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불교|등신불을 통해 본 김동리의 불교관__송인자

「등신불」을 통해 본 김동리의 불교관

끝나지 않은 선문답

송인자

소설가

 

‘등신불’은 김동리 작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용어이다. 작가가 1961년 11월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소설 제목으로 심오한 불교 사상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당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는 ‘가장 한국적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유교와 무교를 중심에 두고 가족, 현세,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우리 것과 낯선 문화 간의 충돌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 세계는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와 자연 친화적 민족 정체성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김동리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행패에 못 이겨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김동리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시절의 체험이 그의 대표작 「무녀도」를 통해 드러난다. 그는 어릴 적 죽음과 관련해 여러 체험을 했다. 병도 많이 앓았고,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예기소(경주시 현곡면 형산강 상류) 언저리에 살며 숱한 죽음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그의 문학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종교적, 철학적 성향은 이런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김동리는 학력이 짧다. 다섯 남매 중 막내인 그는 기독교계 학교인 대구 계성중을 거쳐 서울 경신고로 진학하나,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둔다. 그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큰형 김범부의 영향이 컸다. 한학자였던 김범부에게는 문학과 철학 서적이 많았다. 김동리는 학교 중퇴 후 종일 책에 파묻혀서 지내며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스물한 살 때 『조선일보』에 시 「백로」가 입선되었고, 이듬해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그는 당대의 문인들과 달리 친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주역을 공부한 친형이 앞날을 내다보며 일본이 곧 망할 테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 절필했다고 한다.

8.15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이 물러나자 『서울신문』 편집국장이 되었다. 좌우 대립이 심했을 때는 우익에 서서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해 좌익인 조선공산당문학협회에 대항했다. 그는 창작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서라벌예술대학

 

김동리 작가의 「등신불」은 소신공양의 헌신적인 의식을 통해

어머니 악행을 대신해 죽은 한 인간의 승화된 고뇌와 비원을 형상화함으로써,

속죄에 내재하는 인간적 고통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교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그 후 한국문인협회 회장, 예술원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등 주요 문예 단체의 대표를 맡아 문단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1968년에는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을 창간했고, 1970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1995년 사망하기 전까지 「무녀도」, 「황토기」, 「등신불」, 「바위」, 「자연과 인생」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발표해 무수한 문학상과 국민훈장 동백장과 모란장을 받았다.

김동리의 외아들인 김평수에 의하면 아버지 김동리가 일곱 살 때 “저기 가는 흰옷 입은 뱃사공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라는 시를 지어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나, 흰옷이 조선 민족을 상징하고 어디로 가느냐는 민족의 운명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일제 강점기 때 고초를 겪기도 했단다. 실제 사건인지 미화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곱 살짜리가 지은 시라면 문구 그대로가 사실일 것이나, 그가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된 후의 이야기이니 ‘꿈보다 해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등신불」은 학도병인 ‘나’와 옛날 사람 ‘만적’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액자형 소설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일본 대정대학 재학생이던 나는 태평양 전쟁 때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남경에 주둔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했던 중국 불교학자 진기수를 찾아가 식지를 잘라 혈서를 써서 구원을 청한다.

“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며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願免殺生 歸依佛恩).”

진기수의 도움으로 양자강 북쪽 정원사(淨願寺)라는 절에 머물게 된 나는 그곳에서 등신대의 결가부좌상인 금불상을 접하며 경악과 충격에 빠진다. 나중에 이 등신불은 옛날 소신공양으로 마침내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그대로 금물을 입힌 특유한 내력의 불상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만적은 어머니가 이복형의 밥에 독약을 넣는 것을 보고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해 스스로 형의 밥을 먹으려 하자 어머니가 놀라서 빼앗는다. 며칠 후 형이 집을 나가자 만적도 형을 찾아오리라 하고 나가서 중이 된다. 세월이 흐른 뒤, 만적은 문둥이가 되어 있는 형을 만나자 충격에 빠진다. 그는 자기 목의 염주를 벗겨서 형의 목에 걸어주고 정원사로 돌아와 그때부터 화식을 끊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이듬해 봄, 소신공양을 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여러 가지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자 세전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돈으로 타다 남은 그의 몸에 금물을 입혀서 등신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등신불은 거룩하고 원만한 여느 불상과는 달리 고개와 등이 굽었을 뿐만 아니라 우는 듯 웃는 듯 찡그린 듯, 오뇌와 비원이 서린 가부좌상으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움켜잡는 감동과 함께 전율과 경악을 느끼게 한다. 소신공양의 헌신적인 의식을 통해 어머니 악행을 대신해 죽은 한 인간의 승화된 고뇌와 비원을 형상화함으로써, 속죄에 내재하는 인간적 고통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보게.”

나는 달포 전에 남경에서 진기수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었다. 그러나 원혜 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지, 이제 그만 손을 내리어도 좋다는 겐지 뒷말이 없는 것이다.

“……………”

“……………”

태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소리가 목어와 함께 으르렁거리며 들려온다.

등신불의 마지막 대목은 선문답으로 끝난다. 나와 원혜 대사 사이에 마음으로 오가는 대화를 온전히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끝났지만 아직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송인자 『월간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사람 뒈지게 패주고 싶던 날』,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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