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__문상원

마음을 열면…

개심사(開心寺)

문상원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늘 그렇듯 처음이라는 말은 많은 설렘과 또한 많은 두려움을 함께 안고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건축사인 제가 당신과 함께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전국의 사찰을 만나는 일은 분명 설레는 일이지만, 어떻게, 무엇을이라는 방법론에 다다르면 여지없이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제 옆에 능청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연애편지를 쓰듯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를 제가 가장 사랑하는 당신과 마냥 손잡고 가는 철없는 설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랑은 이성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듯, 함께 느끼고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갖도록 하겠습니다.

몇 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과 마지막 답사처만 정했습니다. 그리고 사찰만을 고집하지 않고 고택(古宅)이나 향 교, 서원, 옛마을 등 우리네 정서를 공유하는 고건축물도 함께 어우르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생각의 시간이 흘러 그래서 개심사(開心寺)입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는 미래의 건축사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는 선(線) 하나가 때로는 벽이 되기도 하고, 창이 되고 혹은 문이 되 고…, 그 선(線) 하나가 동선(動線)이 되고 매스(mass)가 되고 공간(空間)이 된다는 무 시무시한 이야기를 합니다. ‘의도되지 않는 선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라는 무 서운 책임감을 당부합니다. 우리가 함께 가는 답사 여행은 한마디로 이 집을 이곳 에 앉힌 그 옛날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길동무가 되기 위해 ‘그 옛날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저의 방법을 공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그곳’으로 가는 과정을 즐기기, 둘째 ‘그곳’을 바라보는 장면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즐기기, 셋째는 ‘그곳’을 공간적으로 그려보기입니다.

빠르게 가기보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만 더 불편하게 쉬엄쉬엄 여유를 갖고 이 제 개심사로 떠납니다.

서산IC를 빠져나와 국도와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개 심사로 가는 여정에서만 볼수 있는 너른 목초지를 지나갑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정치적으로 어두운 시절의 여러 사연을 안고 있는 곳이지만 이제는 이미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개심사만의 애피타이저 같은 풍광이 되었습니다.

주차장에 내리면 뽐내지도 않지만 당당한 기품을 보여주는 일주문(一柱門)을 만나게 됩니다. 21세기에 만든 일주문이지만 21세기스럽지 않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산새 소리, 개울물 소리, 홍송(紅松) 사이 솔바람 소리와 함께 느 리게 걷다 보면 왼쪽엔 세심동(洗心洞), 오른쪽엔 개심사 입구(開心寺入口)라는 돌표 식을 만납니다. 마음을 씻고 또 열면서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돌계단을 오릅니다.

적당하게 숨이 차면 이내 경내로 들어섭니다. 경내 작은 주차장으로 너른 진입 로가 있지만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연지(蓮池)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관상용(觀賞用) 연지가 아닌 주진입(主進入)의 기능임을 연지를 가로지르는 넉넉한 통나무다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건축에서 물과 다리는 흔히 영역(領域)의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찰 건축에서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입니다. 궁궐 건축에서는 궐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금천교(禁川橋)와 같은 기능이기도 합니다.

다리를 건넌다는 의미는 영역의 경계를 건넘을 의미하고 또한 난간조차 없는 통나무 다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경계를 건너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해탈문까지 걸으면서 자주 고개를 들어 개심 사를 바라보실 것을 간곡하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옛날 건축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개심사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가 범종각, 안양루, 대웅전이 켜를 이루며 우리를 맞아줄 것입니다.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해탈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이러한 진입 방식 은 우각진입(隅角進入)이라고 해 주인공인 대웅전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해줍니다. 사찰 건축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진 입 방법은 누하진입(樓下進入)이라고 해 한자 그대로 건물 아래로 지나가며 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땅의 형세와 건물의 배치에 따라 설계자의 판단으로 결정되어 지는 이러한 진입 공간의 선택은 적어도 미천한 제 답사의 경험치 안에서는 항상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23년 전 1월 19일 한겨울 처음 만난 개심사에 대해 저의 답사 노트엔 이렇게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개심사는 봄이었다. 개심사의 안마당(中庭)에서 느껴지는 햇살과 그 햇살을 가득 머금은 흙벽에 나는 한참을 볼을 비비고 손을 마주대고 있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빠짐없이 이야기되는 ‘마당’이라는 건축적인 요소는 논문으로만 수십 권을 써도 서술할 내용이 남을 만큼 많은 학계의 연구 대상입니다만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닌 다양한 행태(behavior)로 채워짐으로 인해 무한한 공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개심사의 마당은 아침 동향의 햇살이 심검당의 휘어진 기둥과 보, 흙벽을 감싸다가 조금씩 마당으로 한 뼘 한 뼘 넓혀가면서 엄마품같이 적당한 품으로 안아주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풍광을 마음에 욕심부리지 않고 담습니다. 마음을 열어두길(開心)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열면…’ 많은 말들을 위에 쓰다 지우다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몫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날 개심사 안마당에서 당신의 몫으로 채워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아니 꼭 채우지 않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마음을 연 것으로도 이미 채워졌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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