희경

깨달음이 곧 생태

영국 슈마허대학을 가다

 

영국 데본주에 있는 작은 도시 다팅턴(Dartington). 석사 과정뿐 아니라 일주 일 혹은 주말을 이용한 단기 프로그램이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슈마허대학 (Schumacher College)이 위치한 곳이다. 슈마허대학은 1991년 1월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인 에른스트 슈마허의 이름을 교명으로 해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태동은 인도의 교육자이자 시성(詩聖) 인 타고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에게는 레너드 엠허스 트라는 영국인 제자가 있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학과 역사를 공부하던 청 년 엠허스트는 인도에서 타고르를 만나 깊은 가르침을 받고 개인 비서를 할 만 큼 각별하게 지냈다. 그는 농업을 배우고자 미국 코넬대학교로 갔는데, 그곳에서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도로시 휘트니 스트레이트와 결혼했다. 타 고르는 엠허스트에게 “이제 영국으로 가서 드넓은 대지를 구입해 진보적인 학교 를 설립해라. 사람들이 자연과 음악과 공예를 누리고, 바른 삶을 위한 행복을 발 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고 당부했다. 타고르가 가리킨 곳이 바로 지금의 슈 마허대학이 자리한 지역이다. 1923년, 엠허스트는 매물로 나온 다팅턴 홀을 사서 모든 성채를 재건하고, 아트센터를 열었다. 영국의 대문호인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영국 노동당 정치인들도 자주 회 합을 가졌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제도로 구현되도록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엠허스트는 타고르의 제자답게 교육에 대한 열정 또한 가득했다. 다팅턴 학교를 열 어 급진적인 교육을 펼쳤다. 라틴어 수업을 폐지하고, 남녀 성차별을 없앴으며, 계 급 차별을 무너뜨리고, 예술과 동서 사상을 청소년에게 불어넣었다. 그러나 1980 년대 말 몇몇 사고가 발생하며 학교는 문을 닫았다. 이에 다팅턴 홀 재단의 이사들 은 새로운 교육 공간을 모색했다. 바로 지금의 슈마허대학이 탄생한 배경이다. 당 시 중추 역할을 했던 이들은 영국 내에서 사상가적 면모로 존경받아온 사티시 쿠 마르, 존 레인, 그리고 지역 유지이자 불교도인 모리스 에시였다. 이들은 학교의 설 립 취지를 인도의 아슈람 모델인 타포바나에서 찾았다. 고대 인도의 현자들은 숲 에서 지혜를 얻었고, 제자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교육했다. 바로 아 슈람이다. 그 수행의 숲을 타포바나라고 한다. 타고르가 활성화한 인도 아슈람에 서 학생들은 방을 쓸고, 밭을 갈고, 나무를 하며, 스승과 함께 먹고 자며 스승의 인 격과 정신을 온몸에 배어들게 했다. 슈마허대학의 모토 또한 ‘온몸으로 배운다 (Learning by Doing)’이다. 모든 학생과 일부 교수진이 학교 안에 거주한다. 함께 요리 하고 농사짓고, 목공을 비롯한 여러 공예를 하며 명상을 한다. 2만 4,281㎡의 교 정이 숲과 유기농 농장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슈마허대학은 21세기 타포바나다. 1991년 첫 학기 등록 학생은 25명이었다. 시골 마을 신생 학교에 모이기엔 놀 라운 숫자였다. 이유는 제임스 러브록의 강의로 문을 열었기 때문인데, 그는 가이 아 이론을 제창한 인물이다. 제임스 러브록이 합류하게 된 배경과 에른스트 슈마 허가 슈마허대학을 대표하게 된 바탕에는 창립자 중 한 명이며 지금도 슈마허대 학을 대표하는 사티시 쿠마르가 있다. 그는 청소년기를 자이나교 승려로 수행했 고 환속한 후 반핵 평화운동을 이끌었으며, 인도를 떠나 영국에서 오랫동안 생태 잡지인 『리서전스』 매거진 편집장으로 일했다. 에른스트 슈마허, 이반 일리치, 달 라이 라마, 토마스 베리, 프리초프 카프라, 반다나 시바, 제임스 러브록, 조각가 앤 터니 곰리는 모두 사티시 쿠마르의 친구들이며, 대부분 슈마허대학의 강의진으 로 합류했다.

슈마허대학의 교육 내용은 두 가지 요소로 대표된다. 하나는 가이아 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홀리스틱(전체적인) 사고이다. 홀리스틱 사고에 대해 슈테판 하딩 교 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네 가지 방식으로 인식합니다. 생각과 느낌은 서로 대립적이죠. 감각과 직관이 대립하고요. 홀리스틱 과학은 이 방식을 모두 동원해 대상을 경험하도록 안내합니다. 생각하는 시간, 느끼는 시간, 감각하는 시간, 직관하는 시간, 이 모두 를 활용하는 홀리스틱을 해야 합니다. 이 균형감각은 자연과 연결될 때 보다 자연 스레 키워질 수 있습니다.”

