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절, 큰 믿음|암자 기행__윤제학·신병문

보살의 원력,

사바의 시간을 견디는 힘

선운사 도솔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고,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해 도솔천에 오른 보살이 있습니다. 다들 아는 대로 ‘미륵보살’입니다. 미륵보살의 본원은 부처님 입멸 후 56억 7,000만 년이 지나면, 그때 부처로 이 세 상에 와서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구제받지 못한 모든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해 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56억 7,000만 년이라는 시간은 상상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 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 순간이 56억 7,000만 년일 것입니다. ‘선운사 도 솔암’도 그래서 이 땅에 세워진 절이겠지요.

도솔암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사적기에 따르면 선운사와 함께 창 건되었다고 하는데, 선운사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합니다. 신라 진 흥왕(534~576)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525~598) 24년(577)에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백제가 각축을 벌이던 때의 백제 땅이 었으므로 검단 선사 창건설을 정설로 여깁니다.

도솔암의 서쪽 벼랑에는 높이 13m, 너비 3m의 거대한 부처님이 새겨져 있습니 다.(동불암터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200호) 전하는 이야기로는 위덕왕의 청으로 검단 선사가 불상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에서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래전부터 도솔암 미륵부처님의 명치 안쪽(복장)에 앞으로의 세상을 내다본 ‘비결(秘訣)’이 감추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왔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92년, 전설이 현실로 깨어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세상에 나오면 한양이 망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전봉준과 함께 동학의 지도자였던 손화중의 결심에 따라 비결을 꺼내기로 하고 교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꺼냈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막연한 개벽의 꿈은 현실적 혁명의 옷을 입었습니다. 비결의 내용은 전해오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설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창건 당시부터 근세까지 도솔암은 미륵 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장 기도 성지’가 되었습니다. 도솔암 도솔천 내원궁에 모신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만, 유물로서의 빼어남은 부차적입니다. 중요한 건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육도의 중생이 다 제도되어야만 부처를 이루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입니다.

 

글|윤제학, 사진|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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