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혼자 두는 바둑__김태겸

혼자 두는 바둑

김태겸

수필가

 

걱정, 근심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나는 바둑판 앞에 앉는다. 손바닥으로 몇 번 바둑판을 쓰다듬는다. 온기를 머금은 듯한 나무의 매끄러운 감촉이 손가락 끝에 짜릿하게 전해온다.

가만히 바둑판을 들여다본다. 먹줄을 탱탱하게 튕겨 나무판 위에 그린 19줄의 검은 선이 종횡을 누비고 있다. 검은 선은 바둑판 위를 휘달려 361개의 점을 만들어놓았다. 그중 중심점, 4개의 귀, 4개의 변에는 큰 점을 찍어놓았다. 성점(星點)이라고 부른다.

바둑은 고대 중국 요순(堯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을 깨우치게 하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사방 두 뼘의 나무판 위에 우주의 원리를 그려놓았다. 중심점을 천원(天元), 하늘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우주의 시원(始原)을 설명한 빅뱅 이론의 특이점에 비견할 수 있다. 그 주변을 8개의 큰 별이 휘감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우주의 생성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신기한 것은 361개의 점들이다. 일 년

날짜 수와 거의 일치한다. 조그만 점이 폭발하면서 공간을 창조하고 빛을 토해 시간을 출발시켰다.

바둑의 규칙 또한 묘하다. 두 사람이 흑돌과 백돌을 점 위에 번갈아놓으면서 넓은 공간을 차지한 자가 이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장기는 역할이 제각기 다른 일곱 가지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둑은 오직 한 가지 역할을 하는 돌만으로 경쟁한다. 모든 돌의 가치는 평등하다. 이러한 규칙 아래 흑돌과 백돌이 어우러지면서 전투를 벌이고 수비도 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넓혀나간다. 어둠의 세력과 빛의 세력이 서로 우위에 서려고 갈등을 벌이는 형국이다.

흑돌을 하나 들어 귀에 있는 성점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적막했던 바둑판이 부르르 떤다. 아니 우주가 진동하고 있다. 나의 미약한 손동작 하나로 우주를 움직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일미성지동시방(一微聲之動十方)이다. 다시 백돌을 들어 반대편 귀의 성점에 내려놓는다. 차례로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가며 점 위에 놓는다.

나는 지금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찌 그것이 가능하냐고 의아해하겠지만 그런 바둑도 충분히 둘 수 있다. 흑돌을 둘 때 나는 어둠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최선의 점을 찾아 헤맨다. 백돌을 둘 때는 빛의 세력 편에 서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전투를 벌일 때 나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흑돌을 들고 있을 때는 어둠의 세력 선봉장이 되어 빛의 세력 중원을 헤집고 다닌다. 백돌을 들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평소 하나인 것 같았던 내 자아가 두 편으로 나뉘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느 편이 진정한 자아인 것일까? 과연 자아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뇌세포가 만들어내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바둑은 무상(無常)하다. 한 수 한 수에 따라 변화가 생기고 판이 요동을 친다. 흑돌의 세력이 넓어 보여 유리한 것 같더니 한 수를 착각하는 바람에 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대마가 두 집을 못 내어 이리저리 쫓기고 있다. 몇 수 전에 약점을 지키기만 했어도 유리한 형세를 지켜나갈 수 있었을 텐데…. 욕심이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을 알게 되었지만 후회해도 때가 늦었다. 살아가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이미 확보했던 세력이 다 깨어지고 겨우 두 집을 내고 목숨을 부지했다. 어느 프로 기사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장면이 떠오른다. 삶은 무상하므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좋은 시절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둑에 기대기 전법이 있다. 내 돌이 궁지에 몰렸을 때 상대편의 강한 돌에 약한 내 돌을 갖다 붙이는 것이다. 상대편의 마음이 흔들린다. 감히 내 강한 돌에 건방지게 도전을 해오다니. 쓴맛을 보여주려고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다가 내 세력 다 부수어지고 상대편 돌이 살아가서 다시 역전을 허용하게 된다. 자비심을 발휘해 두 집만 내고 살도록 했으면 승세를 굳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역시 욕심으로 대세를 그르쳤다. 바둑은 서로 착각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착각을 범하는 자가 지는 게임이다. 욕심을 덜 부리는 자가 승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바둑돌

바둑돌을 모두 통 속으로 넣고 나니 우주가 텅 빈 모습으로

나를 마주한다. 나를 괴롭혔던 걱정거리가 어느덧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처럼 내 마음 공간에 잠시 머물다가 없어졌다.

혼자 두는 바둑은 명상과 같다.

을 들면 까맣게 잊어버린다. 요순 임금의 뜻대로 어리석은 사람을 깨닫게 하는 데는 제격이다.

어느새 바둑이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불리하던 흑돌이 형세를 만회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끝내기 승부다. 어느 끝내기가 더 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드디어 마지막 한 집짜리까지 끝내기를 마치고 계가를 해보니 흑이 반면으로 다섯 집을 남겼다. 바둑 규칙에 따라 흑이 여집 반을 공제하고 나니 백이 한 집 반을 승리했다. 박빙의 승부였다. 오늘은 빛의 세력의 승리다. 차지한 공간은 흑이 더 많았지만 먼저 돌을 놓은 흑은 핸디캡을 감수해야 한다.

혼자서 바둑을 두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남짓 지났다. 바둑에 몰입해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망각한다. 오죽하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바둑을 통해 시간의 속도는 주관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작 알았다.

이제는 바둑판 위에 빼곡히 놓인 흑돌과 백돌을 정리할 차례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돌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이 돌은 선봉장으로 적을 포획하는데 공로를 세운 돌, 저 돌은 적을 현혹하기 위해 희생타로 사용한 돌. 의도적으로 버린 돌이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바둑돌을 모두 통 속으로 넣고 나니 우주가 텅 빈 모습으로 나를 마주한다.

‘그래, 결국은 공(空)으로 돌아가는 거야.’

치열한 전투도, 영악한 타협도, 정밀한 계산도 한 차례 꿈이었던 것 같다. 나를 괴롭혔던 걱정거리가 어느덧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처럼 내 마음 공간에 잠시 머물다가 없어졌다. 과연 당초에 걱정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혼자 두는 바둑은 명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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