슈마허대학은 ‘머리(Head), 가슴(Heart), 손(Hand)’을 강조한다. 일하며 온몸으로 배우는 그들의 일상뿐 아니라 수업에서도 이 셋은 학습의 주요한 요소다. 슈마허대학 학생들은 11월, 노란 자작나뭇잎이 교정을 뒤덮을 때면 다트무어 국립공원으로 나간다. 교실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테스트를 마친 내 용을 거대한 화강암으로 뒤덮인 다트모어 암석 위에서 느낀다. 화강암은 지구의 기후에 매우 중요한 물질로, 이를 용해시키면 이산화탄소를 지구의 대기로 꺼내 올 수 있다. 이는 지구를 냉각시키는 원인이 된다. 학생들은 다 같이 대지에 눕는 다. 슈테판 하딩 교수의 주술사 친구가 북을 울린다. 북소리에 맞춰 하늘에 고하 듯 하딩은 명상을 이끄는 말을 이어간다.

“우리는 이제 탄소 원자가 되었다. 대기로 날아오른다. 화강암의 탄소 원자가 되고, 강물에 어우러진 탄소 원자가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바닷물 속 탄소 원자 로 가라앉는다.”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를 따라 하딩의 말은 신탁한 주술사의 주문처럼 질주한 다. “작은 해초 코카리페포라에 숨이 막혀 심해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석회암 퇴 적물이 되었다. 가라앉고 가라앉는다. 대륙 저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판구조론의 지질 현상에 따라 우리는 다시 CO2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대기로 돌아온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바위 위에서 젖은 몸을 말리는 바다코끼리처럼 학생들

은 마대인 양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 사이에 있던 풀이 일어나듯 학생들은 고요 를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하나둘 모닥불가로 모여들었다. 깊은 경험이 남긴 진동 의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감각하고자 그들은 바람과 새의 언어만을 허용했다. 하 딩은 그 순간을 일러 ‘가이아 되기(Being Gaia)’라고 불렀다. 실제 살아 있는 고귀한 존재로 거대한 행성의 일부가 되어 지구 자체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하나의 고대 물질이 수천만 년의 시간 동안 진화하며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복잡해지고 또 복잡해진 생명체로 거듭나 마침내 인간의 의식을 갖추어 그 바위 위에 존재하는 긴 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딩은 과학이라는 통로 덕분에 그 깨우침의 순간 을 모두 함께 인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에게 있어 깨달음은 곧 생태인 듯 했다. 슈테판 하딩이 화답했다. “맞아요. 깨달음의 순간이죠. 부처님께서 깨달으셨을 때 왜 땅을 짚으셨겠어 요? 이 모든 것의 목격자가 되기 위해서예요. 대지 전체와 맞닿으며 붓다는 이렇 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마침내, 인간이구나.’ 그 전 과정을 깨친 첫 인간으로서 ‘이는 모두 하나의 전체적인 의미이자 정신 체계이며, 기적적인 진화의 과정이로 구나’를 깨달은 ‘왜 우리가 여기 인간으로 있는가’를 깨우친 거죠. 바로 가이아를사랑하기 위해서, 이 진화의 전체적인 장엄함을 사랑하고자, 단지 이 행성만이 아 니라 우주를 사랑하고자, 그는 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위해 더 나아가려는 시도라 는 것을 안 겁니다. 가이아를 위한 길, 인류를 위한 길, 이 모든 변화를 위한 길이 죠. 제가 저의 학생들과 함께 나아가려는 그 길입니다.” 슈마허에는 교정에도 강의동에도 명상실이 있다. 경제학자 조너선 도슨 교수 의 수업 또한 명상 종을 울리며 시작한다.

교수와 학생은 온몸을 깨워 지구 생존 연장을 위한 탐험으로 나아간다. 그 속에서 도슨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로 세우며 지속 가능한 생태적 경제를 제안한다. 슈마허대학에서 사티시 쿠마르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작정 하고 물었던 질문이 있다. “이 작은 학교가 무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긴 답을 내놓은 것은 슈테판 하딩이다. “우리는 매우 심각한 기후변화, 종 멸종, 문화 멸종, 언어 멸종, 정신적인 멸종 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46억만 년 만에 맞는 가장 큰 위기일지 모릅니다. 그 속에서 슈마허대학은 차이를 만들어왔어요.

왜냐하면, 우주가 의미 없는 어떤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그 스스로 생명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단지 한 명이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전체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슈마허대학에는 홀리스틱 사이언스(Holistic Science), 생태적 디자인 사고(Ecological Design Thinking), 전환을 위한 경제학(Economics for Transition) 등 세 개의 대학원 과정 이 있다. 이 중 전환을 위한 경제학에서 배출한 졸업생만 18년 동안 1,520여 명이 다. 대부분 현장에서 일한다. 캐나다의 대표적 환경 싱크탱크인 데이비드 스즈키 재단을 비롯해 런던, 카탈루냐, 포르투갈, 미국,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다양한 싱 크탱크와 NGO, 교육기관, 지방 정부에서 정책가와 활동가로, 그리고 윤리적 농 장과 레스토랑, 상점을 열어 들판의 클로버처럼 풀뿌리가 되어 지표면을 메워가 고 있다.

글|안희경(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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